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趙州종심선사(778-897)가 어느날 弔問客으로 한 高僧의 葬禮行列을 따라가다가 말했다.
“많은 죽은 사람이 단 하나의 산 사람을 보내고 있군.”
이 말을 들은 옆에 있던 學人이 물었다.
“마음이 살아 있는 것입니까, 몸이 살아 있는 것입니까?”
“몸도 마음도 살아 있지 않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趙州는 죽은 僧侶를 ‘산 사람’, 葬禮 行列을 이룬 산 사람들을 ‘죽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억지소리 같다. 話頭로는 ‘사한생한 (死漢生漢 : 죽은자와 산자)’이라 한다. 趙州가 말하는 죽은 僧侶는 진짜로 살아있는 큰 법기(法器)의 高僧이다. 그러면 그 高僧은 왜 죽었으되 죽지 않았는가. 그는 高僧이기 때문에 이 世上의 肉體的 生命은 끝났어도 六道輪回에서 인간도(人間道) 이상의 世界로 移動, 衆生을 諸道하는 聖스러운 길을 繼續해 걸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쯤되면 단순히 숨을 거두었다고 죽은 게 아니고 삶의 場所를 옮겨 地獄道, 餓鬼道, 畜生道에서 헤메고 있는 衆生을 諸道하려 가는 것일 뿐이다. 禪은 죽음을 西洋式으로 天堂 아니면 地獄으로 가는 단순한 移動으로 보지 않는다.
趙州는 學人과의 問答에서 몸도 마음도 모두 버린 절대무(絶對無)의 길에 들어서 있는 高僧의 죽음을 진짜 生命이라고 가르쳐준다. 그 죽은 高僧의 本源的인 實體는 절대로 변하지 않았음을 銘心해야 한다. 그는 世上을 개의치 않고 자신의 본원(自性本體)이 흐르는 대로 맡겨둘 뿐이다. 그가 죽은 것은 이러한 ‘放任’의 狀態에서 단순히 生命의 場所를 移動하는 것에 不過할 뿐이다.
우리는 宇宙에서 태어나 宇宙로 돌아간다. 따라서 宇宙 本體에서 보면 生과 死는 存在의 場所를 移動하는 것에 不過하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땅 위에서 땅 아래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移徙를 하는 것이다. 셋방살이 하는 사람은 어떤 때는 2층 방에 살다가 어떤 때는 地下 방에 살기도 한다. 生死도 별다른 게 아니라 이처럼 移徙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偉大한 敎訓을 하나 發見할 수 있다. 自然에 어긋나는 要求만 하지 않는다면, 즉 전세 얻을 돈이 넉넉해 高級 빌라 2층을 얻을 수 있으면 그렇게 살고, 돈이 모자라 地下 방밖에 안 되면 분수대로 거기서 살면 삶은 언제나 엄청난 기쁨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나이 먹으면 늙고, 富者는 3대를 이어가기 어렵고, 權力은 10년을 持續하기 어렵다고 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변하게 놔두라. 이것이 내맡김(Glassenheit)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의 本源的인 實體만은 絶對 변하지 않는다.
靈魂이라 해도 좋고, 自性이라 해도 좋고, 佛性이라고 해도 좋다. 우리의 根本的인 實體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만 믿을 수 있다면 죽음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것밖에 죽음을 극복하는 다른 보장책은 없다.
벼슬이 어사대부에까지 이르렀고 禪門에 入門, 南泉寶元禪師의 법제자로 趙州종심선사와는 師兄師弟間이었던 육긍대부(764-834)가 스승 南泉禪師의 訃音을 접했다. 당시 그는 의주 관찰사였다. 안휘성 남전사로 달려간 육긍대부는 南泉의 관 앞에 섰다. 사람들은 그가 大聲痛哭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관앞에서 한바탕 拍掌大笑했다. 이를 지켜보던 주지가 노발대발 하면서 “그래 스승의 관 앞에서 가가대소(呵呵大笑)라니 이무슨 妄發이요”라고 나무랐다. 그러자 관 앞에 엎드려 大聲痛哭을 하면서 이번에는 “아, 슬프도다! 스승께서 世上을 떠나시다니.......”라고 했다.
