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南泉과 사형사제간인 歸宗智常禪師가 하루는 대중들과 함께 菜蔬밭에서 나물을 뜯다가 菜蔬 한 포기를 가운데 놓고 동그란 圓을 그리고는 말했다.
“아무도 이것을 건드리지 말라.”
대중들은 누구도 그 圓을 건드리지 못했다. 한참 후 다시와 본 歸宗禪師는 菜蔬가 그대로 있는걸 보고는 몽둥이로 대중들을 때려 쫓으며 말했다.
“이 패거리 안에 智慧로운 자가 한 놈도 없구나!”
역시 歸宗의 圓常도 자성원만(自性圓滿)을 象徵한다. 圓常은 곧 범(凡)도 성(聖)도 없는 부처의 경계다. ‘南泉一圓相’ 에서 마곡이 원상에 들어가 앉은 歸宗을 부처로 보고 예배한 것도 바로 ‘圓相=부처‘였기 때문이었다. 衆生도 깨우치기만 하면 곧 부처다. 歸宗이 그려놓은 圓相안의 菜蔬를 마치 부처라도 되는 듯이 對象化시켜놓고 뽑지 못하는 저 어리석은 대중들은 마땅히 몽둥이로 얻어맞아야 한다. 자기가 부처가 되야지 菜蔬를 부처로 모시는 어리석음이라니......
歸宗의 몽둥이질은 자신 넘치는 氣槪와 生活속의 勇氣를 촉구하는 스승의 慈悲로운 매질이요 가르침이다.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백지 한 장이고 極限的으로 말한다면 同等한 關係이다. 그러니 내가 곧 부처라는 自信感과 勇氣를 갖지 못해 圓相 안의 菜蔬를 뽑지 못하는 그 나약함으로는 永遠히 見性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偶像崇拜者에 불과할 뿐이다. 菜蔬(佛像)는 뽑아버리고 자기 自身이 그 자리의 부처가 되어야지........
歸宗智常禪師의 ‘작원권채(作圓圈菜)’라는 어린애 장난 같은 話頭가 전해주는 한소식은 이처럼 人間의 主體意識을 일깨운다. 동그라미 하나가 이렇게 큰 意味를 갖는 게 禪이다. 流行歌 가락처럼 동그라미 하나 그리며 男女가 사랑을 나누고 맹세하는 것도 다 一圓相 宇宙속 人間의 圓融無涯일지 모른다. 그저 氣槪와 勇氣만 있다면 世上 거칠 게 뭐 있겠는가.
南泉이 禪宗史에 남긴 偉大한 두 가지 業績은 趙州(778-897)라는 걸출한 선장(禪匠)을 배출한 사가(師家)라는 점과 馬祖禪(祖師禪)의 核心思想 ‘日常生活이 곧 眞理다’라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가장 충실히 繼承, 深化 發展시킨 점이다. 특히 南泉과 趙州는 家風과 禪思想의 展開가 一致하는 부자(父子)지간의 禪脈을 形成하고 있다. 南泉의 法脈을 이어 ‘天下趙州’를 一世를 風味한 趙州종심선사의 ‘비로원상(毘盧圓相)’ 이야기를 보자
묻는다 : 비로나자불의 圓相이라는 것은 어떤 겁니까?
답한다 : 나는 어려서 出家하고는 아직까지 한 번도 눈병을 앓은 적이 없다.
묻는다 : 和尙께서도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한 敎化를 하십니까?
답한다 : 제발 네가 永遠토록 비로나자불의 圓相을 바랄 뿐이다.
한 중이 묻고 趙州가 답한 ‘毘盧圓相’이라는 話頭내용이다. 毘盧圓相이란 華嚴敎의 本尊佛이며 法身佛인 비로나자불의 全身을 감싸고 있는 둥근 원을 말한다. 法身圓滿의 부처님상인 비로나자불은 梵語론 ‘바이로짜나’ 라고 하는데 원래는 ‘太陽’을 뜻하며 廣大無邊한 부처의 智慧를 象徵한다.
趙州는 비로나자 法身佛을 說明해 달라는 중의 물음에 “눈병을 앓은 적이 없다”는 對答을 통해 ‘그래’ 그것이 안 보인다니 네놈은 눈병을 앓고 있는 모양이구나‘라고 一喝한다. 法身佛은 宇宙안에 두루 있다. 頭頭物物이 부처 아님이 없고 손에 닿는 것 모두가 진리[觸事而眞]인데 따로이 비로나자불을 찾고 있다니........ 비로나자불 圓相을 물은 중은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日常生活 모두가 眞理인데 말이다. 그래도 중은 말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중의 두 번째 물음은 ‘제가 비록 아직 눈이 열리지 않았다면 和尙께서는 衆生의 눈을 밝혀주는 敎化手段을 活用하시어 저를 눈 밝은 衲子로 引導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라는 反問이다.
趙州는 毘盧圓相을 알아차리는 것은 너 스스로가 네 눈을 뜨고 보아야지 다른 方法이 없다며 ‘自己成佛을 간곡히 促求한다. 禪에서는 圓相(眞如)은 說明을 들어 理解하는 게(聞) 아니라 오직 스스로 법안(法眼)으로 보는 길(見)밖에 없다고 한다. 眞如를 철견하는 것을 참(參), 또는 관(觀)이라고도 한다. 眞如나 자성(自性)이라는 絶對 唯一體는 그 實像을 直觀的으로 自覺할 수 있을 뿐이지 學術的 說明이나 理論的 槪念化가 불가능한 묘유공(妙有空)이라는 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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