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를 여읠 줄 알면 부처
四大爲身 四大無我 我亦無主 故知此身無我 亦無主 五陰爲心 五陰無我 亦無主 故知此心無我 亦無主 六根六塵六識 和合生滅 亦復如是 十八界旣空 一切皆空 唯有本心 蕩然淸淨
사대(지, 수, 화, 풍)로 몸을 삼으나
사대는 내가 없고 나 또한 주인이 없으니
이 몸이 무아며 무주임을 알라.
오음(색, 수, 상, 행, 식)으로 마음을 삼으나
오음은 내가 없고 또한 주인이 없으니
이 마음이 무아요 무주임을 알라.
육근(눈, 귀, 코, 혀, 몸, 느낌)과
육경(모양, 소리, 냄새, 맛, 촉감, 대상)과
육식(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
화합하여 생기고 멸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
십팔계(육근+육경+육식)가 이미 공하고 일체가 다 공하여
오직 본마음만 있을 뿐이니
호호 탕탕(넓고 커서 걸림이 없음)하고 맑고 맑다.
有識食 有智食 四大之身飢瘡爲患 隨順給養 不生貪著 謂之智食 恣情取味 妄生分別 惟求適口 不生厭離 謂之識食
식식(識食)이 있고 지식(智食)이 있다.
사대의 몸은 배고픔과 질병으로 된 걱정거리가 있는데
순리에 따라 영양을 급식하고 탐하고 집착을 내지 않음을 일러
지식이라 하고,
방자한 뜻을 따라 맛을 취하고 망령되이 분별을 일으켜서
오직 입에 맞는 것만 구하고 두려워하고 여의는 마음을 내지 않음을 일러
식식이라고 한다.
聲聞者因聲得悟 故謂之聲聞 但不了自心 於聲敎上起解 或因神通 或因瑞相言語運動 聞有菩提涅槃 三僧秖劫 修成佛道 皆屬聲楣 謂之聲聞佛 唯直下頓了自心本來是佛 無一法可得 無一行可修 此是無上道 此是眞如佛
성문(聲問)이라고 하는 것은
소리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자이니 성문이라 일컫는다.
다만, 스스로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소리로 들은 가르침에 알음알이를 일으키거나
혹은 신통이나 상서로운 모양과 언어(고담준론적 언어)나 신비한 행동에
깨달음이나 열반이 있다고 듣고
삼 아승지겁을 닦아서 부처의 도를 이루려고 하니
모두 성문의 무리에 해당하며 이를 일러 성문불(聲問佛)이라고 한다.
오직 그 자리에서 단박에 깨달아 스스로의 마음이 본래부처임을 깨달으면
한 법도 얻을 것이 없고, 한 행(行)도 닦을 것이 없으니
‘위없는 도(無上道)’이며 ‘진여불(眞如佛)’이다.
學道人秖怕一念有 卽與道隔矣 念念無相 念念無爲 卽是佛 學道人若欲得成佛 一切佛法 總不用學 唯學無求無著 無求卽心不生 無著卽心不滅 不生不滅卽是佛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한 생각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면
곧 도와 멀어질 것이다.
생각마다 모양이 없고 (생각에 좋다 나쁘다 등등의 어떤 분별도 붙이지 않음)
생각마다 함이 없으니 (생각을 내치거나 집착하지 않음)
이를 부처라 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만약 부처를 이루고자 한다면
일체의 부처님법을 모두 배우지 말것이며
오직 구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음을 배워야 한다.
구하지 않은 즉,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집착하지 않은 즉, 마음이 멸하지 않느니
(생각에 뭔가 옳고 그름을 따져 구하려 하면 온갖 번뇌가 불같이 일어나고
생각에 집착하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마음이 끊어져 버린다.)
일어남도 멸함도 없는 것이 곧 부처이다.
八萬四千法門 對八萬四千煩惱 秖是敎化接引門 本無一切法 離卽是法 知離者是佛 但離一切煩惱 是無法可得 學道人若欲得知要訣 但莫於心上著一物
팔만사천법문은 팔만사천 번뇌에 대한 것이며
겨우 사람들을 교화하고 이끌어 오는 문일 뿐이니 본래 일체의 법이라는 것이 없다.
(모든 법문과 일체 경계와 모든 분별을)여의는 것이 곧 법이요,
여읨을 아는 자가 부처이다.
다만 모든 번뇌를 여의면 얻을 수 있는 법이라는 것은 없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깨달음의 비결을 알고자 한다면
마음 위의 한 물건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출처 http://beinno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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