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노장의 사유 방법 동이점(同異点) / 허인섭 | ||||
특집 | 불교와 도교의 대립과 융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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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야보(冶父)는 불교 경전에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한때(一時)라는 말의 일(一)자에 해당되는 산스크리트어 eka가 본래 어떤 의미인지 혹은 한문으로서는 어떤 수식의 기능을 지니는지는 전혀 고려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러한 주석 방식의 문제점을 분석하고자 할 때 흔히 제기되는, 원전의 단어를 오해했느냐 아니냐 혹은 선사로서의 생각의 분방함이냐 등의 질문은 중국불교 이해에 크게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석 방식에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중국적 사유 일반의 기제 작동이라는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위의 글에서 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아마도 야보가 음양(陰陽) 분화 이전의 하나의 미분화(未分化)된 신비한 근원세계를 매우 긍정적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의 이러한 관심과 전제는 진정 불교적인 것일까? 중국불교사 기술에 있어서 너무 당연하여 심각하게 질의되지 않은 문제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왜 불교는 중국의 많은 제가(諸家)들 중에 하필 도가(道家)적 사유에 의해 이해되기 시작했는가?’일 것이다. 물론 중국불교사 관련 서적들이 이에 대해 나름대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설명들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동어반복적이어서 적절한 설명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2)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이 두 사유의 유사성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서 그러한 질문이 활발하게 나올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두 사유 전통이 의문을 지닐 필요가 없을 만큼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고 간단히 전제하기에는 그 역사·지리적 환경과 지적 전통이 너무 상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유사하다고 느끼고 그렇게 이해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전혀 다른 것이 오해된 것은 아닐까? 이 글은 이러한 의문을 품고 그것에 대한 답을 조금 새로운 각도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불교가 동북아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전통 사상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까닭에 동북아 사람들은 불교가 인도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정서적으로는 불교를 외래 사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불교의 중국화 과정은 오늘날 동서 사상의 대립 융합만큼이나 서로 이질적인 사상이 결합하는 거대한 사유 실험의 진행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두 이질 사상의 결합으로서의 중국불교의 특징은 정밀한 비교철학적 분석 없이는 그 진정한 이해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결코 무리한 예단은 아닐 것이다. 물론 중국불교사에 나타난 격의불교 극복 노력, 교상판석의 전통 등은 나름의 비교철학적 문제의식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지적했듯이 과거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불교와 노장의 유사성 논의가 보다 더 발전된 형태로 나아가지 못했던 까닭은 그 논의가 진정한 비교철학적 문제의식에 입각한 분석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동과 서의 정보가 중국의 불교 유입 당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에 있어서도 동과 서의 비교철학적 상호 이해가 쉽지 않음을 감안하면 불교와 노장의 같고 다름에 대한 명료한 설명 부재를 기이한 현상만으로 볼 수는 없다. 필자는 그동안 불교의 중국화 과정 연구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인 불교적 사유와 노장적 사유의 동이(同異) 원인을 추적하면서 이 두 사유 전통 비교를 위한 비교철학적 분석 방법론이 필요함을 절감해 왔다. 필자는 이를 위해 그동안의 연구에서 우선 인간이 이른바 철학적 사유를 하기 이전의 사유 방식이었던 신화적 사유의 특징과 이것의 논리적 사유로의 이전 과정에 주목하고, 이것이 각기 인도와 중국의 사유 전통 속에서는 어떻게 작동되었나를 그들의 신화적 이야기의 형태와 이와 관련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 철학적 사유의 특징을 분석하는 방법을 통해 양자의 차이를 찾아보았다. 