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불교/선불교(禪佛敎)

선불교 11. 말없이 침묵하다[黙然無語]

slowdream 2007. 9. 14. 23:08
 

* 말없이 침묵하다[黙然無語]

 - 少林寺 2조암(二祖庵) 2조 慧加禪師


 달마 : 각자가 깨달은 바를 말해 보라.

 도부 : 제 생각으론 言語文字에 執着해서도 안 되며, 그렇다고 그것 없이 지낼 수도 없습니다. 文字란 도(道)를 깨닫는 道具로만 使用해야 할 줄 압니다.

 달마 : 자네는 나의 살갗을 얻었군.

 총지 : 지금의 제 堅持로는 아난다가 아크쇼브야의 佛國土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佛國土를 단 한 번 보았을 뿐 다시는 보지 못했으니까요.

 달마 : 그대는 나의 살을 얻었도다.

 도육 : 4대(地, 水, 火, 風)가 本來 空虛하고 5온(眼, 耳, 鼻, 舌, 身)이 모두 架空的인 것입니다. 世上에 不變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달마 : 자네는 나의 뼈를 얻었군.

 혜가 : (입을 열지 않는다, 다만 공손히 허리만 굽혀 예를 올린 후 자기 자리에 不動姿勢로 서 있다.)

 달마 : 그대는 내 骨髓를 얻었네.


 達磨가 자신의 遷化를 豫感하고 4명의 제자를 불러 각자 깨우친 바 得心을 披瀝해 보도록 한 問答이다. 원래 禪宗은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네 句節로 簡明하게 그 宗志를 闡明한다. 즉 經典 밖에 別途로 전해오는 바가 있으니, 文字를 통한 說明에 의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원래의 本性을 깨우침으로써 부처를 이룬다는 이야기다.


 이는 禪佛敎의 特徵을 說明하는 명구(名句)또는 敎宗과의 差別化를 밝히는 禪宗의 代表的 文句로 자주 引用된다. 慧加의 對答은 아주 禪的이다. 佛法이란 言說로 說明할 수 없는 思量分別을 超越한 언어도단(言語道斷)의 世界에 속한다. 그래서 禪은 佛敎의 至極한 眞理를 ‘沈黙’이나 절[拜]같은 行動言語를 구사해 表現한다. 慧加가 허리를 굽혀 절을 올린 것은 佛法의 原點, 根本을 말하며 不動의 姿勢는 자성본체(自性本體)를 象徵한다.


 이 같은 묵연무언(黙然無言)은 老莊의 眞理觀이기도 하다. 老子는 達磨보다 훨씬 앞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라 설파했다. 達磨의 慧加에 대한 平價는 자신의 자리를 慧加에게 물려준다는 宣言이기도 하다. 禪宗의 傳燈은 전법게(傳法偈)와 전의부법(傳衣付法)이라는 또다른 傳統을 만들어 냈다. 傳法偈란 제자의 實力을 認定하는 짤막한 詩를 말하는데 오늘날의 卒業狀 또는 學位受與와 같은 것이다.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해 어리석은 이를 제도하고자 함이었다.

 한 꽃에서 다섯 개의 잎이 피게 될 것이니

 열매는 자연히 맺어지리라“


 達磨가 慧加에게 준 傳法偈다.

 셋째 구절 ‘일화개오엽(一華開五葉)은 唐末 五代의 禪宗 전성기에 꽃피운 5家(潙仰, 趙東, 臨濟, 雲門, 法眼宗)를 豫言한 것이다.


 “꽃과 종자는 땅에서 나고

 땅으로부터 종자와 꽃이 나지만

 만일 종자를 뿌리는 사람 없으면

 꽃도 땅도 생겨나지 않는다.“


 2조 慧加가 3조 僧瓚에게 내려준 傳法偈이다.

 近代 韓國佛敎의 中興祖 경허선사(1849-1912)는 1912. 4. 25 함경도 갑산 웅이방 도하동에서 글방 훈장 박난주(朴蘭舟)의 봄날 양지바른 서당 담 밑에서 홀연히 죽었다. 다음은 경허선사의 臨終偈이다.


 마음달 홀로 둥글어 그 빛 만상을 삼켰구나    心月孤圓 光呑萬像

 빛과 경계 다 잊었거늘 다시 이 무슨 물건인고 光境俱忘 復是何物

 


 다음은 경허선사의 다비에 법제자 만공이 읊어 바친 偈頌이다.


예로부터 시비가 여여한 객이       舊來是非如如客

난덕산에서 겁 밖의 노래 그쳤네    難德山止劫外歌

나귀와 말 불살라 다한 이 저문날에 驢馬燒盡是暮日

먹지않은 두견새 솥 적다 한을 하네 不食杜鵑恨小鼎


 慧加의 禪思想은 ‘명심견성(明心見性)’으로 要約할 수 있다. 마음은 생각을 일으키는 主體다.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생각[念]이 바로 現像이다. 심(心)은 本質이고 염(念)은 現像이다. 現像을 만들어낸 생각의 本質이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 現像에 이끌리지 않고 마음의 性品인 淸淨性을 따라 行動하는 것이 ‘明心見性’이다. 이것이 禪宗 宗志의 核心이다.

 

 두타(頭陀), 두수(抖數)는 ‘털어버린다’는 뜻이다. 즉 衣, 食, 住에 대한 貪慾과 愛着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淸靜하게 지키는 修行을 말한다. 頭陀行에는 다음과 같은 12조의 生活戒律이 있다.


 1. 조용한 거처에 머무름(在阿蘭若處)

 2. 언제나 걸식을 할 것(常行乞食)

 3. 걸식하는 집의 가난과 부를 따지지 않음(次第乞食)

 4. 하루 한 끼만 먹음(一受一食法)

 5. 발우 안의 음식만 먹음(節量食)

 6. 오후에는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음(中后不得飮漿)

 7. 폐품으로 버린 천을 모아 만든 옷을 입음(着弊衲衣)

 8. 세 벌의 옷 외 지니지 않음(但三衣)

 9. 묘지에 주거함(塚間在)

 10. 나무 아래서는 멈춤(樹下止)

 11. 공지에 자리잡음(露地座)

 12. 항상 앉아 있음(常坐不臥)


 禪家의 長坐不臥, 午後不食 등과 같은 규식(規式)은 이미 慧加의 頭陀禪에서부터 確立된 傳統이다. 頭陀行의 坐禪과 모든 생각을 일으키는 主人公인 마음을 그 本來대로의 淸靜性, 道德性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하려는 ‘明心見性’이 2祖 慧加의 家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능가종의 습선(習禪)은 아직도 經典에 의지하는 자교오종(藉敎悟宗)의 段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