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하는 개념도 한 근원서 출발…본질은 같아 상반되는 신경계의 조화로 생명은 항상성 유지
「중론(中論)」에 ‘불일역불이(不一亦不異)’라는 말이 나온다. 사물의 참모습은 같은 것도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일상적 경험에서 볼 때 이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관찰한 이상 이 말을 간단히 무시할 수도 없다. 미시세계의 물리현상은 그렇다 치고 생명현상은 어떤지 살펴보기로 하자.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속시키려는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을 갖고 있다. 이것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몸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려는 성질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외부환경에 맞서 몸의 상태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그때그때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감지하고 변화에 맞추어 몸의 각 기관의 상태를 알맞게 조절하여야 한다. 의식적으로 이렇게 조절하는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몸의 상태가 자동적으로 조절되어야 한다. 인간의 자율신경계(自律神經系)가 이 역할을 맡고 있다.
자율신경계에는 교감신경계(交感神經系)와 부교감신경계(副交感神經系)가 있어 내장의 활동을 다스린다. 두 신경계는 그 작용의 방향이 반대로서 서로의 역할을 견제한다. 교감신경은 눈의 동공을 확대시키고 심장의 박동을 증가시키며 혈관을 수축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비해 부교감신경은 반대로 눈의 동공을 축소시키고 심장의 박동을 감소시키며 혈관을 확장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렇게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두 신경계의 작용을 길항작용(拮抗作用, Antagonism)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음양설에서 말하는 음과 양의 역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서로의 역할이 반대인 두 신경계의 길항작용에 의해 생명체의 항상성이 유지되는 것이라면 생명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이 필요한 것처럼 보일런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생명활동은 길항작용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므로 길항작용을 생명을 유지시키는 음·양의 조화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역할이 다른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는 모두 배아줄기세포라는 하나의 근원에서 성장한 것이다. 꼭 같은 세포가 반대의 역할을 하도록 분화(分化)한 것이다. 배아줄기세포는 외부자극과 생체신호에 따라 신경세포 말고도 수없이 많은 다른 세포로 분화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것을 가리키는 말로 ‘불일역불이’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불일역불이’의 ‘不一’은 현상계의 차별상을 말한다. 현상계의 차별상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不一’이라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不異’는 사물이 차별상을 보이지만 이 차별상들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니 ‘불일역불이’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개념이 사실은 하나의 근원에서 출발했음을 뜻하고 있다. ‘不一’은 ‘상보성(相補性)’을 강조하는 말이고 ‘不異’는 ‘이중성(二重性)’을 강조하는 말이다.
상보성과 이중성은 사실 같은 내용을 말하는 것이지만 강조하는 바는 다르다. 하나의 개념만으로는 자연을 기술할 수 없고 자연은 두 개의 대립되는 개념, 즉 상보적인 개념들의 협력과 조화에 의해 운행된다는 것이 상보성의 의미다. 이것이 ‘不一’의 의미다. 하나의 사물이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성질’을 갖는다는 것이 이중성이다. 여기서는 ‘하나의 사물’을 강조하여 ‘不異’라고 하는 것이다.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1012호 [2009년 09월 02일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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