이 글도 역시 같은 맥락의 관심과 방법론에 입각하여 서술될 것이며, 따라서 신화적 사유가 인류 지성사에서 지니는 의미 그리고 인도와 중국 전통 신화 내용 분석이 첫 번째 주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인류의 기원과 진화라는 고고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논리적 사유가 주된 세계 해석 방식으로 작동된 시기가 그리 오랜 과거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뚜렷한 주객 이분의 사고의 산물인 자아(自我)라는 생각의 개념적 추상적 사고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문자의 발명도 아주 단순한 상형문자로까지 소급해 보아도 5천여 년 전 수메르 문자 이전으로 더 나아가질 못한다. 또한 동물과 구분되는 행위를 기준으로 한 인간의 문명, 즉 수렵 채취 시기를 벗어난 농업문명의 증거도 그 시기가 1만 년 이전으로 더 소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인류와 해부학적 동일성을 지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역사는 거의 10만여 년 전으로까지 소급되며, 현생 인류의 기원을 인간과 유인원의 분기점으로까지 소급할 경우 그 기간은 무려 600만여 년이 된다. 그렇다면 대상과 대립되는 자아라는 생각을 뚜렷하게 개념적으로 정립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만여 년 전 혹은 9만여 년 전, 더 나아가 그 이전의 인류의 의식 세계는 어떠했을까? 이 글이 신화적 사유 방식3)에 관심을 두는 까닭은 이러한 사유 방식이 현재의 우리에게 압도적인 논리적 사유 방식이 전면으로 등장한 기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오랜 세월 동안 인류가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한 압도적인 사유 방식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중국이든 인도이든 현재의 문명을 일구어낸 인류 문화군은 예외 없이 이른바 신화적 사유의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따라서 중국과 인도의 철학적 사유 형성에 신화적 그 영향의 폭과 깊이가 지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 역시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글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인도의 불교와 중국의 노장 사상이 각각의 역사 지리적 상황의 차이만큼 이질적인 신화적 사유 전통 속에서 각기 특유한 논리적 혹은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켰을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논의를 진행해 나아갈 것이다. ①인도 신화의 신화적 감수성의 두 뿌리 일반적으로 논리적 사유의 특징인 주객(主客) 분리의 이분성과 대비하여 신화적 사유의 특징으로는 비이분성(非二分性) 혹은 미분성(未分性)이 거론된다. 신화적 사유의 이러한 특징을 반 퍼슨(C. A. van Peursen) 같은 이는 압도적인 객관과 아직 미정립(未定立)된 불완전한 주관 의식의 상호 침투 관계로 설명한다.4) 사실 이와 같은 개별적 존재로서의 개아(個我) 개념과는 다른, 즉 씨족 또는 부족의 관계망 속에서만 인지되는 집단의식적 주체 개념, 그리고 시간적 서열 개념의 불명료에서 오는 역사의식의 부재 등등의 증거들은 퍼슨과 같은 문화철학자 이전에 많은 고고인류학자들이 아프리카, 호주 등지의 원주민들의 행동양식 관찰 보고를 통해 지적한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미분적 정서는 결코 과거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우리에게 작동되는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현재의 우리도 이러한 신화적 영역의 현상들 또는 이러한 정서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를 비논리적인 것으로만 치부하여 현실 영역에서 배제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열광적으로 즐기고 몰입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인류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시적인 감동, 격정적인 사랑의 발현 등의 사실 또한 앞서 지적한 주객(主客) 미분(未分)적인 하나(一)의 신화적 감수성을 배제하고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신화적 사유의 영향력의 현재진행형적 성격은 부인하기 어렵다. 인도의 경우 그들의 신화적 사유 양태의 전형을 찾고자 할 때 가장 좋은 전거(典據)는 아마도 베다(Vedas)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른바 인도 정통 문화를 이끌어 온 아리안 인들의 신화적 감수성은 베다에 나타나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 표현 속에서 찾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다에 나타나는 신관의 특징을 이야기 할 때 거론되는 가장 대표적인 용어는 Henotheism이다.5) 이는 일종의 택일신론(擇一神論)이라 할 수 있는 데, 일반적으로 여러 신이 인정되는 가운데 상황에 따라 절대신(絶對神)이 결정되는 형태의 신관이라 말한다. 흔히 신(神) 개념의 발전 관점에 따라 일신론(一神論)의 전 단계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일신론으로의 변화가 진보를 의미한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앞서 거론한 신화적 사유 형태의 특성에 따라 신(神)이라는 개념을 설명하자면 아직 미정립된 자아를 압도하는 주위 객관의 힘에 대한 그들 나름의 경험을 설명하는 다양한 방식 중의 하나로 일신론도 자리매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일신론적 관점은 압도적인 주위 객관의 힘에 대한 경외감(敬畏感)이 보다 논리적으로 혹은 추상적으로 개념화할 때 나타나는 결과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일원론과 다원론을 우열의 관점에서 볼 수 없듯이 일신론이 다신론보다 우월한 형태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매우 빈약하다. 