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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 스님의 선문답 산책] 40. 신통

slowdream 2010. 2. 9. 13:26

[인경 스님의 선문답 산책] 40. 신통
물 긷고 땔감나무 줍는 일상이 바로 기적
사소함에서 기쁨 느낀다면 그것이 참 행복
기사등록일 [2010년 01월 11일 17:45 월요일]
 

어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부처님의 설법에는 황금빛 연꽃이 땅에서 솟아났다고 합니다. 오늘 스승께서는 어떤 상서로운 조짐이 있습니까?”
스승은 대답하였다.
“오늘 아침에 문밖의 눈을 쓸었다네.”

 


 

오늘날 종교에서 상서로운 일이나 종교적인 기적을 요구하거나 이런 현상을 매우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전생을 보았다거나 초인적인 예언을 하거나 혹은 기적을 시연하거나 하는 일 등은 종교집단에서 자주 거론된다.

종교문학은 이런 사실을 매우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부처님은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고 설법을 하실 때 땅에서 연꽃이 피어났다고 말한다. 달마가 나뭇잎으로 강을 건넜다거나, 죽었지만 다시 부활하여 인도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러한 일상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을 말하곤 한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단순하게 문학적인 서술인가? 아니면 실재했던 사실인가? 아니면 종교적인 상징인가?
고려후기 보조국사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수행을 하는 수행자들은 왜 초인적인 기적과 초월적인 인식을 보여주지 못하는가?”
아마도 수행을 하는 이들은 당연하게 이런 상서로운 조짐이나 신통변화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도인의 증거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보조국사는 “경솔하게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그것은 바름과 삿됨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다시 말하면 신통변화는 바른 길이 아니다. 이런 것들을 수행자가 추구하는 것은 삿된 길이다. 부처를 이루는 길은 밖에서 찾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부처인 줄을 알고, 이 마음을 깨닫는 것이 공부인의 바른 길이지 신통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바른 수행자의 태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당대의 방거사는 마조에게 “만법과 짝하지 않는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하고 물었을 때 “그대가 서강(西江)의 물을 다 마신 후에 대답하여 주겠다”는 대답을 듣고 문득 깨닫게 되었다. 서강의 물을 마시는 일은 평생을 다해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기적이다. 그리고 방거사는 다음 같은 게송을 지었다.

‘일상에 특별한 것 따로 없고/ 내 오직 스스로 즐길 뿐/ 존재하는 그대로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없어/ 곳곳마다 벌릴 것도 치워버릴 것도 없다/ 누가 주자를 말하는가?/ 티끌 하나 없는 산과 언덕이 있을 뿐/ 신통하고 묘한 작용이여/ 물 긷고 땔감나무 줍는 일이다.’


신통하고 묘한 변화란 물 긷고 땔감나무를 줍는 일이다. 이것이 기적이다. 특별한 것 없음이 바로 특별한 일이다. 우리는 종교에서 무엇인가 거룩한 것을 구한다. 성스런 최고의 진리는 무엇인가? 양무제가 달마에게 물었다. 그러나 달마는 단호하게 “그건 것은 없다”고 말한다.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구하는 그것이 번뇌이다.

 

부처님께는 상서로운 조짐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습니까? 그러자 “그래 오늘 아침에 내 문밖에서 눈을 쓸고 왔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기쁜 소식인가? 지금 여기, 걷고 세수하는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영광스런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은 행복하고 또한 행복한 일이 아니겠는가.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출처 법보신문 1013호 [2010년 01월 11일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