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法力은 慧能만 못하다
- 당양 옥천사(玉泉寺), 대통신수선사
一切의 부처 마음은 本來 自己 마음안에 있나니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고자 함은 마치 지아비를 버리고 도망하는 것과 같다.
(一切佛心 自心本有 將心外求 捨父逃走)
慧能의 南宗禪과 兩立한 北宗禪의 開創者인 神秀祖師(606-706)가 上堂法語에서 大衆들에게 들어보인 偈頌이다. 初期 仙佛敎가 5조 弘仁 이후 南宗과 北宗으로 兩分됐을 당시에는 신수(神秀)가 慧能보다 훨씬 影響力이 큰 禪僧이었고 장안 낙양 양경의 王族들과 士大夫들도 모두 神秀에게 歸依해 있었다. 따라서 숭산 일대를 據點으로 한 北宗禪의 敎勢가 壓倒的이었다.
神秀는 測天無后의 청을 받고 701-704년 장안에 머물면서 國師 資格으로 入內 說法을 했다. 神秀는 唐나라 測天無后, 주종, 예종이 지극히 받든 삼제국사(三帝國師)였고 장안과 낙양의 佛子들이 모두 그의 信徒들인 양경법주(兩京法主)였다. 測天無后는 제자의 예로 神秀를 깍듯이 모셨고 예종황제는 그가 入寂하자 친히 다비에 참석, 葬送하기까지 했다.
그는 이처럼 皇室과 貴族, 上流層 佛敎의 法主로서 一世를 風味했다. 뿐만 아니라 學德과 人格, 法力도 當代의 高僧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神秀는 皇帝가 배복(拜伏)하는 國師의 地位에 있으면서도 測天無后에게 ‘나의 法力은 慧能만 못하다’ 며 慧能을 招致해 法問을 들어보라고 薦擧하는 謙遜을 보였다.
勞動이 곧 坐禪이다[農禪倂行]
- 쌍봉산 4조선사[四祖禪師], 4조 道信祖師
勞動하면서 坐禪하고, 坐禪을 根本으로 하되 15년은 해야, 한 사람이 먹을 것을 얻어 주린배를 채울 수 있느니라.
(努力而坐 坐爲根本 能作三五年 得一口食塞饑腸)
中國 禪宗 제4대 祖師 道信(580-651)이 大乘 僧侶들에게 說한 上堂法問이다. 道信祖師는 8세기 이후 오늘에까지 동아시아 佛敎를 席卷하고 있는 ‘禪宗’이라는 하나의 佛敎 宗派가 자리잡는 기틀을 세운 禪宗 敎壇 創立 功臣이다. 지금까지의 禪宗史는 道信祖師를 크게 注目하지 않았다. 따라서 禪宗史에 貢獻한 그의 業績이 제대로 平價를 받지도 못했다.
道信祖師가 禪宗史에 貢獻한 重大 業績들을 대충 열거해 보겠다. 한마디로 中國 禪佛敎는 4代 道信에 이르러 初祖達磨 - 2祖 慧加 - 3祖 僧瓚으로 이어진 [凌駕經] 중심의 심종(心宗)이 [般若經] [金剛經] 中心의 공종(空宗)과 結合하는 禪佛敎의 ‘제1차 宗敎革命’이 斷行됐다고 말할 수 있다. 제2차 革命은 馬祖~臨濟禪師에 이르러 本格化한 ‘日常生活이 바로 眞理’ 라는 平常心是道의 禪思想을 闡明한 祖師禪이다.
道信祖師의 革命的 業績으로는 개산주사(開山住寺), 농선쌍수(農禪雙修), 念佛導入, 만법일여(萬法一如)의 人生哲學과 卽心卽佛의 結合, 實踐佛敎의 垂範 등을 손꼽을 수 있다.
내목을 베어가도 좋다[挺胸而立]
묻는다 : 和尙을 皇宮으로 모시고 가지 못하게 되면 목이라도 베어다 皇帝께 보여 드려야 합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皇帝의 勅命을 받들고 내려온 大臣은 道信祖師 앞에서 칼을 뽑아들고 威脅했다.)
