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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자 오강남의 인류의 스승] 그리스도교 창시자 예수님 ②

slowdream 2010. 4. 21. 00:28

[종교학자 오강남의 인류의 스승] 그리스도교 창시자 예수님 ②
“최후 심판 척도는 타인에 대한 자비와 섬김”
기사등록일 [2008년 01월 28일 17:46 월요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가 최초 기별
“神 위주 유대교 비판… 사람 중심의 사랑 역설
“창녀 등 차별받는 이들과 평등의 밥상공동체

 

<사진설명> 그리스도의 세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작. 런던 국립회화관 소장.
예수님은 침례와 시험을 받은 후 갈릴리로 돌아가 외치기 시작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가장 처음 외친 복음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4:17)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제1차 전법륜(轉法輪)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예수님의 최초의 기별이자, 중간의 기별이며, 또한 끝의 기별, 그야말로 초지일관(初志一貫)된 기별이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기별이 예수님이 가르친 복음의 핵심이었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 기별의 참된 뜻이 뭔가 하는데 대한 해석은 학자들마다 다르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많은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친 이 기별의 뜻을 푸는데 그들의 관심을 집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첫째, 예수님이 자기 당대에 세상 끝이 이를 것으로 믿고 거기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고 가르쳤다는 주장과 둘째,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비롯해 그 당시 많은 사람들과 달리, 미래에 올 별도의 종말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등장과 활동으로 천국이 이미 실현된 것으로 보았다는 입장이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예수님은 천국을 내 속에 있는 신성(神性)이나 나의 본성(本性)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르쳤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가르치며 대략 3년 정도를 보냈다. 부처님이 45년간 가르치신 것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다. 예수님은 자기의 말을 받아들이는 열 두 제자들을 모았다.

그 중에는 특히 어부들이 많았다. 열둘이란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숫자라 할 수 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 등 열 두 남성 제자들 이외에도 그 유명한 막달라 마리아 등 그를 따르는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천국의 건설을 위해 세상적인 것들에 집착하지 말하라고 가르쳤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면 하느님이 돌보시리라고 하였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공중의 나는 새나 들의 백합화처럼 특별히 스스로를 위해 애쓰지 않아도 하늘 아버지께서 다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이보다 훨씬 귀한 너희 인간들일까 보냐 하는 생각이었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철두철미한 신뢰에서 오는 느긋함 아닌가. 도의 흐름을 신뢰하고 스스로를 거기에 맡기라는 노자(老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연상하게 하는 말씀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이 가르칠 때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고 한다. 물을 포도주로 만
든다든가 나병환자나 눈먼 자, 혈우병 앓는 여인 등 병자들을 고친다든가 귀신을 쫓아낸다든가 죽은 사람을 살린다든가 물위를 걸어 다닌다든가 광풍을 잔잔하게 한다든가 떡 다섯 덩이와 생선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인다든가, 열매 맺지 않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해서 말라 죽게 한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복음서에서는 이런 것들이 새로 임할 왕국의 징조(표적과 기사, signs)라 하였다. 물론 이런 일을 문자적이고 역사적 사건으로 보기보다 상징적, 은유적으로 보는 그리스도인들도 많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거의 모든 종교 지도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로서 가히 ‘파격적’(subversive)이었다. 그는 특히 유대교를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종교로 변질시킨 종교지도자들을 ‘회칠한 무덤’이라든가 ‘독사의 자식’이라는 등의 말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아가 그 당시 유대인들이 모두 히브리 성서 『레위기』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거룩해야 한다는 ‘정결제도’(purity system)를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삼고 거기 매여 있을 때, 예수님은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고 하는 ‘자비’의 가르침을 그의 중심 가르침으로 삼았다. 율법을 둘로 요약하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그는 병든 사람, 죽은 사람, 피 흘리는 사람, 불의한 사람, 천한 사람 등은 불결한 사람, 부정 타는 사람들로 취급되어 기피 대상이었던 그 당시 제도에 구애받지 않고, 나병 환자, 죽은 사람, 혈우병 앓던 여인 등 누구라도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회적 위치, 인종, 종교에 따라 누가 의로우냐 거룩하냐 깨끗하냐 바르냐 하는 것 등이 사람을 대할 때 따져보는 표준이었던 그 당시 사회에서 그는 이런 차별과 장벽을 허물고, 오로지 누가 고통을 당하느냐 하는 것 하나를 표준으로 삼고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스스로 고통을 함께 하는 ‘자비’를 실천하고 가르쳤다.

 

‘자비’에 해당되는 영어 ‘com passion’이 어원적으로 ‘아픔을 함께 한다’는 의미라면, 예수님은 실로 이런 ‘자비’의 스승이었다. 그의 ‘밥상 교제’(table fellowship)는 창녀나 세리 등 그 당시 부정 탄다고 천시되고 기피되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었던 밥상 공동체였다.

예수님에게는 제도나 규례 같은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이 우선이었다. 제도나 규례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라”고 한 그의 말에서 그의 이런 태도가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는 인간이 맞게 될 최후의 심판에서도 이처럼 정결하냐 거룩하냐에 근거한 제도나 규례를 성실히 따랐느냐 하는 따위 외부적인 표준과 상관이 없이 ‘사람들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벗었을 때 옷을 입히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는’ 등 얼마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잘 섬겼느냐 하는 것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하였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기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다. 이렇게 자기를 낮추고 남을 섬기는 자세를 그는 그의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어주는 것으로 실증했다.
이런 사랑과 자비와 동정의 가르침이 물론 보통 인간으로서는 현실적으로 실천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님도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인간 내면의 의식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때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결국 윤리적인 단계를 넘어서는 종교적 차원임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항은 예수님이 하느님을 ‘아바’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아바’는 ‘아버지’보다 더욱 친근한 말로서 그가 하느님과 관계를 어떻게 파악했던가 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아바’라고 불렀다고 해서 반드시 인격신을 상정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궁극실재는 인격적이냐 비인격적이냐 하는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인간으로서는 그 궁극실재와 ‘인격적 관계’를 가지는 것이 가장 실감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처럼 인격적 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 랍비(선생) 전통에 따라, 가르치면서 ‘비유’(譬喩, parables)를 많이 사용했다. 비유는 가르침의 핵심을 짧은 이야기로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사람들이 그것을 오래 기억할 수 있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핵심을 스스로 더욱 깊이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해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가 말한 비유 중 많이 알려진 것으로 탕자의 비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등이 있다. 탕자의 비유에서 어느 부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받을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여 먼 나라로 가 허랑방탕(虛浪放蕩)하며 돈을 다 쓰고 돼지 밥으로 배를 채우다가 ‘참 자기에게 돌아오게 되자’ 일어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니 아버지가 뛰어 나와 옷을 입히고 자기 반지를 빼서 그에게 끼워주는 등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그를 받아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935호 [2008년 01월 28일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