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수보살(龍樹菩薩, Nagarjuna, 150~250)은 중론에서 연기(緣起)를 중도(中道)로 해석하여 어떤 고정적인 견해에 집착하는 모든 것을 논파하였다. 중도란 ‘상주(常住)’나 ‘단멸(斷滅)’같은 고정된 하나의 상태로 사물의 모습을 기술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용수는 중도의 원리를 네 쌍의 대립되는 개념으로 분류하여 팔불중도(八不中道)를 말하였지만 꼭 연기를 여덟 가지의 대립되는 개념으로 분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립되는 개념들의 쌍을 하나로 묶어 음(音)과 양(陽)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것이다.
현대물리학의 기본이 되는 양자역학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한 사람은 덴마크의 물리학자 보아(Niels Henrick David Bohr, 1885~1962)다. 보아는 음-양의 개념을 자연현상을 기술하는 기본 개념으로 보고 이를 물리학적 원리로 정리하였다. 이 원리를 상보성원리(相補性原理, Complementary Principle)라고 부르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자연현상은 반드시 서로 상보적인 두 조(組, Set)의 물리량으로 기술되며 서로 짝이 되는 한 쌍의 상보적인 양은 동시에 정밀하게 측정할 수 없다.”
‘물리량’을 물리현상을 나타내는 ‘상태’라고 보아도 좋다. 양자역학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양자장론(量子場論, Quantum Field Theory)에서는 실제로 ‘상태’를 기본적인 물리량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량’에 대응하는 ‘상보적인 물리량’이란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가리킨다.
즉 자연현상은 하나의 고정된 개념만으로는 결코 기술할 수 없고 반드시 이 개념과 짝이 되는 대립되는 개념을 함께 사용해야만 사물을 제대로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기술한다고 하지만 필수적으로 불확정성원리에 따라 어떤 불확실성이 따라야 한다. 그러니 상보성원리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미시세계의 자연 현상은 반드시 이 현상을 나타내는 ‘기본적인 상태’와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으로 기술되며 이 ‘상태’와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동시에 정밀하게 알 수는 없다.” 이 원리는 일체의 기본적인 물리량에 대하여 불확정성원리가 성립토록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일반화한 것이며 자연을 기술하는 기본적 물리량 하나하나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보아는 상보성원리를 가리켜 음양설(陰陽說)의 물리적 표현이라고 불렀는데 음과 양은 어느 한 쪽을 ‘자연의 어떤 상태’라고 본다면 다른 하나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된다. 상보성 원리를 음양설과 같다고 하면 세상은 음과 양의 이원론적 구조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상보성이란 파동성과 입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 상보성은 이중성과 같은 말이다.
다만 이중성이라고 하면 하나의 사물이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성질’을 갖는다는 것을 뜻하는데 비해 상보성이라고 하면 우주는 음양(陰陽)의 조화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상보성원리로 불교를 해석하면 “고정된 하나의 개념으로는 사물을 기술할 수 없다”가 된다. 고정된 하나의 개념은 자성(自性)을 말하는 것이니 상보성원리는 제법무아를 뜻하는 것이며 단멸과 상주를 버리고 중도를 취한다는 것과도 같은 말이다. 또한 상보성원리는 왜 ‘공’이 미묘한 개념인지를 말해준다. 공을 ‘없음’으로 해석하면 반드시 거기에 덧붙여 ‘없음에서 벗어나려는 경향’ 즉 묘유(妙有)를 말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이 중도이기도 한 것이다.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1010호 [2009년 08월 17일 1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