베다에 나타나는 신관은 이렇듯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유일신적(唯一神的) 신관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 안에 내재되어있는 절대 초월적 신 개념과 이에 따른 가치관 수립이 베딕(Vedic) 우파니샤드(Upanisad) 종교 철학 전통의 특징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또한 부인하기 힘들다. 찬드라(A.N. Chandra) 같은 이는 특히 베다에서 보이는 이러한 경향성 즉 신의 절대성에 대한 압도감과 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고대 베딕 전통을 고수하던 아리안들의 경직된 사성계급 제도 등의 구체적 생활 방식까지 규정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6) 베딕 전통에서 보이는 이러한 초월 절대적 신의 세계와 세속 가변적 인간의 세계의 이분적 유리감은 이러한 신의 절대성에 대한 경외심의 경직화에 의해 더욱 촉진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베딕 종교 전통을 이어 발전한 우파니샤드의 철학적 세계관의 기본 틀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이른바 우파니샤드 철학 전개에 있어 중심 개념이 되고 있는 아트만의 속성 설명이 사실 베다의 신의 초월 절대성 설명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다음의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구절들은 베딕 우파니샤드 전통의 일체성을 잘 보여 준다.
앞의 《리그베다》 인용 두 구절에 나타나는 그들의 신에 대한 생각은 공간적 의미에서 모든 존재를 규정하는 것으로 때로는 비규정적(非規定的) 존재 일반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생각은 자연히 신을 시간적 의미에서 추론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만물을 새롭게 이끌어 가는 운동의 원인자이며 완성자라는 생각을 베다 곳곳에 표현하도록 만든다. 유사한 방식으로 그는 서열상 최고의 존재이어야 하므로 신 중의 신으로 표현되며, 이러한 생각의 논리적 귀결의 하나로 우주의 생성 운동 법칙의 주재자라는 생각을 낳는다. 이와 같은 생각은 다만 베다 전통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사실 절대신 개념을 지닌 문화권에서는 이와 유사한 방식의 논의가 펼쳐지고 있으며, 이는 논리적 개념적 사유의 확장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베딕 우파니샤드 전통의 경우 이러한 생각이 논리적 귀결인 초월 절대자를 실체적(實體的) 실재(實在)라고 믿도록 함과 더불어 구체적 현상을 비실체적 비실재(非實在) 혹은 환영(幻影)과 같은 존재로 가치절하(價値切下)하는 단순 이분화(二分化) 경향을 강하게 나타나도록 한다는 데 있다. 세 번째 인용 구절인 우파니샤드의 아트만 설명은 그 실체성을 내재화했을 뿐, 그것이 구체적 생성 변화가 일어나는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님을 강조하는 면에서 베딕 전통과 동일한 기조를 보여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아마도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다른 것이라는 주장은 이들에게는 오히려 이상한 주장이 될 것이다. 즉 범아일여(梵我一如)는 그들의 전통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생각인 것이다. 불교가 바로 이러한 세계관을 의심하고 비판한 비바라문(非婆羅門) 즉 반베딕(Anti-Vedic) 전통의 정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학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인도 종교와 철학 전통 내에서의 용어의 공통성 혹은 막연한 인도철학 일반의 공통성에 기대어 불교를 봄으로써 불교의 비바라문적 성격을 종종 간과하곤 한다. 이른바 무아와 연기가 인도철학사 상에서 불교의 정체성을 말해 주는 용어임을 미시적(微視的)으로는 잘 설명하면서도 그것이 전제한 세계관이 그 이전의 초월적이며 실체론적인 베딕 우파니샤드 전통에서 보여 주는 그것과는 어떤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 지에 대한 정치(精緻)한 거시적(巨視的) 비교를 보여 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7) 비바라문 전통의 불교가 바라문 전통의 세계관과는 다른 관점을 지니지 않은 채 바라문 전통을 비판했다면 그 비판의 생명력은 그렇게 길지 못했을 것이다. 아트만과 같은 허구적 실체를 부인하는 무아(無我) 이론, 불변(不變)의 정적(靜的)인 세계의 비실재성을 부인하는 연기(緣起) 이론은 분명 아리안 중심의 종교와 철학이 의지하고 있는 사유 방식과는 분명 다른 사유 방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불교도 인도적 토양 속에서 배태된 것이라면 그것의 사유 양식 또한 인도사상사 전통 내에서 그 뿌리를 추적해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교사상 뿌리 찾기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불교적 세계관의 적극적인 표현 형태인 연기론을 우선 살펴야 할 것이다.