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근본불교 강좌

3-2 연기(緣起)(1)

slowdream 2009. 6. 23. 11:18

3-2 연기(緣起)(1)


연기를 말하는 설법

 

 그러면 그 연기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먼저 이런 질문을 가지고 부처님에게 그것을 물어보아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연기’*(緣起:causal genesis, paṭiccasamuppāda. 조건에 의해 일어나는(生起) 것을 말함)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이룬 정각(正覺)의 당체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함부의 여러 경전들이 기록해 놓은 수많은 부처님의 설법 가운데는 정각의 내용을 부처님 자신이 술회하고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주 드물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 정각의 결정적 순간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말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이 갈 곳도 없어진(言語道斷 心行處滅)’ 경지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오로지 직관만이 빛나고 있을 뿐이고 오성(悟性 )은 아직 그에 대해 아무런 사념(思念)의 작용도 시작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언어도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표현 작용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당시의 소식에 대해 명쾌하게 ‘그것은 바로 이것이었다’라고 이야기한 것이 매우 적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렇지만 뒷날 부처님이 그의 제자인 비구들을 위해 12지연기를 설명하였을 때에는 역시 이따금 그 정각의 소식에 대해 조금씩 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 설법이 어떤 것인지는 신중하게 경전을 읽은 사람이라면 발견해낼 수 있다. 그러면 먼저 그러한 설법을 하나 들어보기로 한다.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12ㆍ20) 緣. 한역 잡아함경 (12ㆍ14) 因緣法) 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밧티의 제타 숲 아나타핀디카 동산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위하여 연기와 연생*(緣生:having its foundation in this; causally connected, paṭiccasamuppanna)의 법에 대하여 말할까 한다. 그대들은 나의 설법을 듣고 잘 생각해 보도록 하라.”

 “스승이시여, 어서 말씀해 주소서.”

 비구들은 부처님께 설법을 요청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구들이여, 연기란 무엇이겠는가. 태어남(生)에 의해 늙고 죽음(老死)이 있다. 이것은 여래가 이 세상에 나오든 또는 나오지 않든 간에 정해져 있는 것이다. 법으로써 정해져 있고 법으로써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상의성(相依性)이다.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알아낸 것뿐이다.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알아내고 이것을 교시하고 이것을 선포하고, 이것을 상설(詳說)하고, 이것을 개현(開顯)하고 이것을 분별하고, 이것을 밝히고 그리하여 ‘그대들은 보라’고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생(生)에 의해 노사(老死)가 있다. 비구들이여, 유(有)에 의해 생이 있다. 비구들이여, 취(取)에 의해 유가 있다. 비구들이여, 애(愛)에 의해 취가 있다. 비구들이여, 수(受)에 의해 애가 있다. 비구들이여, 촉(觸)에 의해 수가 있다. 비구들이여, 육처(六處)에 의해 촉이 있다. 비구들이여, 명색(名色)에 의해 육처가 있다. 비구들이여, 식(識)에 의해 명색이 이다. 비구들이여, 행(行)에 의해 식이 이다. 비구들이여, 무명(無名)에 의해 행이 있다. 이것은 여래가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정해져 있는 것이다. 법으로서 정해져 있고 법으로서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상의성이다.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알아낸 것뿐이다.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알아내고, 이것을 교시하고, 이것을 선포하고, 이것을 상설하고 이것을 개현하고, 이것을 분별하고, 이것을 밝히고, 그리하여 그대들은 보라고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무명에 의해 행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것, 허망하지 않은 것, 있는 그대로 다르지 않는 것, 상의(相依)인 것, 이것을 연기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은 더 계속된다. 그러나 우선 여기서 멈추고 그 뜻을 되새겨 보면 이렇다. 이 설법은 경의 첫머리에 나오듯 사밧티의 제타숲 아나타핀디카 동산 즉 기원정사에서 있었던 듯하다. 기원정사가 세워진 것은 부처님이 정각을 취하고 나서 적어도 2년쯤 뒤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설법이 행해진 것은 그보다도 훨씬 뒷날의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부처님은 먼저 비구들에게 ‘연기란 무엇이겠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이어 ‘생에 의해 노사가 있다’라고 스스로 답변하면서 12지연기의 하나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그 자리에 참석해 있던 제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12지 연기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음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의 부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연기라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 것인가 그것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 부처님의 설명방법은 이러했다.

