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출가와 가출이 다른 점
부처님이 나란다국 파바리캄바 숲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 무렵 포탈리야 거사는 희고 깨끗한 옷을 입고, 머리는 흰 수건으로 싸매고, 지팡이를 집고, 일산을 들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 숲에서 저 숲으로 다니면서 부처님 제자나 바라문을 만나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속을 떠나고 세속의 모든 일을 버렸다."
그가 어느 날 부처님 계신 처소로 왔다. 부처님은 그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거사여. 거기 자리가 있으니 앉고 싶으면 앉으라."
"나를 거사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나는 세속을 떠나 세속의 모든 일을 버린 사람입니다."
"그대는 거사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세속을 떠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속을 떠났는지 말해보라."
"나는 우리 집 재산을 전부 아들에게 나누어주고 아무 것도 구하는 바가 없이 놀며 오직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며 목숨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세속의 일을 하지 않고 있으니 세속을 버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부처님은 포탈리야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교단으로 출가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우리 교단으로 출가하는 사람은 여덟 가지의 세속 일을 끊어야 세속을 떠나고 세속의 모든 일을 버렸다고 말한다. 그 여덟 가지란 살생을 떠나고, 도둑질을 떠나며, 사음을 떠나고 거짓말을 떠나며, 탐착을 떠나고 성냄과 해침을 떠나며, 미움과 질투를 떠나고 거만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왜 이렇게 여덟 가지를 떠나야 하는가. 비유하면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독사가 있다고 치자. 그 독사는 시커멓고 독이 많아서 한번 물리면 목숨을 잃게 된다. 어리석지도 미련하지도 않고, 정신이나가 미치지도 않았으며,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독사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독사에게 물리면 죽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가급적 독사가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떠나려고 할 것이다. 출가사문은 이러한 이치를 알기 때문에 집을 떠나 거룩한 법을 닦는다. 그리하여 무명과 번뇌에서 해탈하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윤회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포탈리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삼보에 귀의하고 우바새가 되었다.
-중아함 55권 203경 <포리다경(哺利多經)>
출가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육친출가(六親出家), 둘째는 오온출가(五蘊出家), 셋째는 법계출가(法界出家)가 그것이다.
육친출가란 무모, 형제, 처자로부터 떠나는 출가를 말한다. 육친을 떠난다는 것은 곧 집을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욕에 사로잡힌 보통사람으로서는 육친과 집을 떠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출가가 온갖 세속적 욕망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 할 때 떠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출가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서양의 한 불교학자는 부처님의 출가를 '위대한 포기'라고 했는데 참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오온출가란 육체적 집착에서 떠난다는 뜻이다. 오온이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뜻하는 불교용어로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포괄하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아' 즉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내 것, 내 집, 내 아내, 내 아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실로 이 자기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나에 대한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기주의는 강고해진다. 아무리 육친출가를 했다고 하더라도 자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출가는 형식에서 끝나게 된다.
법계출가란 진리의 세계에서도 떠나는 것을 말한다. 실로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진리가 있다. 모든 진리는 그 나름의 논리와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대의 진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독단과 편견은 자칫하면 자신과 이웃을 오류와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출가자는 이 독단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법계출가라는 말은 요즘 말로 바꾸면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불교의 이러한 출가정신은 수행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높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가치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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