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산의 독사[南山鱉鼻蛇]
雪峰義存禪師가 시중(示衆)했다.
“南山에 자라코뱀(鱉鼻蛇 : 코브라, 毒蛇) 한 마리가 있으니 잘들 살펴 다녀라.”
장경혜릉이 앞으로 나가 말했다.
“오늘 이 法堂 안에서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雲門文偃이 뒤이어 나왔다. 그는 拄杖子를 들어올려 뱀이 꿈틀거리는 模樣을 演出하면서 앞으로 달려나가 雪峰禪師 앞에다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짐짓 놀라는 表情을 지으면서 입을 벌리고 혓바닥을 내밀었다.
後日 어떤 學人이 이 일을 현사사비에게 이야기해주었다. 현사는 “보아하니 장경사형(師兄)이 맞는 것 같구먼. 그러나 나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걸”하고 말했다. 學人이 그럼 어떻게 하겠느냐고 다시 묻자 현사는 이렇게 말했다.
“ ‘南山이 뭐 어떻다는 말인가’ 라고 하겠다.”
‘南山鱉鼻蛇’라는 話頭를 낳은 선화(禪話)다. 雪峰禪師(822-908)가 上堂法語에서 밑도 끝도 없는 南山의 코브라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제자들의 道力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장경과 雲門, 현사는 雪峰의 고족(高足) 제자들이었다. 이들 세 사람의 師兄師弟가 보인 反應은 제각기 다르다.
장경은 ‘無對應의 對應’ 方式이다. 毒蛇가 나타나 물면 많은 사람이 그대로 물려 죽고 만다는 것이다. 머리를 보고 꼬리를 짐작하듯 지름길로 질러가버린 셈이다. 雲門의 反應은 이른바 선기(禪機)로서의 對應이다. 毒蛇라는 말이 나오자 拄杖子를 꿈틀거려 뱀모습을 지어냈다. 이는 스승이 코브라 얘기를 끄집어낸 속셈에 和答하는 行動言語다. 또 뱀의 表情을 만들어내면서 놀라는 表情을 지은 것은 기심(機心)이 매우 活潑하게 作用한 것이며 번개와 같은 敏捷, 신속함을 드러내 보인 禪氣다. 뱀의 表情과 놀라는 表情을 同時에 지은 것은 사람과 뱀이라는 두 主體가 동시的으로 動作을 함으로써 禪學의 이른바 체용일여(體用一如), 명암일여(明暗一如), 은현일여(隱顯一如)를 演出한 高度의 技巧的 行爲다.
禪은 이처럼 明과 暗으로 함께 치고 들어가는 攻擊을 통해 밝음과 어둠을 계교(計較)하는 分別心을 깨버리고 밝음의 根源이 어둠이고, 어둠의 根源이 밝음임을 깨우쳐 준다.
현사의 反應은 장경이나 雲門과는 전혀 다르다. “南山이 뭐 어떻다는 말인가”라는 말은 南山과 나는 아무 相關이 없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吾不關焉이다. 즉 南山의 뱀은 南山의 일일 뿐이지 나와는 相關이 없는 일이며 나는 오직 내 스스로의 자성(自性)을 갖추고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後世 禪師들의 평은 “낚싯배에서 사삼랑(謝三郞 : 속성이 사씨인 현사의 별명)은 南山의 뱀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현사를 높이 치켜 올렸다. 宋代의 진정극문(일명 늑담극문)禪師는 偈頌을 지어 세 사람을 평하길 “북을 치고 비파를 켜는 두 사람이 만난 듯 雲門은 和答할 줄 알고 장경은 풀어갈 줄 안다. 옛 노래에 韻이 없으니 이를 안 사람은 오직 현사 그 사람이네”라고 했다. 역시 현사를 가장 높이 平價하고 있다.
그러나 雲門도 현사 못지 않는 대단한 기량이다. 雲門은 목주도명선사의 지시로 복건성 雪峰山의 雪峰義存禪師 門下로 들어갈 때 절 앞에서부터 대단한 기량을 發揮, 즉각 서로 뜻이 맞아떨어졌다.
雲門이 雪峰山 밑의 農莫에 이르렀을 때 마침 절로 올라가는 한 중을 만났다.
“오늘 雪峰山에 올라가십니까?”
중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雲門은 부탁을 했다.
“내 부탁 말씀을 꼭 雪峰方丈에게 물어봐 주고, 絶對로 다른 사람의 부탁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요.”
雲門이 중에게 부탁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절에 가거든 方丈이 法堂에서 大衆說法을 하려고 할 때 앞으로 나가 ‘이 불쌍한 늙은이야, 왜 목에 쓰고 있는 칼(형틀)을 벗어버리지 못하느냐’고 하시오.”