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특징은 불교가 이 세계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사물과 사태의 연속체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물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아니하는, 서로 의존하여 있다는 관점은 사물과 사태의 연속성 혹은 상호 침투성에 대한 감수성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분적 논리적 사유가 주된 사유 방식이 되기 이전에 압도적으로 작동되었던 미분적 연속감에 근거한 신화적 사유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앞서 거론한 바 베다에 나타나는 신화적 감수성은 압도적 힘으로서의 객관세계에 대해 주관이 존재론적으로나 가치론적으로 왜소화 부정화 되면서, 동시에 신과 인간의 두 세계의 가름이 심화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인도사상사 전반에 걸쳐 아무런 저항 없이 관철되었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저항 즉 비주류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혹은 반베딕적(Anti-Vedic)이라고 할 만한 생각들은 베다와는 다른 뿌리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 민간설화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민간 설화 등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사유 방식은 많은 경우 피지배층으로 전락했을 것으로 추론되는, 아리안 족 지배 권력 장악 이전의 선주민의 사유 방식과 직간접적인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양자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매우 다른 관점에서 묘사되는 인드라 신의 모습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남녀양성(Androgynous)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이해하기도하며, 암소 똥으로 만들어졌다고도 생각한다. 가뭄이 닥쳐 어려움이 고조되면 그 지방 여인들은 응고된 우유, 볶음밥, 그리고 당밀을 그에게 바치고, 그의 주위를 밤새 돌며 춤을 춘다. 많은 외설적인 제의(祭儀)를 펼치는데, 이는 그가 이 제의에 자극받아 비를 내리도록 하려면 계속 그를 못살게 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된다.8)
첫 번째 민간설화 소개에 나타난 인드라 신은 분명 베다에서 묘사되는 초월 절대적인 신의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민중들이 친근하고 가깝게 느끼는 잡신적(雜神的) 성격이 그들의 인드라 신 묘사에 강하게 투영되어 있는데, 사실 이것은 비단 인도 민간설화에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인도에도 이러한 신관 즉 인간과 근거리에서 소통하는 신관이 그 전통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인도에서의 다신론(多神論)적 세계 이해 전통이 매우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이유의 한 단서를 추론하게 해 준다. 물론 이러한 현상 즉 아리안 이전의 선주민의 사유 방식의 흔적으로 보이는 보다 원초적인 형태의 신화적 감수성과 불교 이론이 지닌 세계관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대한 논의10)는 이 글의 범위를 넘는 것으로 일단 논외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신화적 감수성 확인은 불교의 연기론적 세계관이 인도사상사에서 갑작스럽게 돌출된 것이 아니라, 인도의 주류 혹은 비주류 전통 내에 내재한 사유 방식 일반에 대한 붓다의 총체적이며 균형 잡힌 이해에 의해 나타난 결과물로 보고자 하는 이 글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데에는 분명 일조를 하리라고 본다. 불교의 무아 이론이 특히 우파니샤드 전통의 아트만 개념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임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아트만의 존재에 대한 부정은 불교 외에도 비바라문 계열의 철학 종교들이 모두 다 하고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불교의 비판이 가장 큰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던 까닭은 그 비판이 기반하고 있는 세계관이 다른 비판의 그것과는 달리 바라문 전통과는 철저한 결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전통의 세계관과의 차별성 그것은 바로 사태를 동적이며 연속적인 계기로 바라보는 연기관으로부터 비롯된다. 불교의 연기론의 특성을 보여 주는 가장 일반적인 글은 아마도 《맛지마니까야(Majjhima-nika죚ya)》의 다음과 같은 구절일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는 그것이 어떤 존재든지 스스로 홀로 독립적으로 유지되는 실체적 존재는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실체적 존재 설정의 원인을 우리가 앞서 거론한 신화적 사유에서 논리적 사유로의 전환 관점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논리적 사유의 특징인 개념적 세계 파악에 있어 개념의 기능적 속성을 간과하고 존재물화함으로써 야기된 실체론적 세계 파악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념적 구성물을 실재로 확신하고 나아가 그것에 긍정적 궁극적 가치를 부여하고 추구하는 인간의 사유 경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일 따름이다. 결국 불교의 연기론적 관점에서 보면 브라흐만과 아트만과 같은 존재는 외적(外的)인 거대(巨大) 존재 혹은 내적(內的)인 미소(微小) 존재라는 개념의 실체화의 극단적인 예로서 허구적인 대상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불교의 무아 이론을 논리적으로 정치하게 전개시키고 있는 《반야경전(般若經典)》과 《중론(中論)》과 같은 문헌을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들이 사용하는 이중부정 논리의 의도도 보다 명확히 이해될 수 있다. 《금강경》의 다음과 같은 구절은 불교의 이중부정 논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숙고토록 하는 좋은 구절이다.
