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장.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이름과 몸 어느 것이 더 소중한가. 몸과 돈 어느 것이 더 큰가. 이름과 돈을 얻는 것과 몸을 잃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마음에 쓰이는가. 지나친 집착은 커다란 대가를 치르며, 크게 쌓아두면 크게 잃는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춤을 알면 위태롭지 않으며, 이로써 영원할 수 있다.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명여신숙친 신여화숙다 득여망숙병)
‘이름’은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계급적 질서를 뜻하는 儒家의 명분(名分)이다. 계급의 철저한 수직적 위계화와 직업의 세분화와 등급화가 禮를 빌미로 삼아 이루어졌다. 유가의 명분론은 지배계급의 통치철학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잠재의식 깊숙한 곳에 뿌리 깊게 각인되어 있다. 집안을 따지고 학벌을 들먹이고 직업을 중시하는 태도가 모두 그것이며, 누가 설친다 싶으면 “분수(分數)도 모르는 놈이!”하고 코웃음을 치는 태도 또한 여기에서 비롯한다. 공자의 “군자는 죽기 전에 이름을 남기지 못할까 두려워한다”는 통치철학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해 내는 지식인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자는 뜻이며, 중국 양(梁)나라의 장수 왕언장(王彦章)이 남긴“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두 군주를 섬겨 자신의 이름을 욕되게 하느니 명예를 지키고 죽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러한 유위의 태도를 장자는 “명예를 좇느라 몸을 잃으면 선비가 아니요, 몸을 망쳐서 참됨을 잃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며 비난한다. 儒家에서 그 충절을 높이 사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도 장자의 눈에는 허망한 이름에 덜미를 잡힌 어리석은 이에 지나지 않다.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시고심애필대비 다장필후망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愛는 헛된 욕망, 집착, 분노 등의 감정을 가리킨다. 몸과 마음을 불태우는 욕망의 불길에서 벗어나 식은 재와도 같은 상태에 이르게끔 해주는 무위가 바로 ‘족함을 알고, 그치기를 아는’것이다. 족함을 알기에 곧 그치는 것이다. 佛家나 요가(yoga)의 수행법 가운데 위빠사나(vipassana), 사마타(samatha)가 있다. 위빠사나를 흔히 관법(觀法) 수행, 사마타를 지법(止法) 수행이라 하는데, 위 문장의 知와 止에 서로 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하겠다. 사마타는 정신집중으로 마음이 안정된 상태, 위빠사나는 진리의·실상(實相)을 제대로 보는 것을 말한다. 愛는 불교의 삼독(三毒)인 탐(貪 ; 탐욕)ㆍ진(嗔 ; 들뜸)ㆍ치(痴 ; 어리석음)라 할 수 있는데, 그 삼독을 다스리는 수행이 삼학(三學)이다. 삼학은 계(戒)ㆍ정(定)ㆍ혜(慧)인 바, 위의‘止’는 ‘정(定)’에, ‘觀’은 ‘혜(慧)’에 해당하겠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구분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는 선종의 6조 혜능 선사의 말씀과 어긋난다.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정과 혜로서 근본을 삼나니, 첫째로 미혹하여 혜와 정이 다르다고 하지 말라. 정과 혜는 몸이 하나여서 둘이 아니니라. 곧 정은 혜의 몸이요 혜는 곧 정의 쓰임이니, 곧 혜가 작용할 때 정이 혜에 있고 곧 정이 작용할 때 혜가 정에 있느니라. 선지식들아, 이 뜻은 곧 정혜를 함께 함이니라. 도를 배우는 사람은 짐짓 정을 먼저 하여 혜를 낸다거나 혜를 먼저 하여 정을 낸다 하여 정과 혜가 각기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선지식들아, 정과 혜는 등불과 그 빛과 같으니라.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곧 빛이 없으므로, 등불은 빛의 몸이요 빛은 등불의 작용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지만 몸은 둘이 아니다. 이 정혜의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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