답한다 :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꼿꼿이 섰다.) 자, 목을 베어가시요.
(大臣은 여기서 뽑았던 칼을 칼집에 넣고 皇宮으로 올라가 事實대로 復命했다. 唐 太宗은 復命을 받고 大怒하기는커녕 크게 感泣, 臣下를 派遣해 祖師殿을 建立해주는 供養을 했다.)
唐 太宗 이세민이 네번째로 道神祖師를 入闕케 하려고 大臣까지 直接派遣, 懇曲히 청했던 이야기다. 太宗은 물론 法問을 듣고 후히 待接하고자 하는 好意에서 道神의 入闕을 懇請했던 것이다. 太宗은 이에 앞서 세 차례나 소칙을 내려 道神의 入闕을 청했으나 그때마다 4조는 몸이 不便하다는 핑계를 내세워 拒絶했다. 네번째는 大臣까지 直接 派遣했다. 大臣도 세 번이나 失敗한 저간의 事情을 잘 아는지라 급기야 목을 베겠다는 脅迫까지 하면서 强勸했던 것이다.
구름속의 대나무 산[竹林雲海]
탑 한 층마다 구름이 층을 이루고 떠 있고
탑 밖의 梅花나무와 대나무에는 9만개의 뿌리가 비치는구나,
성스러운 大自然과 祖師의 肉身이 전혀 毁滅되지 않아,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佛法이 상존(常存)함을
볼 수 있게 하는구나!
원나라 詩人 조국보가 4祖 道信祖師 진신탑(眞身塔 : 원명 비로탑, 속칭 자인탑, 사방탑)을 돌아보면서 �은 시다.
* 깊은 산속의 대들보감 목재[大廈之材]
- 동산 5조사(五祖寺) 5祖 弘忍祖士
묻는다 : 佛法 공부는 왜 시정(市井)을 떠나 한적한 산속에 머무르며 해야 합니까?
답한다 : 큰 집의 대들보감은 본래가 深山幽谷에서 나온다.
(大廈之材 本出幽谷)
北宗禪을 중심으로 初期 禪宗史의 法脈 傳燈을 밝힌 책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에 나오는 弘忍祖師와 한 중의 禪問答이다. 弘忍의 對答은 다음과 같이 자상한 說明으로 이어진다.
“깊은 산속의 나무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도끼질을 당하지 않고 繼續 자라서 급기야 큰 나무가 돼 훗날 대들보로 크게 쓰인다. 깊은 산속의 神秘함을 알기 때문에 俗世의 티끌을 피해 山中에서 自性을 키우며 世俗일을 고사하는 것이니 산거(山居)하면 눈앞에 한 物件도 없고 마음이 스스로 便安하고 安定된다. 이렇게 학선(學禪)하면 깊은 산속의 나무처럼 꽃을 피워 禪林의 果實을 얻을 수 있느니라.”
弘忍(601-675)의 俗姓은 주(周)씨고 호북성 황매현 사람이다. 천성이 聰明하고 화술(話術)이 達辯이었다. 23세 되던 어느 날 산보를 하던 중 파두산의 4祖 道信祖師를 만나 禪門에 出家했다. 道信祖師는 弘忍의 聰明함에 感歎하고 父母를 찾아가 그의 出家를 懇請, 쾌히 承諾을 받았다. 파두산 유거사(幽居寺 : 現 4祖師)로 出家한 弘忍은 道信祖師 門下에서 26년간 參禪精進을 한후 651년 4祖로부터 祖師 자리를 承繼받았다. 3년 후인 654년 동산으로 가서 산주 풍무(馮茂)老人한테 절터를 얻어 선정사(現 5祖師의 全身)를 建立하고 法席을 폈다.