육긍대부의 ‘가가대소(呵呵大笑)’라는 有名한 話頭다. 스승의 주검 앞에 선 육긍대부의 껄껄웃음, 즉 기쁨은 무엇이었을까. 미친 사람의 짓거리가 아니다. 世俗의 慣習으론 不敬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佛法에서 보면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정중한 弔文이요 極盡한 禮節이다. 南泉禪師쯤 되는 巨木이면 저쪽으로 어서 달려가 地獄道, 餓鬼道, 畜生道에서 輪回하고 있는 衆生을 제도해 人間界, 천상계(天上界)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처럼 훌륭한 일을 하러 갔으니 얼마나 기쁘고 기쁜가.
韓國佛敎 曹溪宗 李性徹 宗正은 1983년 12월 송광사 방장소구선사의 葬禮式에 보낸 追悼辭에서 “구산, 당신은 이제 쏜살같이 지옥에 떨어질 겁니다” 라고 했다. 얼핏 보기엔 妄發 같다. 죽은 자에게 어서 地獄에 떨어지라니 말이다. 그러나 이 追悼 法問도 역시 당신 같은 法器면 地獄의 衆生을 제도하라는 얘기다. 역시 구산의 法力을 讚揚한 追悼 法問이다. 여기서 하나 유의할 것은 우리의 本源的 實體인 內的 自我는 不生不滅이다.
따라서 地獄의 衆生救濟라는 死後의 菩薩行과 지금, 여기서의 衆生諸道는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다. 地獄道의 衆生은 바로 이 現實속의 가난하고, 抑壓받고, 苦痛받는 이들이요 監獄에 갇힌 자, 自由를 剝奪當한 자 들이다. 그래서 性徹 宗正의 追悼辭는 죽어서 저 세상으로 떠나는 구산선사만을 향한 讚揚이 아니다. 葬禮式에 參席한 모든 四大部衆을 향한 懇曲한 외침이요 法問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도오원지화상(769-835)이 제자 漸源을 데리고 한 喪家에 問喪을 갔다. 漸源이 亡者의 棺을 두둘기며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라고 스승에게 물었다. 道吾和尙은 “살았다고도 못하고 죽었다고도 못한다”고 대답했다. 점원이 “어째 못합니까?”하고 다그치자 道吾和尙은 “못하지 못해”라고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漸源이 “스님, 빨리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스승님을 치겠습니다.” 라고 했다. 道吾가 “치고 싶으면 쳐도 좋지만 살았느냐, 죽었느냐는 문제에 대해선 말할 게 없다”고 하자 漸源은 스승을 한 대 내리쳤다.
‘碧巖錄’(제55칙)에도 나오는 ‘도오점원조위(道吾漸源弔慰)’라는 유명한 話頭다. 지도(至道)의 立場에서 보면 죽음 속에 삶이 있고 삶 속에 죽음이 있다. 말하자면 깨치지 못한 자의 삶은 살아 있으되 죽은 것이고, 깨친 사람은 죽어도 죽은 게 아니라 永遠히 살아있는 人間의 本體 속에서 繼續해 살고 있는 것이다. 漸源의 물음에 대해 道吾禪師가 說破한 “살았다고도, 죽었다고도 할 수 없다”는 對答은 내심 다음과 뜻을 內包하고 있다.
“잠꼬대하지 말아라. 亡者의 生死를 따지고 있는 너는 네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아느냐. 너 말은 그럴 듯하게 하는데 너야말로 아직 生死를 벗어나지 못하고 生이니 死니 하는 두 갈래 길에서 分別意識을 發動시켜 妄想을 하고 있구나. 진짜로 깨친 사람에게는 죽은 게 산 거고, 산 게 죽은 것일 수도 있기에 生死의 分別이 있을 수 없느니라.”