 

  그 첫째는 연기란 애당초 법으로서 정해져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경전에서는 ‘이것은 여래가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간에 정해져 있는 것이다. 법으로서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더 이상의 어떤 설명도 필요없다.

 

두 번째는 ‘그것은 상의성(相依性)이다’라는 설명이다. 상의성이란 말이 다소 생소할지 모르겠으나 풀어서 말하면 그것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 맺어져 있다는 정도의 뜻으로 요즘말로 바꾼다면 ‘관계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그 법에 대한 부처님의 역할이 무엇이겠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그것을 경전에서는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알아내고, 이것을 교시하고, 이것을 선포하고, 이것을 상설하고, 이것을 개현하고, 이것을 분별하고, 이것을 밝히고, 그리하여 그대들은 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이 단락의 마지막에서 네 가지로 이 법의 성질을 설명하고 있다. 그 하나는 ‘여성’*(如性:suchwise, tathatā. 있는 그대로의 것) 둘째는 ‘불허망성’*(不虛妄性:not elsewise, avitahatā. 허망하지 않은 것) 셋째는 ‘불이여성’*(不異如性:not otherwise, anaññathatā. 있는 그대로 다르지 않은 것) 그리고 넷째로 다시 한 번 ‘상의성’을 강조한다. 즉 서로 의지하고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거기에는 제법실상(諸法實相) 또는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다(花紅柳緣)’라고 후세의 불교인들이 말하는 표현의 원천이 있는 것이다.


연생을 말하는 설법

 

부처님의 설법은 다시 계속된다. 이번에는 연생(緣生)의 법에 관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연생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비구들이여, 노사(老死)는 무상한 것, 인간이 삶을 영위함에 의한 것, 조건에 의해 생기는 것, 없게 할 수 있는 것, 망가져 버리는 것, 탐욕을 떠나야 하는 것, 그리고 없어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생(生)은 무상한 것, 인간이 삶을 영위함에 의한 것, 조건에 의해 생기는 것, 없게 할 수 있는 것, 망가져 버리는 것, 탐욕을 떠나야 하는 것, 그리고 없어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유(有)는 무상한 것…비구들이여, 취(取)는 무상한 것…비구들이여, 애(愛)는 무상한 것…비구들이여, 수(受)는 무상한 것…비구들이여, 촉(觸)은 무상한 것…비구들이여, 육처(六處)는 무상한 것…비구들이여, 명색(名色)은 무상한 것…비구들이여, 식(識)은 무상한 것…비구들이여, 행(行)은 무상한 것…비구들이여, 무명은 무상한 것, 인간이 삶을 영위함에 의한 것, 조건에 의해 생기는 것, 없게 할 수 있는 것, 망가져 버리는 것, 탐욕을 떠나야 하는 것, 그리고 없어지는 것이다.


 ‘연생’이란 말은 부처님이 그다지 많이 사용했던 말은 아닌 듯하다. 아함부의 여러 경전에서의 사용빈도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서 부처님은 이 연생이란 말이 뜻하는 바를 설명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설명은 다음 네 조항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첫째로 그것은 무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무상이란 말할 것도 없이 항상(常)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한 가지도 항상하여 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빌린다면 ‘만물은 유전’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그것은 유위(有爲)라고 설명하고 있다. 앞에서 우리는 유위(有爲)를 ‘인간이 삶을 영위함’이라고 했다. 또 ‘조건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고도 했다. 결국 이런 표현은 연기의 법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연멸(緣滅)의 법에 의해 멸하는 것임을 말하기 위함이다.

 

 세 번째로 그것은 멸진(滅盡)의 법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즉 파괴의 법칙이다. 그것은 썩고 쇠퇴해 가는 것이도 또한 반드시 연멸의 법에 의해 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로 그것은 이탐(離貪)의 법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여기서 탐욕을 떠나는 것이란 인간이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그것에 대해서는 집착하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될 때 ‘연생’을 잘 멸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부처님이 이 경에서 설법한 내용의 제2단락이다. 이렇게 해서 이 경의 주제인 ‘연기’와 ‘연생의 법’에 대한 설명은 끝나고 있다. 그러나 이 설법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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