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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자 오강남의 인류의 스승] 맹자(孟子)

slowdream 2010. 5. 6. 03:21

[종교학자 오강남의 인류의 스승] 맹자(孟子)
 
성선설〈性善說〉·호연지기〈浩然之氣〉로
성인의 길 가르쳤던 哲人

 
仁·義 사상, 역성혁명 정당화하는 사회정치 논리로 발전
네가지 덕성 키우면 누구나 聖人…성리학 형성에 영향

 

 

공자가 죽고 백년 쯤 지나 그의 가르침에 반대하고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설(兼愛說)을 들고 나온 묵자(墨子, 약 468~390년)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의 즐거움을 희생할 수 없다는 쾌락설(快樂說)을 강조한 양주(楊朱, 약 440~360년)였다. 이럴 때 나타나 이들의 사상을 논박하고 공자의 사상을 널리 펴고 계승하는 데 크게 공헌한 이가 바로 맹자(약 371~289년)였다. 맹자는 공자가 죽은 지 백년 후에 태어났으므로 직접 배운 제자는 아니었다.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에게서 배웠지만, 자신의 사명이 공자의 가르침을 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물론 맹자가 공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만은 아니다.

 

맹자 자신도 훌륭한 가르침을 남겼는데, 그것은 그의 책 『맹자』에 실려 있다. 『맹자』는 맹자가 여러 사람을 만나 자기의 생각을 펴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그 첫 장에 보면 그가 양혜왕(梁惠王)을 찾아가 나눈 이야기가 나온다. 왕은 맹자를 보고 “이렇게 불원천리하고 찾아오셨으니 우리나라에 이로움을 주시겠지요.”라고 했다. 맹자는 이에 대답하여, “왕께서는 어찌하여 이로움을 이야기하십니까?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인의(仁義)밖에 없습니다. 왕께서 어떻게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시면 대부들은 어떻게 내 집을 이롭게 할까 하고 서민들은 어찌 내 한 몸을 이롭게 할까 하여 나라는 온통 아래위로 이(利)를 빼앗는 것으로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인의만을 말씀하실 일이지 어찌 이로움을 이야기하십니까?”고 말했다.

 

맹자는 왕이 천명(天命)을 잃고 백성에게 강권을 행사하면 왕이 아니라 패(覇)로서 이런 ‘패권’을 잡은 이를 죽이는 것은 왕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잡배를 죽이는 것과 같다는 식으로 ‘혁명’을 옹호하는 듯한 이론을 비롯하여 여러 사회·정치적 가르침을 남겼다. 여기서는 종교 사상을 중심으로 핵심적인 것 두어 가지만 살펴본다.

 

많은 사람들에게 ‘맹자’하면 떠오르는 것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것과 그의 ‘성선설(性善說)’일 것이다. 맹모삼천지교란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 공동묘지 옆, 시장 옆, 학교 옆으로 세 번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이다.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이 본래 착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의 근거로 맹자는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 이야기를 꺼낸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면 누구나 놀라며 뛰어 가서 아이를 구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이의 부모로부터 무슨 대가를 얻어내려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의 칭찬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구하러 가지 않았을 경우 남의 비난이 무서워서도 아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남의 고통을 보고 ‘견딜 수 없는 마음’(不忍之心)이 있기 때문이고, 이로 미루어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다는 것이다.

 

성선설을 좀 더 부연한 것이 이른바 사단(四端)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지(四肢)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단’ 곧 네 가지 끝, 혹은 단초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 네 가지 끝이란 1) 측은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 2) 실수를 싫어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 3)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 4)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이다. 인간이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네 가지 가능성을 계발하면 각각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네 가지 덕성이 형성되고 이를 극대화할 경우 인간은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생각난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고 산파가 아기를 받아내는 것처럼 “학생 속에 이미 가능성으로 있는 무엇을 의식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의 교육을 뜻하는 ‘education’이라는 말도 ‘e+ducare’ 곧 ‘밖으로 끌어내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아이 속에 이미 있는 것을 계발하는 것이 교육이란 뜻인가? 마치 대리석을 가지고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그 속에 있는 상을 끄집어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절차탁마가 아닌가.

 

맹자는 인성 계발을 극대화하면 하늘을 알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하늘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이 우리 속에 완전히 갖추어져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하늘과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기심을 줄여가라고 한다. 이기심을 줄이고 줄여 나와 다른 사람과의 구별이 없어지고, 드디어 나와 우주와의 구별마저 없어지는 경지에 이르면 결국 나는 우주와 하나가 된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인간의 가능성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탁 트이고 자유스런 경지에 이른 사람이 바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진 사람이다. 완전한 자유인이다.

 

맹자는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누구나 이런 경지에 도달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는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요임금, 순임금이라고 보았다.

