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불교/육조단경(六祖檀經)

육조단경 8. 생각이 없음

slowdream 2007. 9. 3. 15:17
 

8. 생각이 없음(無念)



善知識 法無頓漸 人有利鈍 迷卽漸契 悟人頓修 識自本心 是見本性 悟卽元無差別 不悟卽長劫輪廻


선지식아, 법에는 단박에 깨침과 점차로 깨침이 없느니라. 사람은 근기에 따라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 계합하고 깨치면 단박에 닦는다.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곧 본성을 보는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 윤회하느니라.


善知識 我自法門 從上已來 皆立無念爲宗 無相爲體 無住爲本 何名無相 無相者 於相而離相 無念者 於念而不念 無住者 爲人本性 念念不住 前念今念後念 念念相續 無有斷絶 若一念斷絶 法身 卽是離色身 念念時中 於一切法上無住 一念若住 念念卽住 名繫縛 於一切法上 念念不住 卽無縛也 是以無住 爲本


선지식아, 나의 법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두 무념[생각 없음]을 종으로, 무상[상이 없음]을 체로, 무주[머무름이 없음]를 본으로 삼았느니라. 무상이란 무엇을 이름하는가? 무상은 상에서 상을 떠나는 것이다. 무념이란 생각에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며, 무주란 사람됨의 본성이 생각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니라. 앞생각과 지금의 생각과 뒷생각이 생각생각 서로 이어져 단절됨이 없으니, 한 생각이라도 끊어지면 법신이 곧 색신을 떠나느니라. 생각생각마다 일체법 위에 머무름이 없나니, 한 생각이라도 머무르면 생각생각마다 곧 머무르는 것이므로 얽매임이라 한다. 일체법 위에 생각생각마다 머무름이 없는 것을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무주로서 근본을 삼느니라.


善知識 外離一切相 是無相 但能離相 性體淸淨 是以無相爲體 於一切境上 不染 名爲無念 於自念上離境 不於法上念生 莫百物不思 念盡除却 一念斷 卽別處受生 學道者 用心 莫不息法意 自錯 尙可 更勸他人 迷不自見 又謗經法 是以立無念爲宗 卽緣迷人 於境上有念 念上 便起邪見 一切塵勞妄念 從此而生


선지식아, 밖으로 일체의 상을 떠나는 것을 무상이라 한다. 상을 떠나기만 하면 본성의 체는 청정하다. 그리하여 무상으로 본체를 삼는 것이다. 일체의 경계 위에서 오염되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나니, 자기의 생각 위에서 경계를 떠나고 법 위에서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니라. 백 가지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서 생각을 모두 없애지 말라. 한 생각이 끊기면 곧 다른 곳에서 생을 받는다. 공부하는 이는 마음을 써서 법의 뜻을 쉬도록 하여라. 자신의 실수는 그렇다 하나 어찌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있겠는가. 미혹하여 스스로 보지 못하면서 또한 경전의 법을 비난하니, 이로써 무념을 종으로 삼는 것이니라.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을 갖고 생각 위에서 문득 삿된 견해를 일으키니, 일체의 번뇌와 망념이 이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然此敎門 立無念爲宗 世人 離見 不起於念 若無有念 無念亦不立 無者 無何事 念者 念何物 無者 離二相諸塵勞 念者 念眞如本性 眞如 是念之體 念是眞如之用 自性起念 雖卽見聞覺知 不染萬境而常自在 維摩經 云 外能善分別諸法相 內於第一義而不動


그런 까닭에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을 종으로 삼느니라. 세상 사람들이 견해를 떠나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서, 생각이 없다면 무념 또한 세울 수 없는 것이다. 없다 함은 무엇이 없으며, 생각이란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인가? 없다 함은 두 모양의 번뇌를 떠나는 것이고, 생각이란 진여본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진여는 생각의 본체요 생각은 진여의 활용이니라. 자성이 생각을 일으켜 곧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만 가지 경계에 물들지 않고 항상 자재하느니라. 유마경에 “밖으로 모든 법의 상을 능히 잘 분별하고 안으로는 첫째 뜻에 있어서 움직이지 아니한다” 하였느니라.


蕭湛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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