중은 雲門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雪峰方丈이 法座에서 내려와 중의 멱살을 움켜쥐고 “빨리 말해라, 빨리 말해”라고 다구쳤다. 중이 對答을 못하자 雪峰方丈은 멱살을 놔주면서 “그건 네 말이 아니지”라고 물었다. 그래도 중이 “제 말입니다.”라고 하자 雪峰은 侍者를 불러 오랏줄과 몽둥이룰 가져오라고 했다. 중은 그제서야 實吐를 했고 雪峰方丈은 대중에게 말했다.
“농막에 가서 5백 명의 禪知識을 모셔오너라!”
다음날 雲門이 절에 올라오자 雪峰은 “무슨 因緣으로 그런 境地를 얻었는가”고 물었다. 雲門은 고개만 숙였다. 이 순간 雪峰과 雲門은 서로 마음이 통했고 師弟 관계를 맺었다.
雲門은 雪峰方丈을 직접 참문하기에 앞서 날카로운 기량을 이렇게 미리 내보였다. 雲門이 먼저 올라간 중을 시켜 물은 質問 속에는 아무리 說法을 해도 결국은 불설일자(不說一字)고, 說明으론 도저히 밝힐 수 없는 言語 밖의 佛法 眞理를 드러내 보이겠다는 ‘上堂法語’라는 형틀을 쓰고 왜 매일같이 法堂에서 大衆說法을 하느냐는 뜻이 含蓄돼 있다. 말인즉 백번 맞는 말이다. 雪峰 같은 大禪師가 雲門의 말을 못 알아들을 리 없다. 한낱 형틀에 불과한 ‘說法’이라는 것까지도 벗어난 絶對自由의 世界가 바로 禪이 追究하는 진정한 解脫이다. 雪峰은 이처럼 絶對自由를 指向하는 雲門의 激烈한 禪的 自覺을 십분 認定, 5百名의 禪知識을 합한 크기의 법기(法器)라고 稱讚했다.
雲門은 여기서 雪峰禪師와 契合, 그의 사법제자로 法脈을 認可받았다. 남방 제1총림 雪峰山 숭선선사(俗稱 雪峰寺)方丈 雪峰義存禪師를 찾아가 ‘부처는 바로 衆生 가운데 있고[佛在衆生中]’, ‘내 마음이 곧 진짜 나[心是眞我]’임을 확철대오한 雲門은 17년간에 걸친 제방 선지식 參禮行脚에 나섰다. 원래 옛날의 巨物 禪僧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깨친 바를 檢證받기 위한 기나긴 존숙(尊宿) 參禮行脚에 나서 全局 有名 方丈들과 法去量을 했다. 趙州從諗禪師는 무려 40년간의 유력(遊歷)을 하고 나서야 方丈으로 主席했다. 禪林의 學業에서 하나의 重要한 코스다.
雲門은 47세가 되던 911년 광동성 曹溪 남화선사를 찾아가 6조탑에 拜禮하고 소주(현 소관) 영수원으로 들어가 지성선사를 親見했다. 지성선사는 靑原法系인 雪峰과는 달리 南嶽懷讓禪師의 5세손인 南嶽法系였다. 雲門이 靑原하 7세니까 지성은 一家 할아버지 뻘인 사조(師祖)다. 영수원 방장으로 20년동안 說法해온 지성선사는 雲門을 동배(同輩)처럼 대하면서 영수원 禪房우두머리인 首座로 앉혔다. 雲門의 17년 유력은 여기서 끝을 맺고 영수원 수좌8년, 方丈 4년을 한 후 59세에 雲門寺 方丈이 됐다.
영수원 지성방장은 入寂하면서 雲門을 後繼者로 咐囑하는 密旨를 남겼다. 지성선사는 雲門首座에게 開堂說法을 시켜보고 크게 感歎, 이미 목우(牧牛)의 고삐를 넘겨주었던 터였다.
영수의 과일이 익었습니까[靈樹果實]
묻는다 : 영수의 과실이 다 익었습니까?
답한다 : 당신이 보기에 언제라도 과일이 익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雲門이 영수선원(靈樹禪院) 首座로 있을 때의 이야기다. 靈樹禪院 조실 지성선사가 入寂하면서 “人間界와 天上의 眼目은 큰방 首座”라는 遺書를 남겼다. 唐末오대에 광동지방을 다스린 남한왕(南漢王)이 영수원에 들렀다가 이 遺書를 보고 勅命을 내려 지성선사가 공봉(供奉)하던 王室 法會를 雲門禪師가 잇도록 했다.
