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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 교수의 불교와 과학]22. 일즉일체 다즉일

slowdream 2009. 12. 10. 05:03

[김성구 교수의 불교와 과학]22. 일즉일체 다즉일
분화한 세포 하나 하나에 한 생명이 잠재
하나 속에 모든것 있고 모든 것이 곧 하나
기사등록일 [2009년 11월 30일 17:49 월요일]
 

신라 의상(義湘, 625~702) 스님의 법성게(法性偈)에 “일즉일체(一卽一切) 다즉일(多卽一)”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과 같은 뜻이고 천태불교에서 말하는 원족(圓足), 즉 “어떤 사물일지라도 모든 현상과 본체를 갖추었으므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덕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전체 속에 부분이 있지만 부분 속에도 전체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수학적으로 고찰하면 유한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어떠한 집합도 부분이 전체를 담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생명체의 경우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공간적으로 유한하고 그 속에 담긴 입자의 수나 종류가 유한할지라도 생명체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부분과 전체가 일대일의 대응관계를 가질 수 있다. 부분이 전체를 포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정란(受精卵, zygote)은 단세포이다. 이 수정란이 다세포 생물이 되기 위하여서는 수많은 세포분열을 거쳐야 한다. 수정직후부터 몸을 구성하는 주요기관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본격적인 조직분화가 일어나는 장배형성(腸胚形成, gastrulation)시기까지는 그냥 세포만 분열한다. 이때 일어나는 세포분열을 난할(卵割, cleavage)이라 하고. 분열초기에 생겨난 분리된 세포들을 할구(割球, blastomere)라 한다. 난할이 일어나는 동안 세포는 크기의 성장이 없이 세포분열만 일어나므로 세포들의 크기는 난할이 일어날수록 점점 작아지게 된다. 따라서 세포전체에 들어있는 물질의 양은 난할이 일어나기 전 수정란 하나에 들어 있는 물질의 양과 꼭 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물질의 양은 유한하다.

 

독일의 생물학자이며 철학자인 드리슈(Hans A. E. Driesch, 1867~1941)는 성게의 발생을 연구하는 중 성게의 수정란이 난할(卵割, cleavage)을 일으켰을 때 분열된 각각의 세포들로부터 완전한 성체가 형성된다는 것을 알았다. 세포 하나하나가 그대로 하나의 완전한 생명체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의 세포를 만능줄기 세포(totipotent stem cell)라고 하는 것이다. 드리슈는 반대로 두 개의 알을 합치면 하나의 성체가 생겨나는 것도 관찰하였다.

 

드리슈의 연구는 이후 다른 종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남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부분과 전체에 의미에 대해 철학적 고찰이 필요함을 말한다. 드리슈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철학적 고찰이 있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수정란이 난할을 일으켰을 때 생겨난 할구 하나하나의 역할과 가치는 생명체 전체와 동등하다는 것이다.

 

할구를 분리시키면 완전한 성체가 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모든 할구가 처음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동등한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할구의 운명은 발생 도중의 할구의 상대적인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할구 하나하나가 잠재적 생명체인데 이 줄기세포들은 자신이 처한 상대적 위치에 따라 여러 가지 성체의 세포들로 분화(分化)해나가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 수십조 개의 세포가 합쳐 인간이라는 하나의 생명체를 이룬다.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이 합쳐 하나가 되니 글자 그대로 일즉일체(一卽一切) 다즉일(多卽一)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한 순간의 마음속에 일체가 있고 하나의 먼지 속에도 일체가 있다고 말한다.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1025호 [2009년 11월 30일 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