이것을 법도 비법도 아닌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이 구절에 대한 해설의 가장 일반적인 방식 중의 하나이다. 문제는 그럴 경우 그 무엇이 신비하고 초월적인 것으로 해석될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즉 그러한 방향으로 이해될 경우 이 구절은 불교가 역사적으로 비판, 극복하고자 했던 우파니샤드나 베다에서의 세계 이해방식의 틀 속에 다시 갇히게 된다. 아마도 《금강경》과 같은 수많은 반야부 경전들이 독자들이 지루할 정도로 다양한 예의 이중부정 명제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언명이 베딕 우파니샤드적으로 이해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부정 명제들은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개념들을 단순 정위시켜 실체화하는 것을 경계하는 즉 비실체론을 설파하는 무아론을 환기시키는 장치 정도로 이해하고 더 이상의 지나친 해석을 가하지 않는 것이 《반야경전》의 그와 같은 표현에 대한 적절한 독법이라 하겠다. 이런 맥락에서 다음의 구절을 분석해 보자.
이것은 무아라는 붓다의 깨달음을 정적(靜的)으로 이해된 존재 일반(法相, 衆生相), 영혼불멸적 개별자(我相), 구체적 개별자(人相) 등과 같은 개념들에 비판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불교의 부정 명제는 우파니샤드가 초월적 존재 혹은 세계를 강하게 전제하고 그것의 표현 불가능성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이분적으로 드러나는 혹은 그런 개념 형식에 따라 이해되는 존재들의 실체론적 혹은 초월적 해석을 거부하는 수단으로써 사용된다는 점을 항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무아론이 바탕하고 있는 불교 연기론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해 보면 그 의미가 다음과 같이 명확해질 것이다.
③연기적 역동성에 수용된 신화적 미분성 불교의 역동적 세계관인 연기론은 모든 사태들이 상호 의존해 있다는 현상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방식은 굳이 불교 이론을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가 세계를 이해할 때 의식, 무의식적으로 작동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불교는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연기적 경험 현상의 의미를 정확히 읽어내어 밝히고 있을 따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바라문 전통의 철학이 인간의 세계 이해 방식의 한 특징인 개념적 세계 이해에 매몰되어 버림으로써 간과한 즉 개념으로는 가두어 잡을 수 없는 인간 내면 깊은 곳에서 작동되는 경험의 또 다른 측면을 불교의 연기론은 복원해 내고 있다는 말이다. 역동적 연속감, 합일감, 변화감을 비실재 혹은 허구적 세계로 부정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바라문 전통 사상을 비판하고 오히려 그러한 경험의 구체성을 환기시켰다는 면에서 불교를 보면 다른 어떤 인도사상과도 구별되는 불교의 인도사상사적 지위가 새롭게 파악될 수 있다. 불교의 바라문 전통 비판의 역사적 자리매김을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요약한다면, 그것은 좁게는 인도 사유 전통의 또 다른 축인 Pre-Aryan, Pre-Vedic적 사유 방식의 회복 혹은 정당한 제자리 찾기라 할 수 있으며, 넓게는 인간 사유 일반 즉 미분적인 신화적 사유 방식의 특징인 연속감, 역동감과 이분적인 논리적 사유의 특징인 분리감, 고정감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확인함과 더불어 이러한 인간의 이질적인 두 경험 방식(신화적, 논리적 사유 경험)에 균형을 잡아 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①노장 철학의 혼돈(混沌) 개념 수용의 의미 서양철학사 기술에 있어서 철학의 기원에 대한 설명의 일반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철학이 신화적 사유의 극복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단순 도식은 콘포드(F. M. Conford)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서 수정되어 그 이전의 신화적 전통과의 연계성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기는 하지만, 서구철학에서의 신화적 사유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우위성 강조 경향은 그들의 전통 내에서 흔들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서구의 철학적 사유에 비견될 만한 담론이 형성되는 제자백가 시기의 모습은 이와는 많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도가의 원류인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경우를 살펴보면 더욱 그러하다. 