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불교/선불교(禪佛敎)

선불교 35. 호떡이다[胡餠]

slowdream 2007. 9. 14. 23:29
 

* 호떡이다[胡餠]


 묻는다 : 부처의 말, 祖師의 말은 너무 많이 들어 싫증나니 그들도 하지 않은 한마디는 어떤 겁니까?

 답한다 : 호떡


 雲門禪師와 한 學人의 禪問答이다. 話頭로는 ‘호떡(胡餠)’이라 한다. 雲門寺 方丈으로 主席한 雲門文偃禪師는 雲門宗이라는 禪宗의 일가(一家)를 이루었고 광동성, 강서성, 복건성 일대에서 그의 제자들이 宗風을 크게 떨쳤다. 現在 全國 重點 保護寺刹로 指定돼있는 雲門山 자비봉 雲門寺는 923년 雲門禪師가 開山한 禪刹이다.


 당말오대의 남한왕(南漢王) 유엄이 雲門山에 절을 지어 ‘광태선원(光泰禪院)’이라는 편액을 하사하고 소주 靈樹院 方丈으로 있던 雲門文偃禪師를 方丈으로 主席하게 했다. 그후 증진선사(證眞禪寺)로 잠시 改稱됐다가 송 건덕6년(963) ‘대각선사(大覺禪寺)’로 다시 改稱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雲門寺는 大覺禪寺의 俗稱이다. 雲門寺는 現代 中國佛敎의 最高 巨木인 허운화상이 일생동안 中興시킨 15개 禪宗 叢林 중 강서성 진여선사(옛이름 운거사)와 함께 자장 역점을 두고 復元한 禪刹이다.


 雲門宗은 宋代에 臨濟宗과 함께 宗風을 드날린 中國 禪佛敎 5家7宗중의 하나다. 5가(家)는 潙仰, 臨濟, 趙東, 雲門, 法眼宗을 말하는데 말하자면 禪宗 5개 宗派다. 7宗은 5家에다 臨濟宗의 黃龍波와 양기파를 합한 것이다.


 雲門은 언제나 苛酷하고 短狐하다. 그리고 簡單 明瞭하다. ‘호떡’ 역시 相對方을 撲殺내는 苛酷한 逆說이다. 雲門은 質問者의 虛荒된 觀念論을 무섭게 叱咤한다. 부처나 祖師水準의 解脫도 못한 주제에 그보다 더 높은 境地로 가겠다고 큰소리치는 중의 헛된 酬酌을 假借없이 내려 갈긴다. 너 입고 있는 옷이 거지꼴인데 觀念的 知識을 주둥아리로 뇌까리며 비단 옷을 입은 척하는 꼬락서니를 도대체 눈뜨고 보아줄 수가 없다는 直說的 면박이다.


 중은 이렇게 面縛을 주어도 못 깨닫는다. 마치 다 헤진 옷을 호떡으로 아무리 기워봐도 한 발만 움직이면 호떡이 그대로 붙어있을 리 없는 것처럼 말이다. 雲門의 ‘호떡’은 부질없는 觀念論에 빠진채 미망만 거듭하는 學人들을 粗雜한 음식인 호떡 같은 놈들이라고 호통치는 獅子吼이다.  雲門은 ‘호떡’이라는 짤막한 한마디를 통해 다음과 같이 說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 平素에 하는 일 없이 있다가 사람들에게 부처의 뜻이네 祖師의 뜻이네 하는 것을 듣고서는 다시 부처와 祖師를 超越하는 方法을 알아보려고들 하고 있는데 말이지. 좋아, 그럼 먼저 뭐가 부처고 어떤 게 祖師인지 말해보라구. 그리고 뭐가 부처를 넘어서고 祖師를 超越하는 道理인지 말해보라구. 3계(三界)를 넘어선다고 하는데, 그럼 뭐가 3계인지 한 번 끄집어내서 도대체 어떤 것이 너희들 知覺과 見聞을 가로막고 있는지 보자구. 그리고 어떤 소리와 먼지, 색(色)과 법(法)을 끊어야 하는지 살펴보자구. 내가 이렇게 주절주절대면 너희들은 이미 여기에 묻혀 버린 것이야. 아직도 方向을 잡지 못하겠거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 도대체 옷 입고, 밥 먹고, 똥 싸고, 오줌 누는 것 말고 뭐 달리 할 게 많은지 말이다. 평소 할 일없이 있다가 그런 妄想들이나 하고 있으면 뭘 하자는 거냐. 또 어떤 閑暇한 雜輩들은 한데 모여서 옛사람들 목소리나 흉내내고 있고 그들이 남긴 가르침을 죽어라고 외우고 있지. 그리고서는 이것저것 함부로 뜯어다가 붙이고 해서는 자기가 佛法을 體得했다고 떠들고 다니지. 父母와 家族들을 離別하고서 이렇게 먼데까지 나와 한다는 게 고작 이 정도뿐인가. 한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구먼!”


 雲門의 지독한 苛酷性과 短狐함은 市政의 卑俗語를 거침없이 들이대는 데서 더욱 돋보인다. 祖師禪은 본래 日常의 會話體와 生活必需品 등으로 高度의 哲學인 선리(禪理)를 說破한다. 德山과 臨濟, 雲門의 경우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똥, 해골, 개소리 같은 卑俗語를 마구 휘두른다. 禪은 이처럼 된장, 간장 냄새가 振動하는 平凡한 民衆의 日常生活과 같이하는 宗敎이고 言語이다.


