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와 똥막대기(도덕경 해설)

도덕경 47장. 멀리 나갈수록 앎은 줄어든다

slowdream 2007. 8. 11. 01:27
 

<제 47장. 멀리 나갈수록 앎은 줄어든다>


不出戶 知天下 不窺牖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是以聖人不行而知 不見而名 無爲而成


문밖에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며, 창을 내다보지 않아도 천도를 볼 수 있다. 멀리 나갈수록 참된 앎은 적어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돌아다니지 않아도 알며, 보지 않아도 그 이름을 알며, 무위로써 모든 일을 이룬다.



不出戶 知天下 不窺牖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是以聖人不行而知 不見而名 無爲而成(불출호 지천하 불규유 견천도 기출미원 기지미소 시이성인불행이지 불견이명 무위이성) 

 

  집안에 앉아서도 세상의 온갖 일을 안다는 것은, 누구네 집안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다, 누구에게는 어떤 일이 닥칠 것이다 하는 따위의 신비한 능력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현상계를 지배하는 질서를 깨닫고 나면, 인간과 그를 둘러싼 삶, 자연의 신비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그런 의미이다. 이렇게 道를 깨닫는 과정은 마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지, 세상 곳곳에 다리품을 팔며 두루 돌아다닌다 해서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바깥으로 쏠리면 쏠릴수록 번뇌만 깊어질 따름이다.


返本還源已費功   근본에 돌아가고 뿌리에 돌아옴에 이미 힘을 허비하였으니

爭如直下若盲聾   어찌 곧바로 눈 멀고 귀 먹음만 하리오

庵中不見庵外事   암자 안에서 암자 밖 일을 보지 않으니

水自茫茫花自紅   물은 망망히 흐르고 꽃은 저절로 붉구나


 송나라 때 확암(廓庵) 스님의 게송이다.

  그렇다면 <화엄경>의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갖은 고초를 겪으며 만행(萬行)을 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선재동자의 만행은 선지식을 친견하고 도를 깨닫기 위한 것으로, 세상의 온갖 경험과 지식을 내 것으로 소화해서 깨달음을 얻겠다는 부질없는 행위와는 전혀 다르다. 선재가 친견한 선지식은 모두 55명인데, 수행자ㆍ왕ㆍ귀족ㆍ여인뿐 아니라, 밑바닥 계층도 포함되어 있다. <장자>에도 꼽추ㆍ언청이ㆍ절름발이 등 겉모습은 볼품없으나 내면의 德은 성인인 하층민들이 등장한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老莊과 佛家의 만남을 확인할 수 있다. 본디 타고난 인간의 성품은 평등하다는. 세상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없지만, 그런다 한들 道를 깨달을 수 있겠는가? 이는 바닷속 모래알을 헤아리는 것처럼 참으로 어리석은 유위에 지나지 않다. 禪家에서는 한순간에 깨달아 생멸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이름하여 ‘단박에 뛰어넘어 여래지에 들어간다(一超直入如來地)’라 한다.   

 

  중국 선종의 황벽(黃檗) 선사가 말씀하시길,

“힘 센 사람이 구슬이 자기 이마에 박혀 있는 줄 모르고 시방세계를 두루 다니면서 밖으로만 찾아다녀도 끝내 찾지 못하다가, 지혜로운 이가 가르쳐 주면 구슬이 이마에 있음을 곧바로 아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