남한왕 유엄은 여러차례 雲門을 王宮으로 불러 佛法을 물었는데 그때마다 메아리가 울리듯 막힘이 없었다. 유엄은 마음으로 크게 感服하고 尊敬했다. 앞의 禪問答은 남한왕의 宮中菜食 供養에 招待된 운문과 同席한 大臣의 거량이다. 話頭로는 ‘靈樹果實’ 이라 한다. 이 話頭는 마치 대시성(大詩聖)의 낙운성시(落韻成詩)처럼 質問이 떨어지자마자 번개 같이 答한 雲門禪師의 ‘卽問卽答’으로도 有名하다. 大臣의 質問은 아주 隱喩的이다. 우선 靈樹院의 祖室인 雲門을 ‘성스러운 나무(靈樹)’로 比喩했다. 과일은 제자들을 가리키고 ‘익었느냐’는 말은 깨달았느냐, 見性을 했느냐는 뜻을 含蓄하고 있다.
그러니까 雲門이라는 성스러운 나무가 곧 익은 과일들, 깨달은 제자를 얼마나 많이 맺었는지를 물은 것이다. 쉽게 말해 “당신 제자들이 얼마나 많이 깨쳤소”라는 얘기다. 雲門은 이에 電光石火처럼 멋들어지게 應手한다. 영수의 과일은 익어 있다고. 그러나 雲門의 對答에는 이와 같이 단순한 日常的 對話 以上의 높고 높은 선리 禪理)가 들어 있다. 아차 하면 놓친다. 잘 봐야 한다. 禪은 눈 깜짝할 사이에 宇宙를 몇 바퀴씩 돈다.
雲門은 이 짧막한 對答에서 生死를 가름하는 世俗의 有限的 時間 槪念을 ‘永遠’이라는 無限의 時間 위로 跳躍시키고 있다. 雲門은 大臣이 比喩한 ‘靈樹의 果實’을 修行中인 靈樹院의 學人들보다 한 次元 더 높은 ‘도(道)’로 끌어 올렸다. 道는 永遠하다. 그러나 修行이니, 學人이니, 見性이니 하는 것은 모두 現世的이고 有限의 時間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發展, 成長, 成熟 등은 오직 世俗的 時間의 領域에서만 言及될 수 있다. 絶對 領域이나 永遠의 時間 속에서는 成熟(과일의 익음)이니, 成長이니, 하는 槪念이 成立될 수 없다. 永遠 속에서는 成長이라는 게 전혀 無意味하다. ‘靈樹의 과일(운문의 禪旨)’이 永遠의 領域에 속하는 도(道)라면 學人들의 깨침 따위가 成熟했는가 하는 槪念이 適用될 수 없다. 道는 언제나 익어 있고, 完全無缺이고, 永遠이다. 雲門은 質問者의 마음을 눈깜빡하는 사이에 現象的 次元에서 超現象的 次元으로 高揚시켰다.
이렇게 刹那에 有限을 無限으로, 瞬間을 永遠으로 바꾸어 놓는 雲門의 方法論을 禪學은 ‘절단중류(截斷衆流)’라고 한다. 雲門은 有名한 禪學理論의 하나인 ‘운문3구법(雲門三句法)’을 開發했다. 함개건곤(涵蓋乾坤), 절단중류(截斷衆流), 수파축랑(隨派逐浪)이라는 것이 雲門3句다. 전 宇宙를 충분히 적시고 덮는다는 ‘涵蓋乾坤’은 老莊이 말한 “道란 없는 곳이 없다(道無所不在)”는 뜻이고 敎學的으론 청정법신(淸淨法身)을 가리킨다. 法身은 부처의 本體, 불성(佛性), 道를 말한다. 道는 하늘과 땅을 덮고도 남는다. 雲門은 法身을 다음과 같이 說破하기도 했다.
묻는다 : 부처의 본체(法身)란 어떤 것인가?
답한다 : 너무 커서 6대(六大)로도 담을 수가 없다.
法身이 무엇이냐는 學人의 質問에 대해 雲門은 만유(萬有)를 生成하는 6대(地, 水, 火, 風, 空, 識)로도 收用할 수 없는 宇宙生成 이전의 本體라고 가르쳐 준다. ‘切斷衆流’란 모든 흐름을 한순간에 斷絶하는 것으로 상대(相對)에 속하는 제상(諸相 : 衆流)을 一切 離脫 [截斷]해서 絶對와 하나가 되는 狀態를 말한다. 쉽게 말해 俗世의 因緣을 끊는 것이며, 達磨의 境地(解脫)다. 修行 결과 깨달음에 이른 부처의 모습이다. 이를 원만보신(報身)이라고 한다.
파도를 따라 흐름을 같이하는 ‘隨派逐浪’은 바다의 윈드 서핑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本體가 衆生諸道를 위해 相對方의 事情에 응해 나타나는 인격신(人格身)이다. 現實參與이고 世俗回向이다. 이를 천만억화신(千萬億化身)이라고도 한다.
