60. 부처님의 어른다운 모습
부처님이 마가다국 잔두촌 망나림굴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임시로 시자가 된 메기야(彌醯) 비구가 아침공양을 마치고 호나림 강가의 맑은 물과 쾌적한 기후를 보고 기뻐하며 이런 곳에서 수행을 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냈다. 메기야는 부처님께 나아가서 이 뜻을 알리고 혼자서 수행하기를 청했다. 부처님은 시봉할 비구가 올 때까지만 기다리라고 만류했으나 메기야는 거듭 거듭 간청했다. 부처님은 더 이상 만류할 수 없음을 알고, 하고 싶은 대로 하기를 허락했다.
메기야는 호나림으로 가서 나무 밑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선정에 들려고 했으나 탐욕과 분노와 우치의 번뇌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문득 부처님을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부처님에게로 돌아왔다. 부처님은 그가 왜 다시 돌아왔는지를 알고 이렇게 가르쳤다.
"메기야여. 수행자가 마음의 해탈을 얻고자 하면 오습법(五習法)을 익혀야 한다. 첫째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 착한 벗과 함께 해야 한다. 둘째 금계를 닦아 익히고 위의와 예절을 지키며 티끌만한 허물을 보아도 항상 두려워해야 한다. 셋째 말은 거룩하고 뜻이 깊으며, 행동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마음은 번뇌의 덮개를 걷어내야 한다. 그러자면 계정혜(戒定慧)와 해탈(解脫)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잘 닦아야 한다. 넷째 항상 정진하여 악행을 멀리 여의고 선행을 실천하되 전일(專一)하고 견고해야 한다. 다섯째 지혜를 닦아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며 거룩한 지혜를 밝게 통달해야 한다."
계속해서 부처님은 메기야를 위해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메기야여. 수행자가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얻으면 반드시 무아라는 생각을 얻을 것이다. 만약 수행자가 무아라는 생각을 얻으면 그 자리에서 일체의 아만을 끊고 무위(無爲)와 열반(涅槃)을 얻을 것이다.
-중아함 10권 56경 <미혜경(彌醯經)>-
이 경전은 두개의 테마로 구성돼 있다. 앞부분은 임시로 시봉하던 메기야라는 제자가 부처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떠났다가 돌아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뒷부분은 수행자가 어떤 태도로 수행에 임해야 하는가를 말씀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 중 뒷부분은 경문을 읽으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에 비해 앞부분은 약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부처님은 왜 수행을 하겠다고 떠나려는 제자를 만류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를 알기 위해 다른 경(중아함 8권 시자경)을 참고해보면 이 무렵의 부처님은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시자가 결정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럼에도 제자는 고집을 꺾지 않고 숲으로 떠난다. 인간적으로 보면 메기야라는 제자의 태도는 충분히 섭섭해 할 만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를 다시 받아준다. 이 장면이야말로 뒷부분의 설법보다 더 감동적이다.
사실 젊은이들이 어른 말 안 듣고 저 잘난척하기는 부처님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은 언제나 어른의 잔소리를 귀찮아한다. 존경하고 배려하기보다는 배반하고 외면하려 한다. 특히 디지털로 무장한 신세대 젊은이들은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의 아날로그적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어른들의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서는 어른들의 지식과 경험이 존경의 대상이었다. 언제 씨를 뿌리고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를 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노하우(know-how)였다. 이에 비해 디지털시대의 어른들은 젊은이보다 잘하는 것이 별로 없다.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은 어른이 젊은이에게 배워야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젊은이들이 안하무인의 못된 버릇을 드러내는 것도 이런 환경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철부지들이 방자하게 행동하는 것에 화를 내며 돌아앉는 것은 어른답지 않다. 어른은 기술이나 정보에서는 젊은이에게 뒤떨어질지 몰라도 경륜이나 도덕성, 아량에서는 우위에 있다. 그래서 '어른'이다. 그런 점에서 부처님이 '돌아온 제자'에게 아무 일 없었던 듯 설법하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만약 젊은이에게 관대하지 못하다면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이 경의 말미에 나오는 말씀대로 무상과 무아를 덜 깨닫고, 아직도 내가 최고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아만(我慢)'이 덜 극복됐기 때문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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