특히 장자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신화적 이야기 혹은 신화적 존재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이 글이 주목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도가철학의 요소이다. 이러한 특징을 단지 비유를 즐기는 장자의 문학적 특성으로만 처리하기에는 그것을 통해 전해지는 철학적 통찰력의 비중이 너무 크다. 노장적 담론의 이러한 특성은 문학과 철학, 신화와 철학 등의 범주 구분에 종종 적용 대입되는 인간의 감성과 오성의 영역이라는 가름을 표준으로 삼아 분석할 경우 쉽게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노자나 장자에 나타나는 신화적 이야기를 비철학적인 것으로 구분할 경우 노장(老莊)이 그것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였던 그들의 지적 통찰을 온전히 읽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필자는 오히려 그들이 신화적 이야기 또는 신화적 존재 묘사를 통해 어떻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지적 통찰 혹은 철학적 통찰을 담아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보다 타당한 《도덕경》과 《장자(莊子)》의 독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자와 장자가 이러한 표현 기법을 쓰는 이유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그들은 오히려 신화적 사태 속에서 이 세계의 본래 모습을 보다 더 온전히 읽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이 혼돈(混沌) 개념을 적극적으로 해석 수용하는 태도에서 분명해 진다.
첫 번째 노자가 보여 주는 혼돈적 근본 우주의 선행성 신비성 강조에서도, 그리고 두 번째 장자가 거론한 보고 듣고 숨 쉬는 등의 기능이 없는 즉 구분적 감각을 지니지 않은 혼돈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 묘사에서도, 우리는 노자와 장자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잘 정돈된 그 무엇 이전의 원초적이고 미분적인 근원에 적극적인 가치를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라르도(N. J. Giradot) 같은 이는 이와 같은 묘사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도가적 세계관의 출발점에는 서구와는 다른 혼돈에 대한 긍정적 수용16)이 나타나며, 이를 바로 보아야만 도가적 세계관과 그들의 언명이 이해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도가적 세계관의 이와 같은 특성은 앞서 설명한 바처럼 고대 중국인들의 신화적 세계관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신관을 상기하며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연결 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중국인이 생각하는 여러 창조신 가운데 하나인 반고(盤古)는 서정(徐整)의 《예문류취(藝文類聚)》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이 글에 나타난 우주 창조에 있어서의 반고의 지위는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최고신의 성격을 가늠토록 해 준다. 여기서 반고는 혼돈(混沌)의 원초적 우주 가운데에서 생성되어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을 주재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반고는 인도 혹은 서구 전통에서 보이는 우주 창조자로서의 절대신과는 달리 혼돈 이후에 생성된 우연적 존재이다. 다시 말해 하늘과 땅에 버금가는 위대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반고에 대한 생각은 반고와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오운역년기(五運曆年紀)》에서 그 중국적 성격이 극명해진다. 반고 신의 죽음 그리고 만물과 인간의 탄생을 묘사하는 이 신화에서 뭇 인간들은 반고 신의 몸도 아닌 그의 몸에 붙어 있는 벌레들의 변신으로 그려진다.18) 이러한 그들의 생각, 즉 자연 변화 과정의 자연스러운 산물 중의 하나로서의 거대한 신과 사소한 인간이라는 생각은 신과 인간 사이의 차별감을 베다에서 보이는 초월과 세속의 절대적 분리로까지 몰고 가지는 않도록 하였던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고대 중국인들이 느꼈던 신과 인간과의 거리감은 서구나 베딕 전통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으리라는 추정을 가능토록 한다. 임방(任昉)의 《술이기(述異記)》에서 보이는 치우(蚩尤) 신에 대한 중국인의 태도는 그와 같은 추론이 타당함을 보여 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중국인들은 위대한 신으로서의 창조신에게조차도 베딕 전통의 사람들처럼 절대적 압도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같은 이유로 악신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악신인 치우 신에게 사당을 짓는 그들의 신관 속에서 우리는 선신과 악신의 경계, 신과 인간과의 경계, 자연과 인간과의 경계가 그렇게 날카롭게 나뉘지 않는 그들의 세계관의 특성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다시 질문하게 된다. 