 그래서 法力이 높은 禪師들한데 잘못 걸려들면 慾을 바가지로 얻어 먹는 面縛과 개망신을 당하기 일쑤다. 雲門은 긴 말을 않는다. 元來 禪의 敎育方法은 問答式이고 簡單 明瞭하다. 그러나 雲門禪師의 경우 한 수 더 나아가 學人이 묻는 깊은 禪理를 단 한 자의 글자로 답한다. 이른바 有名한 雲門의 ‘일자관(一字關)’ ‘一字公案’이다.


묻는다 : 도(道)란 무엇입니까?

 답한다 : 가라[去].


 道에 到達하려면 자유롭게, 거리낌 없이 그대의 길을 가라. 特別한 方法이나 行爲의 結果를 考慮치 말고 그대가 해야 할 모든 일들을 행하라. 그대에게 주어지는 일들을 하고, 또 하고 繼續하라! 이것이 바로 道에 이른 사람이 行할 바다.


묻는다 : 운문의 한길(雲門一路 : 운문의 선지)은 무엇입니까?

 답한다 : 친(親).


 禪의 妙諦는 自己自身이 직접 體驗할 일이지 부처한테 依支하고 누구한테 배우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묻는다 : 父母를 죽인 罪는 부처 앞에 懺悔하면 되지만 부처와 祖師를 죽이면 어떻게 懺悔해야 합니까?

 답한다 : 드러내라[露].


 살불살조(殺佛殺祖)는 一切 執着을 끊어 한 오라기의 妄念도 없는 解脫의 境地니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묻는다 : 어떤 것이 머리카락이 그 날에 닿기만 해도 끊어지는 취모검(吹毛劍 : 金剛智慧) 입니까?

 답한다 : 해골이다(骼).


 돌대가리 같은 머리를 吹毛劍으로 쳐버려 해골이 피를 뚝뚝 흘리며 땅바닥에 나뒹군는 듯한 强烈한 印象을 준다. 雲門은 이처럼 한 글자의 對答으로 모든 質問의 疑問을 확 풀어주는 簡單 明瞭한 單純性을 發揮한다. 禪의 特性중 하나인 간명직절(簡明直截)을 劇的으로 代表하는 게 雲門의 一字公案이다. 雲門의 禪知는 마치 天子의 소칙처럼 簡明하게 그 골자를 드러낸다고 해서 ‘운문천자(雲門天子)’라는 別名이 붙기도 했다.


 韓國 禪宗(曹溪宗)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는 雲門禪師의 家風을 살펴보자. 우선 禪宗5家를 强硬波와 온건파로 나눈다면 다음과 같은 圖式으로 整理할 수 있다.

 * 强硬波 = 臨濟宗, 雲門宗

 * 溫腱波 = 潙仰宗, 趙東宗, 法眼宗

 臨濟義玄禪師는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 격의 學人들을 無慈悲할 정도로 험하게 다루었다. 돼먹지 않은 雲水衲子들의 傲慢을 꺾기 위해 그는 고함을 지르고 拄杖子로 내리쳤다. 그러나 雲門은 臨濟보다도 훨씬 더 至毒한 사람이었다. 臨濟는 찾아오는 學人들에게나 그렇게 대했지만 雲門은 모든 사람들에게 酷毒했다. 雲門은 악담(惡談)으로 一貫했고 激烈한 言語暴行을 서슴치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說法을 한 일이 있다.


“석가모니가 誕生한 직후 한 손으론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론 땅을 가리키며 일곱 발짝을 걷더니 사방을 둘러보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했다 한다. 내가 당시 그 場面을 目擊했더라면 一擊에 그를 때려 죽여 몸뚱이 살을 개먹이로 주었을 것이다. 그래야 天下를 太平하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貢獻했을 것이다.”


 雲門은 激烈한 偶像破壞主義다. 그는 석가모니를 때려죽여 그 肉身을 개밥으로 주겠다는 惡談을 토해 佛像에 절하며 福을 구하는 祈福信仰이 아니라 涅槃이란 것에조차 安住하지 않는 ‘무여열반(無餘涅槃)’의 絶對自由를 指向했다.


 雲門의 家風은 험절(險絶)하다. 매우 險峻한 그의 家風은 마치 急傾斜의 언덕에서 미끄럼을 타는 듯한 스릴과 快感을 느끼게 한다. 辱說과 惡談이 亂舞하는 雲門의 雄辯은 말로 形容키 어려운 痛快함으로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고, 아슬아슬한 曲藝처럼 스릴 滿點이다. 雲門宗의 宗風을 쉬운말로 要約하면 다음과 같다.


 1. 毒舌과 逆說(Paradox)로 가득차 있다.

 2. 酷毒하고 短狐한 面縛을 서슴치 않는다.

 3. 雄辯的이다.

 4. 簡單 明瞭하다.

 5. 철저한 絶對主義者고 極端主義者다.

 6. 明快한 일도양단(一刀兩斷)이다.

 7. 천길 낭떠러지를 걸어가는 아슬아슬한 曲藝다.

 8. 때로는 아주 文學的이다.

 9. 하늘과 땅을 덮고 흐르는 강물을 단칼에 끊어버리는 단칼 결판이다.

 10. 상자와 뚜껑이 만나듯 딱 맞아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