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三佛夜話>(3명의 부처가 나눈 이야기)
오조법연선사가 어느날 밤 亭子에서 제자 佛果 園悟克勤, 佛鑒 태평혜근, 佛眼 용문청원과 노닐다가 돌아갈 즈음에 각자 한마디씩 일러보라고 했다.
佛鑒(太平慧勤) : 채색 바람이 붉게 물든 노을에 춤춘다 (彩風舞丹霄)
佛眼(龍門靑原) : 쇠 뱀이 옛길을 건너가네 (鐵蛇橫古路)
佛果(園悟克勤) : 발아래를 보라 (照顧脚下)
오조법연선사: 우리 宗團을 滅亡시킬 사람은 바로 克勤, 너로구나!
이 禪話를 話頭로는 ‘삼불야화(三佛夜話)’라 한다. 三佛은 禪氣와 法力이 뛰어나 각각 불과(佛果 : 부처의 境地), 불감(佛鑒 : 부처의 거울) 불안(佛眼 : 부처의 눈)이라는 別號를 가진 오조법연선사의 3대 고족(高足) 제자 園悟克勤, 太平慧勤, 龍門靑原을 말한다.
오조법연선사(1024-1104)는 5조사에 主席한 禪杖들 중 弘忍祖師 다음으로 巨木인 宋代의 禪知識이다. 그는 北宋 진종~남송 고종 시기에 5祖師 方丈으로 있으면서 寺刹을 重唱하고 佛塔을 建立하는 등 5祖師를 天下 有名 叢林으로 크게 中興시켰다. 또 法力이 높아 당시 그를 ‘天下 제1의 선사(演公天下第一禪師)’ 라고 稱했다.
세 사람의 말 중 佛果 克勤의 한마디가 가장 實際的이고 깊은 意味를 갖는다. 칠흑처럼 캄캄한 人生行路에서 눈이 밝지 못해 만약 발걸음을 잘못 내디디면 넘어져 圓臺한 以上도, 抱負도, 能力도 모두 無用之物이 된다. 발바닥이 온전해야 제대로 걸음을 걸을 수 있다. ‘看脚下’는 발바닥(자신)을 잘 살피라는 얘기다.
1997년 6월 元老詩人 구상씨가 한 日刊新聞 時局 인터뷰에서 ‘脚下照考’라는 이 話頭를 例示해 나라를 들끓게 한 韓寶事態와 金永三大統領의 失政에 따끔한 忠告를 했다.
佛鑒 慧勤과 佛眼 靑原의 한 마디도 높은 境地이긴 하지만 이미 禪이 그 당시 觀念的 口頭禪으로 굳어 많은 批判을 받고 있던 점을 勘案할 때 다소 抽象的인 감이 든다. 禪은 원래 그 本質이 素朴한 日常 속의 具體的 事物과 現像을 提示, 皮膚에 와 닿는 象徵性을 表出한다. 법연은 그 당시 言語 遊戱的인 禪林의 弊端을 잘 알고 있었기에 本來의 淸純, 高明하고 實際的인 禪法을 길이 傳하고자 했다.
법연이 佛果 克勤에게 ‘너야말로 우리 宗團을 망칠 자’라고 한 것은 禪林의 表現法으로는 無常의 稱讚이다. 禪은 역유(逆喩)를 즐겨 使用하기 때문에 辱說이 곧 ‘稱讚’인 경우가 허다하다. 克勤은 역시 법연의 期待를 저버리지 않고 宗風을 크게 宣揚했다. 그의 門下에서 대혜종고, 호구소융, 영은혜원, 육왕단유 같은 거물 선지식들이 排出됐다. 이때에 이르러 禪宗은 臨濟宗 양기파가 天下統一을 이룩했다.
唐末 五代까지의 禪風인 기봉(機鋒)과 방할(棒喝)은 여기서 話頭를 探究하는 공안선(公案禪, 看話禪, 無子禪)으로 바뀌고 禪師들의 上堂法語가 風味했다. 看話禪은 대혜종고가 體系化시켰다. 한마디 말에 깨우치는 오조법연 이전 당하(當下)의 접기(接機) 禪風은 禪語錄이란 걸 많이 남기지 않았다. 潙山, 臨濟, 趙州, 東山, 雪峰 같은 巨物禪師들의 경우 語錄을 한 권씩밖에 안 남겼고 가장 많다는 雲門禪師의 境遇도 3권이다. 그러나 佛眼 靑原은 9권, 佛果 克勤은 20권에 碧巖錄 10권, 대혜종고는 30권이라는 語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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