老莊 思想에 雲門3句를 代入하면 다음과 같이 圖表化할 수 있다. 老莊의 ‘無爲自然의 道’는 世上에 道가 없는 곳이 없기에, 즉 世上 萬物 모두가 道고 眞理이기 때문에 ‘나’의 本體인 진아(眞我)가 그 眞理와 合一을 이룰 수 있다. 이와 같은 나와 自然의 合一은 산따라 물따라 自然을 즐기며 자재롭게 살 수 있는 任運自在를 展開한다. 이것이 ‘無爲自然의 道다’
雲門의 話頭 ‘영수의 과일’은 世俗的 생각으로 靈樹院 學人들의 수능시험 合格 與否를 묻는 대감의 그럴 듯한 隱喩를 한바퀴 휙 돌려 임운자재(任運自在)의 高次元으로 昇華시켜버렸다. 말하자면 形而下學을 形而上學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靈樹院의 學生들은 수능시험을 合格한 程道를 훨씬 넘어 몸을 自然의 흐름에 맡기고 살아가는 낙도(樂道)의 境地라는 얘기다. 禪을 좀 안다고 대든 대감이 상량(商量)은 雲門의 能辯과 험준한 絶壁 위 곡예 앞에서 코가 납작해졌다.
禪問答에서 과일을 象徵的으로 活用한 예를 하나만 더 보자.
절강성 大梅山에 주석했던 大梅法常禪師(752-839)가 사미시절 馬祖道一大師를 참문, “부처란 무었입니까?”고 물었을 때 “이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是佛)”라는 가르침을 받고 깨쳤다. 法常은 그후 大梅山으로 들어가 隱遁했다. 法常의 隱遁 소문을 들은 스승 馬祖는 한 중을 보내 法常이 진짜로 깨쳤는가를 試驗해보았다.
묻는다 : 馬祖大師로부터 도대체 무슨 말씀을 들었기에 이처럼 大梅山에 들어와 隱遁하고 있습니까?
답한다 : 이 마음이 곧 부처라는 얘기를 들었지.
묻는다 : 馬大師가 요즘은 달라져서 마음도 부처가 아니라고(非心非佛)하는데요.....
답한다 : 그 늙은이가 사람을 한없이 헷갈리게 만드는군. 그가 비록 지금 그렇게 말하더라도 나는 오직 즉심시불(卽心是佛)일세.
(중이 대매산에서 法常을 만나 나눈 問答을 馬祖에게 소상하게 말했다.)
마조왈 : 매실이 다 익었구나[梅子熟也]
‘대매숙야(大梅熟也)’라는 話頭 內容이다. 卽心是佛이나 非心非佛이나 똑같은 이야기다. 馬祖는 卽心是佛이라는 肯定法이 硬直된 테제로 定着돼 구두선(口頭禪)이 돼버리자 非心非佛이라는 不正法을 썼을 뿐이다. 大梅는 이를 看破하고 初志一貫의 主體性을 밝힘으로써 법기(法器)로서의 자신의 됨됨이를 잘 드러내보였다. 그는 결코 馬祖의 表面的 言語 遊戱에 眩惑되지 않았다. 馬祖가 “매실이 다 익었구나”라고 한 것은 大梅法常의 道가 완전히 한소식 한 境地라는 讚揚이다. 내친 김이니 梅實이 매개가 된 大梅法常과 龐溫居士의 법거량까지 보고 넘어가자.
(大梅山을 訪問한 龐溫居士가 수인사 후 馬祖가 認可했다는 大梅의 法力을 試驗해보려는 거량을 시작했다)
묻는다 : 오랫동안 大梅를 우러러 왔는데 梅實이 다 익었는지 덜 익었는지 잘 모르겠군
답한다 : 무슨 꿍심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
묻는다 : 산산이 깨져버렸군!
답한다 : 그러면 매실씨는 돌려주시오.
大梅는 龐居士가 매실이 깨져 버렸다고 攻擊하자 그 씨(大梅의 眞如佛法)를 돌려달라고 逆襲, 龐居士를 눌러버렸다. 대단한 기봉이다. ‘나의 禪思想은, 龐居士 당신 정도라면 나를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이미 看破했을 터인데 그대가 깨물어 산산조각을 내겠다고. 아무리 날카로은 이로 깨물어도 그 核(씨 : 나의 佛道)만은 이가 들어가지 않을 터. 자, 이제 그 씨는 돌려다오‘ 라는 의미다. 龐居士는 혹을 떼겠다고 대들었다가 혹을 붙인 격이다. 政治, 經濟, 社會指導者들이라는 사람들이 大梅山의 梅實이 익듯 푹 익어야 되는데 말이다. 서울 강남의 매실은 언제나 익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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