道吾의 禪話는 이렇게 이어졌다. 漸源은 道吾和尙이 圓寂하자 법형(法兄)인 석상경저선사한테 지난날의 弔文 이야기를 하면서 답을 구했다. 석상 역시 스승 道吾禪師와 똑같은 對答을 했다. 漸源은 그때서야 生死의 原理를 깨닫고 가래를 메고 法堂으로 올라가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했다. 석상이 “그게 뭣하는 짓이냐?”고 묻자 漸源은 “돌아가신 스승님의 사리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석상이 “스승 道悟和尙의 舍利야 온 天地에 가득한데 어떤 舍利를 또 찾는단 말이냐”고 물었다. 漸源은 “스님의 恩惠에 報答하려고 이렇게 열심히 있는 힘을 다 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답했다. 漸源에 대해서는 계속 아둔하게만 描寫돼 있다. 없다면 티끌 하나, 실오라기 하나 없고 있다면 宇宙에 꽉 차있는 게 佛性이고, 法性이고, 法身이고, 사리고, 도(道)고, 存在의 本源的인 實體다. 道吾禪師가 남긴 淸涼法音이 곧 舍利일진대 그 法問은 책으로, 제자들의 記憶으로, 요사이 같으면 錄音으로 온 天地에 퍼져 있지 않은가. 道吾의 法音은 죽음과 함께 이 世上에, 법계(法界)에 가득차 있다. 어디다 두고 말고 할 게 없다.
그러나 漸源이 道吾禪師가 生前에 說法을 하던 法堂으로 가서 가래를 들고 다니며 舍利를 찾겠다는 演出을 한 것은 드라마틱하다. 禪은 언제나 이처럼 한편의 演劇을 펼친다. 마지막으로 漸源이 토해낸 “있는 힘을 다해 스승의 恩惠에 報答코자 한다”는 대목은 가래를 들고 다니는 形相的인 場面이 高度의 精神世界로 昇華하는 익살이면서 ‘형이하(形而下)’로부터 ‘形而上’으로 反轉되는 劇的效果를 가져다준다. 이쯤 되면 漸源도 한소식한 禪師의 隊列에 끼게 된다. 도오원지선사는 사제(師弟)인 운암담성이 앓고 있을 때 問病을 가서 말했다.
도오 : 이 껍질을 떠나서는 어디서 다시 만날까?
운암 : 나지도, 멸하지도 않는 곳에서 만납시다.
도오 : 왜 생도 멸도 없는 곳에서도 만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도오는 역시 絶對無의 世界, 오직 텅빈 공(空)속의 삶을 지향한다. 이 법담(法談)은 이런 絶對無의 世界에서는 만난다거나 못 만다거나 하는 分別이 있을 수 없다는 徹底한 空을 强調하고 있다. 肉身이라는 껍질을 받거나 안 받거나 늘 같이 있는 게 法性인데 무엇 때문에 새삼 만날 필요가 있겠는가. 6조 慧能은 아마 이런 마음으로 국은사에서 落葉이 뿌리로 돌아가 거름이 되듯이 홀연히 遷化했으리라.
禪은 ‘本來의 自己(aboriginal self)'를 確認,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行動할 것인가를 決斷하는 行爲다. 이를 선행위(禪行爲), 또는 깨침의 實踐이라고 한다. 깨달음이란 결국 自己自身이 바로 부처였다는 사실을 確認하면서 얻는 ’놀라움‘이다.