5祖 弘忍이 禪宗史에 남긴 2대 業績은 印度禪을 현학(玄學 : 老莊學)과 接木시켜 獨自的인 ‘中國禪’으로 변성(變成)시킨 점과 漸修의 神秀上座를 拒否하고 慧能에게 頓悟의 仙法을 定脈으로 傳해 南宗禪의 돈교(頓敎) 禪風을 確立했다는 것이다. 대단한 業績이며 佛敎史의 一代 革命이다. 禪宗이 中心인 동아시아 佛敎는 여기서 6百年 前 傳來된 印度佛敎를 새롭게 土着化시키는 ‘宗敎改革’을 斷行, 오늘에까지 동북아 佛敎의 主流를 이루는 禪佛敎를 誕生시켰다. 따라서 5祖 弘忍은 제자 6祖 慧能과 더불어 實質的인 中國 禪宗의 創立者이며 5祖師는 頓悟 南宗 法脈의 發源地이다.
오늘날 동아시아는 물론 美國과 유럽 등지에서 21세기 이후의 새로운 人類文明을 이끌 世界的 哲學, 宗敎思想으로 照明되고 있는 頓悟 南宗禪의 禪思想은 1천4백년 전 이렇게 5祖師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동 산 법 문>
오직 金剛經을 수지하고 스스로 자성(自性)을 철견하면 곧 바로 成佛은 成就된다. 사람의 마음이 곧 부처이고 마음을 깨끗이하면 바로 成佛이다.
(但持金剛經 卽自見性 直了成佛 卽心是佛 心淨成佛)
弘忍祖師의 說法集 [최상승론(最上乘論)]에 나오는 東山法問의 禪思想을 壓縮한 法問이다. 5祖 弘忍이 654年 동산의 頂上인 백련봉에 建立한 선정사(禪定寺)는 常住 僧侶 1천여명, 學인 1만여명에 이르는 禪宗最初의 총림(叢林)이었다. 4祖 道信까지 [楞伽經]이었던 禪宗의 素衣經典을 [金剛般若經]으로 바꾼 弘忍祖師의 改革은 重要한 意味를 갖는다. 즉 ‘金剛經’이 頓悟 南宗禪의 理念的 주춧돌이 됐다. 이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東亞細亞 禪佛敎의 所依經典은 ‘金剛經’이다. 물론 南宗禪의 思想的, 哲學的 밑받침이 된 經典으로는 이밖에도 ‘涅槃經’ ‘유마경’ ‘大乘起信論’등을 꼽을 수 있다.
弘忍祖師는 經典으로는 ‘金剛經’에 依支해 見性할 수 있다는 점을 强調함으로써 반야공관(般若空觀)과 般若智慧를 禪宗 成佛의 要諦로 收用했다. 그는 마음의 本質을 꿰뚫어보고 自性의 正體를 밝혀 妄想을 그치게 하는 것(背境觀心 息灰妄念)이 곧 解脫이라는 絶對自由의 世界에 이르는 길이라고 說破했다. 弘忍은 또 “本來의 참된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곧 涅槃의 根本이요, 佛道에 들어서는 요체(守本眞心爲 涅槃之根本 入道要門)”라고 强調했다.
이러한 弘忍의 學風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禪法은 頓悟의 南宗 禪風보다는 漸悟의 北宗 禪風에 가깝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現在 5祖師가 北宗 禪風을 다소 간직한 조동종 소속 禪刹인 점도 이와 같은 悠久한 歷史的 脈絡을 갖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弘忍祖師의 禪思想은 마음이 곧 부처이고, 自性을 철견해 成佛을 이루는 ‘즉심즉불 견성성불(卽心卽佛 見性成佛)’로 요약된다. 이와 같은 弘忍의 學風, 즉 頓悟, 農禪竝行, ‘金剛經의 소의經典化, 莊園 私經濟 등을 內用으로 하는 禪法을 ‘東山法門’, 또는 東山宗이라고 한다. ‘東山宗’은 廣義的으로는 弘忍의 禪法뿐 아니라 東山 5祖師라는 寺刹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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