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상윳따니까야

고닷따 경

slowdream 2022. 10. 20. 20:45

고닷따 경

 

찟따 장자에게 존자 고닷따가 말하였다.

 

“장자여, 한량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 아무 것도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 텅 빈 마음에 의한 해탈, 인상을 뛰어넘는 마음에 의한 해탈이 있는데, 이 개념들은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른 것입니까, 또는 의미는 같은데 표현이 다른 것입니까?”

 

“존자여, 어떤 이치로 보면 이 개념들은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릅니다. 그러나 다른 이치로 보면 의미는 같지만 표현은 다릅니다.

존자여 그렇다면 어떤 이치로 보면 이 개념들이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른 것입니까?

 

존자여, 한량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은 어떤 것입니까?

이세상에서 수행승이 자애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서쪽...남쪽...북쪽...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웁니다.

연민의 마음으로...기쁨의 마음으로...평정의 마음으로...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웁니다.

 

존자여, 아무 것도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은 어떠한 것입니까?

이세상에 수행승이 이 한량없는 의식의 세계를 뛰어넘어 ‘아무것도 없다’라는 아무 것도 없는 세계를 성취합니다. 존자여,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이라 부릅니다.

 

존자여, 텅빈 마음에 의한 해탈은 어떠한 것입니까?

이세상에 수행승이 숲으로 가거나 나무 밑으로 가거나 빈집으로 가거나 ‘자아나 자아에 속한 것은 텅 빈 것이다’라고 성찰합니다. 그것을 텅빈 마음에 의한 해탈이라고 부릅니다.

 

존자여, 인상을 뛰어넘는 마음에 의한 해탈은 어떠한 것입니까?

이세상에 수행승이 모든 인상에 정신을 쓰지 않고, 인상을 뛰어넘는 마음의 삼매를 성취합니다. 그것을 인상을 뛰어넘는 마음에 의한 해탈이라고 부릅니다.

 

존자여, 그렇다면 어떤 이치로 보면 이 개념들이 의미는 같은데 표현만 다릅니까?

존자여, 탐욕이 한계의 원인이고, 분노가 한계의 원인이고, 어리석음이 한계의 원인입니다. 번뇌가 소멸된 수행승들에게 이것들은 버려지고, 뿌리가 잘려지고, 기반을 상실한 종려나무 줄기처럼 되어서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한량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이 어떤 경지에 이르면, 그것들 중에 최상이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의한 해탈이라고 명확히 밝혀집니다. 그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의한 해탈에는 탐욕이, 분노가, 어리석음이 텅 비어 있습니다.

 

존자여, 탐욕은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고, 분노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고, 어리석음은 무엇인가가 있는 것입니다...아무것도 없는 해탈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그것들 중에 최상이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의한 해탈이라고 명확히 밝혀집니다. 그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의한 해탈에는 탐욕이, 분노가, 어리석음이 텅 비어 있습니다.

 

존자여, 탐욕은...분노는..어리석음은 인상의 원인입니다...그것들 중에 최상이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의한 해탈이라고 명확히 밝혀집니다. 그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의한 해탈에는 탐욕이, 분노가, 어리석음이 텅 비어 있습니다.

 

 

*번역 출처 전재성 박사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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