* 마른 똥막대기다[乾屎橛]
묻는다 : 雲門이 말한 ‘마른 똥막대기’가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雲門道 乾屎橛意旨如何)
답한다 : 그대는 간시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你認爲乾是橛是磨)
묻는다 : 오직 묻고 있을 뿐이다.(只是在問)
답한다 : 나도 역시 모른다. 禪이란 이런 것이다. (我亦不識 禪是這樣)
綠茶를 마시고 筆談을 시작했다. 불원화상은 내가 休紙에다 ‘간시궐(乾屎橛)’을 썼더니 빙그래 웃는다. 원래 ‘乾屎橛’은 운문종 개산조인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禪師와 한 學人의 禪問答에서 나온 有名한 話頭다. 운문은 學人들의 慘聞에 딱 글자 한 자로 대답하는 저 유명한 ‘일자 공안(一字公案)’을 비롯, 사람을 어리둥절케 하는 逆說과 毒說이 亂舞하는 가운데 한소식 일깨우는 絶對究極의 話頭를 수없이 남겼다.
‘乾屎橛’은 激烈한 毒說의 雲門家風을 代表하는 話頭의 하나다. 雲門은 學人들과의 법거량에서 “개 아가리 닥쳐라” “이 여우 같은 놈아” 같은 辱說도 서슴치 않았다. ‘마른 똥막대기(마른 똥덩어리)도 같은 脈絡이다.
묻는다 : 부처(부처의 法身)란 무엇인가?
답한다 : 마른 똥막대기다.
“마른 똥막대기”라는 話頭를 낳은 雲門과 한 學人의 법거량이다. 雲門의 語錄에는 마른 똥막대기, 또는 마른 똥덩어리를 뜻하는 ‘乾屎橛’이라는 말이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온다. 그는 上堂法語에서 “惡業 衆生이 여기 다 모여 무슨 마른 똥막대기를 찾아 물어뜯고 있느냐”고 했고 自問自答의 수시대어(垂示代語)에서도 거듭 사용했다.
묻는다 : 萬法은 어디서 오느냐?
답한다 : 똥더미에서지요.
雲門禪師의 自問自答이다. 禪學은 이와 같은 自問 自答의 법거량을 垂示代語라 한다. 어쨌든 ‘乾屎橛’은 雲門뿐 아니라 臨濟義玄(?-866), 德山宣鑑禪師(782-865)도 즐겨 使用한 당시 禪林의 逆說(paradox)을 代表하는 ‘流行語’였다. 雲門, 臨濟, 德山은 부처를 마른 똥막대기라고 罵倒해버린 激烈한 家風의 所有者들이며 絶對主義者들이다. 雲門이 學人의 慘聞에 答한 ‘乾屎橛’은 참으로 초상출격(超常出格)의 禪問答이다. 부처가 똥막대기라니......
雲門의 ‘乾屎橛’은 自己自身이 바로 부처인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質問者 自身을 가리킨다. 質問者는 부처와 衆生을 區分하는 衆生心 속에서 헤매면서 부처를 자기 밖의 對象化된 다른 存在로 分離해 찾고 있는 것이다. 禪에서 누누이 强調하는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卽佛]’라는 가르침도 結局은 자기 자신이 바로 부처라는 얘기다.
卑賤한 衆生(똥막대기)도 깨치기만 하면 그대로 부처가 될 수 있다. 부처가 따로 없을진대 지금은 똥친 막대기 같이 아무 價値 없는 人間이지만 그러나 그 똥막대기가 깨치면 곧 高貴한 人格의 부처로 변한다. 우리말에도 ‘똥친 막대기’라는 말이 있다. 아주 亡身을 당하거나 人格 破綻을 일으켜 存在 意味를 喪失한 境遇, 또는 아무 쓸모 없는 ‘無價値’를 뜻한다. 한마디로 人格的인 冒瀆이다.