아마도 그에 대한 답은 앞서 인용한 지라르도(N. J. Giradot) 같은 이들이 언급하고 있는 중국인의 혼돈에 대한 긍정적 수용으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역동적 미분의 상태인 혼돈에 대한 그들의 긍정적 태도는 분화된 세계에서의 온갖 대립 갈등뿐만 아니라 정연한 질서조차도 임시적인 것으로 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혼돈에 대한 태도는 신화적 사유에서 보이는 미분적 연속감 역동감에 대해 그들이 일상적 친화성을 유지해 왔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토록 해 준다. 노장 철학은 바로 이러한 고대 중국인의 신화적 감수성을 철학적 사유에 순접(順接)시켜 녹여 담아낸 것으로서 《도덕경》과 《장자》에서 자주 보이는 신화적 이야기 혹은 그것에 근거한 개념의 수용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도덕경(道德經)》과 《장자(莊子)》가 신화 이야기가 아닌 철학적 문헌이라는데 크게 이의를 제기할 학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서구 철학이 지향하는 형식의 논의 구조를 충실히 재현하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그것이 인간이 논리적 사유를 주된 사유방식으로 하여 세계를 설명하는 시기 이후의 지적 산물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노장이 나름의 논리적 추론 체계망 안에 고대 중국인의 신화적 감수성을 담아 표현했을 것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노장에 담겨 있는 신화적 혼돈 개념 혹은 그에 관한 이야기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신화적 감수성을 직접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기도하지만 한편으로는 논리적으로는 추론된 세계의 최초 원인으로, 구체적으로는 이 세계를 창조해내는 신비적 힘의 상태로 추상·개념화하여 표현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현, 현묘라는 글자를 갑골문적 기원을 좇아 살펴보면, 엉켜 있는 실타래로부터 끊임없이 실을 이끌어 내는, 혹은 그 양태의 미묘함을 지칭하는 글자임을 알 수 있다. 노장이 반복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그들의 현묘지도라는 것도 결국 이렇듯 엉켜 있어 신비해 보이는 그러나 끊임없이 만물을 생산해 내는 도(道)라는 생각의 표현인데, 이러한 의미를 지닌 도 개념은 앞서 설명한 고대 중국인의 신화적 미분에 대한 친화적 정서의 전통을 배제하고는 그 출현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렇듯 논리적으로 추론된 이 세계의 근거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그것의 경험이 신화적 감수성으로 접근해야 하는 묘사하기 힘든 미분적 양태의 경험이라는 이 두 가지 성격 즉 논리적 추론과 신화적 신비경험이 동재(同在)한 도(道)라는 생각은 도가(道家)들로 하여금 도의 내용을 단정적으로 정의하기 힘들게 한다. 이런 까닭에 노자와 장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때로는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방식도 동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나타나는 도(道) 표현의 난해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들의 표현 방식을 단순 분류하여 가지치기를 해 보자면, 그것은 대개 다음의 네 가지 방식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는 이분적으로 드러나는 혹은 인지(認知)되는 개물들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언명(言明)들20) 이며, 둘째는 흔히 이분 대립적으로 보이는 개물들이 고립적이지 않다는 혹은 상호의존적(相互依存的)이라는 자각을 보여 주는 문장21)이고, 셋째는 이분적 대립의 이전 상태 전제와 그것의 묘사인데, 말하자면 곡신(谷神), 현빈(玄牝) 등의 용어로 표현되는 신비적 존재 묘사와 수없이 반복되어 나오는 모순긍정적(矛盾肯定的) 명제들22) 이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모든 언어적 표현은 그것이 단순한 이분적 사유에 근거한 표현이든 또는 모순긍정을 포함한 어떤 형태로의 표현이든 이분적 언어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는 성찰을 보여 주는 문장들23) 이다. 이 글의 목적과 관련하여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표현 형식은 세 번째이다. 도가의 모순긍정 형태의 문장들은 동양이 서양과 다른 방식의 세계 이해를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언어 쓰임 방식이다. 