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중아함경

79. 무엇이 윤회하는가

slowdream 2009. 6. 15. 01:02

79. 무엇이 윤회하는가



부처님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 무렵 출가하기 전에 어부의 아들이었던 사티 비구는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
"부처님은 '사람이 죽어 저 세상에 가는 것은 현재의 식(識)이 그대로 가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다른 비구들이 그의 잘못된 소견을 고쳐주려고 했으나 사티는 말을 듣지 않았다. 비구들은 이 사실을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은 사티를 불러 '너는 어떤 것이 식이라고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사티비구는 '식이란 말하고 깨달으며, 스스로 업을 짓게 하며, 나중에 그 과보를 받는 주체를 말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사티에게 '그대는 잘못 알고 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나를 모함하고 비방하는 것'이라며 나무랐다. 이어 부처님은 옆에 있던 다른 비구들에게 '그대들은 내가 어떻게 설법한다고 알고 있는가?'를 물었다. 비구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부처님께서는 '식은 무엇에 의지해 의해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식은 인연이 있으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멸한다'고 말씀하셨나이다."
"그렇다. 그대들은 나의 설법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저 어리석은 비구는 내 설법을 잘못 알고 있다. 나는 항상 식은 무엇에 인연에 의해 생긴다. 식은 인연이 없으면 멸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식은 무엇에 인연해 일어나는 것인가. 눈에 색깔이 보이면 이를 인연해 식이 생기고, 귀에 소리가 들리면 이를 인연해 식이 생기며, 코가 냄새를 맡으면 이를 인연해 식이 생기며, 혀가 맛을 보면 이를 인연해 식이 생기며, 몸이 무엇과 접촉하면 이를 인연해 식이 생기며, 의식이 무엇을 생각을 이를 인연해 식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불(火)이 나무를 인연해 생기는 것과 같나니, 불이 생긴 뒤에는 이를 '나무불'이라고 하고, 풀에 의지해 생기면 '풀불'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식이란 인연에 따라 생기고 인연에 따라 멸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다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제자들은 마땅히 이렇게 알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 비구처럼 잘못 알고 잘못 말하면 이는 나를 비방하는 것이며, 모함하는 것이며, 계를 범하는 것이며, 죄를 짓는 것이며, 꾸지람을 받아야 하는 행위다."

-중아함 54권 201경 <다제경(茶帝經)>


불교교리의 핵심적 기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윤회(輪廻)이고 또 하나는 무아(無我)다. 윤회란 우리 인생이 이 세상에서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 계속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의 근저에는 인간이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과거에도 존재했으며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일종의 영생불멸에 대한 희원이 도사리고 있다. 이에 비해 무아란 모든 존재는 고정불변하는 독립적 실체로서의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오온(오온)이라는 정신과 육체가 인연에 의해 결합돼 있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말뿐이므로 영속하는 자아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생각은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마치 창과 방패처럼 모순된다. 즉 윤회를 인정한다면 실체적 자아를 인정해야 하고, 무아를 인정한다면 윤회를 인정할 수 없다. 자아가 없으면 윤회할 존재도 없을 것이고, 윤회를 한다면 무아란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가지만 인정할 수도 없다. 윤회를 부정하고 무아만을 인정한다면 인간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본래 실체적 자아가 없다면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훔쳐도 죄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윤회를 인정한다면 실체적 자아를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인연가합(因緣假合)이란 이론이 성립하지 않는다.

윤회와 무아는 이처럼 미묘한 문제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오해도 많았고 시비도 많았다. 불교가 어느 종교보다 철학적으로 발전한 것에는 두 생각의 논리적 모순을 설명하기 위한 교리적 노력과 고민 때문이다. 그 결과가 대승불교의 중관(中觀)과 유식(唯識)이다. 중관사상은 무아의 입장을 천명하는 이론이라고 한다면 유식사상은 윤회의 입장을 천명하는 철학이다. 이 문제는 지금도 불교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다. 이는 아직도 이 문제가 시원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전은 바로 이런 문제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매우 주목된다. 여기서 부처님의설명을 들어보면 모든 존재는 본성이 없는 것이지만 업력(業力)의 윤회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면 인간의 모든 행위가 남긴 업력은 마치 불길과 같은 것인데, 이 불길은 연료(육체적 자아)가 다 타더라도 다른 데로 옮겨 붙는다. 마찬가지로 불변의 자아가 없어도 불길은 옮겨가는 것이므로 윤회가 계속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도 생명이란 무엇인가, 해탈은 누가 하는 것인가 하는 등등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공부를 더 한 다음에 토론을 해야 할 것 같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