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무상 (無常)(1)
대기설법
부처님은 이시파타나 미가다야(仙人住處 鹿野苑)에서 최초로 설법을 한 뒤 쿠시나가라 교외의 사라나무 숲에서 위대한 죽음(涅槃)에 이를 때까지 45년이란 세월에 걸쳐 유행설법(遊行說法)의 생활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부처님이 말씀했던 설법은 양적으로 엄청났다. 따라서 그 전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제자들 가운데 선택된 5백 명의 비구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정리하기 위해 라자가하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비파라(毘婆羅)라는 바위산의 칠엽굴(七葉窟)이 라는 동굴에 결집했다. 교법과 계율에 관한 이 최초의 결집은 그후 면면히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같은 결집에 의해 정리된 부처님의 가르침을 경전이라 하는데 이 경전을 통해 부처님의 설법을 듣노라면 그분의 설교방법은 깜짝 놀랄만큼 자유자재함을 알 수 있다. 뒷날 불교학자들이 부처님의 설법의 특징을 흔히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듣는 사람의 능력(根機)에 따른 설법이란 뜻이다. 그 좋은 예가 ‘경전(耕田)’이란 이름이 붙은 경전*(남전 상응부경전(7ㆍ11) 耕田. 한역 잡아함경(4ㆍ11) 耕田)이다. 경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마가다국의 다키나기리(南山)에카라나(一 )라를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그 마을에는 경전*(耕田:tilling, agriculture, kasi. 당시는 모두 농사를 업으로 하는 바라문이었음) 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라문이 파종의 계절을 맞아 5백 개의 삽(가래)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은 새벽에 옷을 갈아입고 발우를 들고 그 바라문이 사람들과 만나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그 바라문은 마침 일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부처님은 음식을 얻기 위해 그에게로 다가갔다.
이 바라문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의 성인 바라드바자는 당시 바라문 사회에서는 7명가(名家)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사제를 업으로 하는 바라문이 아니고 많은 농사를 짓는 농부였던 모양이다. 경전에서 그를 경전(耕田)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까닭이었던 듯하다. 때마침 파종기를 맞아 그는 씨를 뿌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모아 아침식사를 대접하고 있었다. 거기에 마침 그 마을로 걸식을 나갔던 부처님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그 바라문은 부처님이 탁발을 위해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수행자여, 나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김도 매고 곡식이 익으면 추수를 한다. 수행자여, 그대도 밭갈고 씨를 뿌리는 수고를 한 뒤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때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바라문이여, 나도 역시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나서 음식을 먹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우리는 좀 당혹스러워진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어째서 부처님이 이런 말을 하는지 전혀 감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전이라는 바라문도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대가 멍에도 삽도 없고 회초리로 소를 모는 것도 본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가 ‘나 또한 밭갈고 씨뿌린 뒤 음식을 먹는다’고 하는 것은 어찌된 것인가. "
그러면서 경전은 다시 이런 노래로 그 까닭을 반복해서 묻고 있다.
그대는 자신도 농부라고 말하지만
나는 여지껏 그대가 밭갈이하는 것을 못 보았다.
나는 그대에게 묻노니, 대답해 보라.
어찌하여 나는 그대의 밭갈이를 모르는가.
그러자 부처님도 노래로 답한다.
나의 씨앗은 믿음이고
계는 비(雨)니라.
지혜는 멍에이고
반성은 가래의 손잡이.
선정은 밧줄이고
정념(正念)은 회초리가 되어
몸을 지키고 말을 지키며
먹을 때는 양을 제한하고
진리로써 풀을 베고
조용한 곳을 즐김은 나의 휴식이라네.
정진은 내가 모는 소(牛)이고
그 소는 나를 조용하고 안온한 곳으로 가게 하네.
갔다고 돌아오지 않고
당해서 슬퍼하지 않으니
이것이 나의 밭갈이이고
감로(涅槃)는 그 결과라네.
나는 이렇게 밭을 갈아
모든 고뇌로부터 해탈하였노라.
그 바라문은 부처님의 이같은 노래를 듣고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우바새가 되었다.
생각건대 ‘밭을 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개발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농부가 황무지를 개간해 옥답을 만들듯이 인간의 정신적 황야를 개발해 보다 나은 인간의 모습을 구현하는 사업 또한 중요하다. 부처님이 ‘나도 밭을 간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였다. 인간도 스스로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려 좋은 결실을 얻어야 한다. 이마에 땀도 흘리지 않고 남의 동정에 의지하려는 것은 사람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존재이다. 인간이 갈아야 하는 것은 결코 밭(田)만이 아니다. 인건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밭가는 일과 함께 인간 정신의 황무지를 일구어 좋은 수확을 거두는 일 또한 중요한 일이다. 부처님은 그 중요한 일을 ‘나도 밭을 간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참으로 훌륭한 대기설법이 아닐 수 없다.
항상인 것은 없다
부처님이 재가신자들을 대상으로 설법하는 방법은 문자 그대로 자유자재해서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출가제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법은 좀더 확고한 체계와 논리를 구비하고 있는데, 그것은 중생들에게 ‘지혜의 길(jñāna-mārga)’을 열어보인 지자(智者) 또는 사상가로서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 부처님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이론적 체계의 바탕을 이룬 것이 다름아닌 무상의 개념이다. 무상에 관하여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 (22ㆍ97) 瓜頂. 한역 증일아함경 (14ㆍ4))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언젠가 부처님이 사밧티의 제타 숲 아나타핀디카 동산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한 비구가 부처님이 계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께 예배하고 그 곁에 앉았다. 그 비구는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스승이시여, 아주 작은 색(육체)이라도 상주하고 영주하여 변화하지 않는 것, 영원에 걸쳐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없겠지요.”
여기서 색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인간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를 물질적 요소인 색, 그리고 수(감각)ㆍ상(표상)ㆍ행(의지)ㆍ식(의식) 등 4가지 정신적 요소로 나누어 생각하고 있다. 이것을 오온(五蘊, pānca-kkhandhā)이라 한다. 이 비구는 그 분류법에 따라서 먼저 색 즉 물질적 요소에 관해서 묻는데, 항상 영주하여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느냐고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물론 부정적인 것이었다.
"비구여, 아주 작은 색이라도 상주하고 항존하고 변화하는 일이 없는 것, 영원히 정말로 존재하는 그런 것은 없다. "
이어서 이 비구는 다시 또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이에 대해서 부처님은 역시 똑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그리고 부처님은 잠시 엎드려 그 주위의 흙을 조금 집어들고는 그것을 손톱 위에 올려놓고 그 비구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비구여, 만일 이만큼의 색이라도 상주하고 항존해서 변화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우리가 청정한 행을 닦아 정령 고를 멸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여, 단 이만큼의 색이라도 상주하고 항존해서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는 까닭에 우리가 청정행*(淸淨行:the state of holy and pure life, brahmacariya vāsa. 청정이란 종교적 생활임. 옛날에는 行이라고 번역했음)을 잘 닦으면 정녕 고(苦)를 멸할 수 있다. "
이것도 무심히 읽어버리면 아무런 깊은 뜻이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다시 생각을 가다듬고 음미해 가명서 재독해 보면 거기에는 부처님이 당신의 교법에 근거한 기본적 입장을 활짝 드러내 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이 세상에 손톱 위의 흙만큼이라도 항상 영주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부처님 자신이 설명하는 이 길, 즉 지혜의 길이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불교라는 종교는 무상, 즉 전적으로 ‘항상하는 것은 없다’고 하는 세계 해석 위에 서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그 무상의 개념을 어디에서 어떻게 도출하고 있는 것일까.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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