이것은 구체적 현상세계의 설명조차도 이분적 대립 범주 어느 한쪽만으로는 온전한 설명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함과 아울러 그 까닭이 이분적 세계가 이분화 이전의 세계와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이 개입됨으로써 도출된 표현이다. 이것은 초월 절대 세계와 가변적 현상세계의 이분성에 기초한 세계 이해 방식을 그들의 주된 사고방식으로 운용하는 서구 혹은 베딕 우파니샤드 전통에서는 나오기 힘든 표현이다. 이와 같은 사색으로부터 도가는 언어와 그들이 이해했던 근본 세계와의 괴리(乖離)를 인식론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네 번째의 도(道) 이해 표현 방식 문장은 그러한 성찰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그 표현 형식만으로 보면 그것은 마치 그들이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가 전통이 개념적 틀에 담기 힘든 미분적 역동성 연속성 경험을 구체적 경험으로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그것이 지칭하는 것을 초월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한정하여 표현하기 어려우나 구체적인 그래서 신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경험 세계로 해석해 내야 함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논리적 사유의 산물인 이분적 개념적 범주에 사로잡힌 세계 이해 방식의 한계를 비판하고 이의 극복을 위해 비이분적 사유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양자에서 공통되는 세계관이 발견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실제 유사한 목표를 지니고 있는 반야경전류의 이중부정 언명과 도가의 부정 언명은 그 표현 형식의 유사성으로 인해 중국인들이 불교를 쉽게 자기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 중의 하나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가가 불교와는 다른 이질적인 철학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도가가 이분화된 세계를 부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이상으로 설정한 세계가 고대 중국인이 지닌 신화적 미분의 감수성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았다. 물론 앞서 요약한 도가의 도 이해 방식의 네 번째 단계에서 보이는 철학적 통찰력은 불교 전통에서 강하게 유지되어 온 인식론적 반성이 도가 전통에도 잠재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중국적 실재론이 강하게 작용했던 실제 역사상의 도가 사상 전개에 있어서는 모순긍적적 도체(道體)에 대한 전제와 이의 추구가 도가 철학자들의 중심 과제가 되어 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중국에서의 불교 이해는 이 글이 설명한 노장적 세계 이해 방식뿐만 아니라 논리적 사유의 부정적 측면이 보다 더 강하게 노정된 형이상학화된 도가 철학 즉 위진현학적 사유가 직접적으로 개입됨으로 인해 두 사유 방식 본래의 철학적 통찰의 긍정적 융합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발생된다. 앞서 설명한 도가의 네 번째 단계의 철학적 통찰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에 따라 다시 도가의 이상을 비추어 보면 실제 도가의 역사에서 나타난 도가의 모습, 즉 미분적 도체를 궁극적 이상으로 삼고 모든 존재가 그런 모습을 지니게 될 때 삶의 난제들이 최종적으로 해결된다고 믿는, 그러한 모습은 도가의 궁극적인 태도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더더구나 진정한 불교도라면 그러한 신비한 도체로의 회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불교는 아트만과 같은 극미(極微)의 실체이든, 브라흐만과 같은 거대(巨大) 실체이든, 신비(神秘)한 도체(道體)이든 그것이 구체적이고 생생한 경험 안에서는 작동되지 않는 무의미한 추상적 존재로 판단되면 그것은 미망(迷妄)의 산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중국사상사 상에서 이 두 위대한 사상이 보여 준 뛰어난 철학적 통찰의 발전적인 융합 사례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학문의 폭과 깊이가 부족한 필자로서는 확언하기 무척 어려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중국 선불교 역사 속에 보이는 몇몇 뛰어난 조사(祖師)들의 언명 속에서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 까하는 조심스러운 예측을 해 보지만, 이 또한 필자가 중국 선불교 전공이 아닌 관계로 적극적으로 말하기는 매우 조심스럽다. 이 문제는 추후 과제로 남기면서 관련 학자들의 지도를 기대해 본다. ■ |
출처 불교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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