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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 스님의 선문답 산책] 26. 향엄의 깨달음

slowdream 2009. 10. 9. 04:52

[인경 스님의 선문답 산책] 26. 향엄의 깨달음
위산 “태어나기 이전에 한 마디를 해보게나”
막혔던 향엄, 대나무 부딪치는 소리에 깨쳐
기사등록일 [2009년 09월 29일 11:57 화요일]
 

선종에서 모든 깨달음은 극적인 측면이 있다. 향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향엄은 젊어서 백장화상에게서 배웠고, 백장화상이 입적하자 그의 법을 계승한 위산화상의 제자가 되어서 수행을 계속했다. 향엄에게 어느 날 위산은 질문을 했다.

 

“백장 스님에게 있을 때 자네는 한 가지 질문에 열 가지 대답을 하였네. 이것으로 보아서 자네는 총명하고 똑똑하네. 삶에서 나고 죽는 문제가 크네. 내가 질문 한 가지를 할 터이니, 대답을 해보게. 우리는 부모에게서 태어나는데, 태어나기 이전에 한 마디를 해보게.”

부모미생전도일구(父母未生前道一句). 이것은 유명한 공안(公案)이라고 한다. 공안이란 본래는 재판관이 심리하는 책상을 의미하는데, 선가에서는 스승이 제자를 일깨우기 위해서 하는 질문으로서 일종의 발문이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이전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에, 한 마디 말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런데 한 마디를 해보라고 한다. 이것은 역설이다. 여기서 향엄은 말문이 막히고, 마치 안개 속에서 갑자기 철벽에 부딪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질문은 향엄의 가슴에 깊게 각인되면서 해결해야하는 실존적 과제, 곧 화두가 되었다. 벙어리가 되어서 방에 돌아온 향엄은 평소에 읽던 온갖 책들을 다 뒤져보았지만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향엄은 문제를 제기한 위산을 찾아가서 해답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위산은 “지금 내가 말해준다면 분명하게 후일에 자네는 나를 원망할 것일세. 설사 말해준다고 하여도 그것은 나의 견해이지 자네의 대답은 아니지 않는가?” 하면서 향엄을 되돌려 보냈다.

 

모든 학생들이 그러는 것처럼, 향엄은 늘 논리적으로 지식에 의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에 무슨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래도 한 마디를 한다면 태어나지 않아서 말할 수 없는데 다시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인가? 옛 말에 그림 속의 떡이라고 하더니,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지식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구나. 향엄의 고민은 더욱 늘어만 갔다.

 

어느 날 향엄은 그 동안 배워온 모든 책들을 마당에 내려놓고 불태워버렸다. “빌어먹을 이번 생에서는 결코 불법을 공부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하여 향엄은 행각의 길을 떠났다. 화두란 삶의 과제를 의심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는 큰 상처와 같은 것이다.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절망과 좌절을 크게 안겨주는 것이 화두이다. 책을 불태움은 큰 상처이지만 또 하나의 삶의 큰 전환점이다.

 

이렇게 가슴에 큰 상처와 절망을 안고 몇 해를 떠돌아다닌 향엄은 혜능의 제자로 알려진 혜충국사의 부도탑을 지나다가 이곳에 머물기로 작정을 하였다. 움막을 짓기 위해서 잡초를 깎고, 땅을 고르면서 무심결에 기와조각을 던졌는데, 그것이 대나무에 맞으면서 딱! 하는 소리가 났다. 이 순간에 향엄은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한 마디를 깨닫게 되었다. 너무나 놀라서 향엄은 기쁨과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멀리 위산 스님이 계신 곳을 향하여 감사의 3배를 올렸다. “당신이 설명하여 주었다면 어떻게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향엄의 깨달음은 참 극적이고 아릅답다. 그 어떤 말보다도 경이로운 삶 그 자체를 보여준다. 향엄은 위산화상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향엄은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가? 향엄은 이렇게 노래한다. “내게 하나의 기틀이 있네. 일순간에 그것을 알아보네. 만약 이것을 모른다면 그를 승려라 부를 수 없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출처 법보신문 1016호 [2009년 09월 29일 1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