 

맹자를 논할 때 순자를 빼놓을 수가 없다. 공자의 정신을 이은 사람들 중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가 이상주의(理想主義) 쪽에 가깝다면 그 반대로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여 사실주의(寫實主義) 쪽으로 기울어진 이가 순자(筍子. 298-238)였기 때문이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란 본래 악한 것으로, 인간이 선한 성품을 갖기 위해서는 크면서 엄격한 훈련을 통해 배양하고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순자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무엇이 선하고 바른 것인가를 알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능력을 발휘해서 선한 일을 하도록 계속 노력하면 이렇게 축적된 노력이 습관처럼 되고, 그것이 다시 자연스런 선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길거리를 가고 있는 모든 사람이 결국 성왕인 우(禹)왕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가능성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1) 개인의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조직과 2) 스스로 그런 욕망을 제한하기 위해 필요한 예(禮)라고 보았다.

 

순자의 생각은 진(秦)시황 정권의 정치이념으로 채택되었지만 단명한 진나라의 멸망과 함께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이천 몇 백 년이 지나 모택동이 좋아하는 사상으로 다시 각광을 받기도 했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 중에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 물론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중국 역사에서 순자의 설을 채택한 것은 극히 짧은 시기 동안이었고 대부분 맹자의 설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어느 쪽 손을 들어야 할까?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요즘 많은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단일하거나 균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심리학자들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맹자는 인간의 ‘본성’ 중 밝은 쪽을 본성이라 했을 것이고, 순자는 그 중 어두운 쪽을 본성이라 했다고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왜 이런 주장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둘 모두 인간이 소인배의 상태에서 군자나 성인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서였다. 단 그렇게 되도록 하는 방법이 상이한 것 아닌가 여겨진다. 아이에게 피아노 연주자가 되도록 하는데, 맹자는 너는 피아노에 소질이 있으니 그 소질을 최선으로 살려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라고 타이르고, 순자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너도 천성으로 게으르니 정신 차리고 열심히 연습해서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라고 경고하는 셈이 아닐까. 물론 현대 교육자들은 맹자의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공자, 맹자, 순자 등의 고전 유학은 한대 이후 당대까지 성행한 불교나 도교에 밀려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송대(宋代, 960~1279년)에 들어오면서 일종의 유교 부흥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근래에 와서 학자들이 ‘신유학(新儒學·Neo-Confucianism)’이라고 한다. 신유학은 사실 고전 유학의 부흥만이 아니라 그 동안 성행했던 불교와 도교 사상을 포함하여 중국 전통 사상 전체를 아우르면서 나름의 새로운 사상을 체계화한 일종의 거대한 사상적 종합 체계라 할 수 있다. 신유학을 전통적으로 ‘성학(聖學)’이라고 하는데, 성인에게서 온 가르침이라는 뜻도 있지만 성인이 되기 위한 배움이라는 뜻이 더욱 강하다.

 

신유학파는 크게 정호(程顥, 1032~1085년)·정이(程, 1033~1108년) 형제와 주희(朱熹, 1130~1200년)로 대표되는 ‘이학(理學)’파와 육상산(陸象山, 1140~1225)과 왕양명(王陽明, 1472~1529)으로 대표되는 ‘심학(心學)’파 둘로 나뉜다. 이학을 주자학(朱子學)이라 하고 심학을 양명학(陽明學)이라고도 한다. 명대(明代) 말기에서 청대(淸代)에는 이학과 심학의 번쇄한 이론보다는 실천적인 지식을 강조하는 실학(實學)파가 등장하기도 했다.

 

신유학은 성인이 되는 길을 가르쳐 주는 문헌으로 『대학』을 중요시하는데, 성인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 여덟 가지 단계 곧, 격물(格物, 사물을 궁구함), 치지(致知, 앎의 정도를 극대화함), 성의(誠意, 뜻을 성실히 함), 정심(正心, 마음을 바르게 함), 수신(修身, 인격을 도야함), 제가(齊家, 집안을 꾸림), 치국(治國, 사회를 지도함), 평천하(平天下, 세계에 평화를 가져옴)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두 학파는 처음 단계인 ‘격물(사물을 궁구함)’에 대한 해석이 달랐다. 사물을 궁구하는 것을 두고 이학파는 여러 사물 속에 일관되게 있는 ‘이(理)’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심학파는 내 마음이 곧 이(理)이므로 내 마음을 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두 학파 모두 이렇게 사물이든 내 마음이든 오랜 기간 깊이 추구하면 결국에는 밝음[明]이나 깨침을 얻고, 이런 경지에 이른 사람이 궁극적으로 세계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같았다.

 

한국에서는 조선 시대에 주희의 성리학(性理學)이 주류를 이루었고, 심학파는 빛을 보지 못했다. 조선조 유학의 대가 이퇴계(李退溪, 1501∼1570년)나 이율곡(李栗谷, 1536∼1584년)은 다 같이 이학파 학자들로서 그 테두리 안에서 이(理)와 기(氣)의 관계를 논하고 밝혔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948호 [2008년 05월 06일 1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