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죽음은 인간에 대한 지고한 신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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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 빈치 作.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 그라체 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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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한 번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북쪽에 있는 가이사라 빌립보라고 하는 곳으로 갔다. 거기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다. 제자들이 ‘침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혹은 선지자 중 하나’라 하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성질이 급한 베드로가 제일 먼저 “주는 그리스도(메시야)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계했다.
예수님이 자기가 메시야임을 스스로 인지하거나 받아들였을까 하는 문제는 신학자들 사이에 논쟁점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그러나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이라 말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권세와 영광으로 나타날 메시야가 어떻게 고난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욕을 하였다.
“사단에 내 뒤로 물러가라!” 그 이유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 대신에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일이란 자기를 잊어버림이요, ‘사람의 일’이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함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예수님이 스스로 고난을 받을 것이라 한 것도 자기를 완전히 잊고 오로지 거룩한 목적을 위해 자기를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바로 이 말에 이어서 예수님은 그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였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마태복음16:24~25)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self-denial)이요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를 지는 것, 자기의 썩어질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는 뜻이다. 작은 자아(self)를 구하면 큰 자아(Self)는 잃어버리고, 작은 자아를 버리면 큰 자아를 찾을 것이라는 종교적 역설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큰 자아를 위해 작은 자아를 버리는 것이 독일 신학자 본훼퍼가 말하는 ‘제자 됨의 값’(cost of discipleship)이라 할 수 있다. 불교의 무아(無我) 사상을 상기시킨다.
이런 고백이 있은 후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갔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변형이 되어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 다시 하늘에서 소리가 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소리가 났다. 이 때문에 이 산을 나중에 ‘변화산’이라고 부른다.
영적으로 어느 단계에 도달한 사람은, 모세나 붓다의 경우처럼, 이렇게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다. 부처님 상에 빛이 퍼지는 모양이나 불꽃이 그러진 것이나 그리스도교 성화에 예수님의 머리 둘레로 후광(halo)이 나타나 있는 것도 이런 사실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인간에게 있는 일곱 개의 ‘에너지 센터(차크라)’ 중 여섯 번째 이마에 있는 것이 열리면 빛을 발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를 따르던 여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길을 떠났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기 위해 가는 길이지만, 제자들은 “누가 크냐?”를 가지고 논쟁을 했다.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는 날 누가 재무장관이 되고 누가 외무장관이 되는가 하는 것을 가지고 격론을 벌린 셈이다. 노자님이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이렇게도 드믄가” 한탄하고, 공자님이 “아,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하늘밖에 없구나.” 아타까워 하며 다른 이들이 자기들의 심원한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느꼈던 그 ‘실존적 고독’을 예수님도 똑 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 때는 유대인들의 큰 절기인 유월절이었는데, 예루살렘은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분주했다. 모두 이 절기에 메시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 중에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영접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나귀를 타고 들어가는 예수님을 향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며 환호하였다.
이른바 ‘예루살렘 입성’이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다가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환전상의 상과 제물로 쓰일 비둘기들을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었다. 제물을 팔아 이권을 챙기던 그 당시의 제사 제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다.
목요일 저녁, 제자들과 어느 집 다락방에서 이른바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다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며, 이것이 그의 살과 피니 받으라 하고, 이것으로 그를 기억하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가 그리스도인들이 지금까지 ‘성만찬’ 혹은 ‘성찬’을 거행하는 이유이다. 가톨릭에서는 이것을 ‘미사’라 한다.
만찬이 끝나고 모두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으로 갔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이르고, 거기서 ‘돌 던질 만큼’ 거리에 가서 홀로 기도했다. 이때의 기도가 그 유명한 기도,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는 기도였다. 제자들은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여 잠을 잤다. 얼마 후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의 안내를 받은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타나 예수님을 잡아갔다. 물론 최근에 발견된 유다복음에서는 유다가 배신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부탁을 받고 이런 일을 했다고 되어 있다.
유대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그를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빌라도는 여기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질문을 했다. “진리가 무엇이냐?” 예수님이 이 질문에 대답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복음서의 주장에 의하면 빌라도는 명절 때마다 죄수 한 명을 사면하는 관례에 따라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지만 유대인들이 반대하며 오히려 민란을 꾸미다가 잡혀온 바라바를 그 대신 방면하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복음서에 나오는 이 간단한 한 구절이 결국 예수님을 죽인 것이 로마의 식민지 세력이 아니라 유대인 자신이라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고, 이 생각이 서양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반유대교적 정서를 부추기는 근거로 작용하였다. 예수님의 고난을 묘사한 멜깁슨의 영화 〈패션오브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에도 예수님의 죽음이 유대인들의 책임인 것처럼 나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무튼 복음서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결국 유대인들이 원하던 대로 사형선고를 받고, 다음 날인 금요일 아침 골고다라고 하는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 형틀에 달려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십자가에 위에서 한 ‘일곱 가지 말’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것이다. 이 말은 시편(22:1)에 나오는 말로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내리고,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는’ 일이 있었다. 부처님 입멸 때 큰 지진이 나고 엄청난 천둥소리가 들렸다고 하는 것과 맞먹는 대목이다. 아무튼 정통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야 말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
복음서에 의하면 금요일 해지기 전에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의 허락을 받고 예수님의 시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일단 자기를 위해 준비했던 무덤으로 옮겼다. 이때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linen shroud)가 2006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이탈리아 투리노에 보관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튼 일요일 아침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들이 예수를 정식으로 장사하기 위한 준비로 예수님의 몸에 기름을 바르기 위해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고 있던 큰 돌이 옆으로 비켜져 있고 무덤은 비어있었다.
예수님이 ‘부활’을 한 것이다. 사복음서가 부활사건에 대하여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한 가지로 강조하는 사실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다는 그 ‘확신’이 절망 중에 있던 제자들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용기와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활한 예수님이 어떻게 되었는지 복음서 초기 사본에는 분명한 언급이 없고, 사도행전에 보면 부활 후 40일 만에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들려 올라가 구름에 싸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제자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고 했다. 이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예수님의 다시 오심, 곧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이유이다.
이상이 현존 4복음서 기록에 기초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과 행적의 대략이라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기억할 것은 이 복음서들에 나타나는 이런 예수님 상과는 사뭇 다른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그리스도교 초기에도 있었고 역사를 통해 언제나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다음 회에는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937호 [2008년 02월 18일 1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