‘乾屎橛’의 元來 意味는 마른 똥덩어리가 옳은 飜譯이고 마른 똥막대기는 좀 점잖게 飜譯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 世上에서 제일 賤視당하는 것 중의 하나가 ‘똥’이다. 그러나 人間은 嚴密한 意味에서는 자기 똥을 먹고 산다. 水洗式 便器라 하여 똥을 즉시 물로 밀어내 下水道를 타고 나가게 한다. 그러나 보라, 終末處理場을 거쳐 강으로 바다로 흘러들어간 똥물이 수증기가 돼 비를 내리고 우리는 그 물을 다시 먹지 않는가.
雲門의 ‘乾屎橛’은 이래서 똥막대기에도 法身이 있다고 말한다. 엄청난 逆說이다. 그러나 그게 眞理다. 人間을 人間으로 存在케 하는 自覺의 根源的인 힘이 되는 우주령(宇宙靈 : 法身)이 現實속에 具體化 돼 나타나면 便所의 쉬파리가 된다. 흔히 말하는 영(靈), 法身은 무엇인가로 화(化)하는 活動性을 繼續 維持한다. 이것이 바로 生命이라는 것이다.
좀 어렵게 말한다면 法身은 개다(個多)가 個多로 보일 때 개개의 事物이 나타난다. 그러나 法身 自體는 現象界의 森羅萬象과 같은 個多的인 複數의 存在가 아니다. 따라서 具體的 形象을 가진 많은 것 중의 하나와 같은 可視的 事物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法身도 個多의 具體的 事物도 다 사라지고 만다. 法身은 오직 個多를 形成하는 土壤일 뿐이다.
東洋思想은 老莊 이래로 똥과 같은 汚物에서 眞理를 發見하는 傳統을 가져왔다. ‘莊子’에서 보면 莊子와 동곽자의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다.
묻는다 : 道란 어디에 있습니까?
답한다 : 없는 곳이 없소
묻는다 : 분명히 가르쳐 주십시요
답한다 : 땅강아지나 개미에게도 있소.
묻는다 : 어째서 그렇게 낮은 것에도 道가 있습니까?
답한다 : 강아지풀이나 논의 피에도 있소.
묻는다 : 왜 그리 점점 낮아지십니까?
답한다 : 기와나 벽돌에도 있소.
묻는다 : 차츰 차츰 더 심하게 내려가시는군요
답한다 : 똥이나 오줌에도 있소.
동곽자는 여기서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못했다.
老子는 이렇게 말했다.
“道란 널리 어디에나 있는 것. 대도(大道)는 萬物에 內在하며 左로도 右로도 마음대로다. 萬物은 이와 같은 道에 의해 생겨나는데 道는 이러한 시작도 끝도 없는 煩雜한 일들을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道는 萬物을 生成시킨 공(功)을 이루고도 그 공명(功名)을 내 것이라 하지 않는다.”
老子와 莊子의 眞理觀은 한마디로 道의 萬物偏在다. 이와 같은 眞理觀은 道와 一切가 되어 그 本性을 共有한 진인(眞人)은 道와 함께 萬物과 함께 있으면서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때문에 結果的으로는 現像, 즉 눈에 보이는 事物의 本性(道)에 作用을 가해 現實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道와 萬物 사이에는 끊임 없는 作用이 存在한다. 그 作用이 政治的으로 噴出되면 現實을 바꿔놓는 ‘改革’ ‘革命’이 된다. 聖人 또는 眞人이 附與받은 超自然的인 힘은 바로 이런 힘을 가진 道에서 나온 것이다. 禪師들의 根本的인 通察은 노장(老莊)의 通察과 全的으로 같다고 말해도 전혀 틀릴 게 없다. 莊子의 本質인 直觀 역시 禪의 核心이다. 眞理에 接近하는 가장 올바른 길은 直觀을 통해 事物을 觀察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1세기의 브랜드 네임이 되고 있는 情報化時代, 情報産業의 核心 要素가 直觀(感受性)이라고 한다. 情報産業의 要諦는 土地, 資本, 勞動이 아니라 아이디어(創意性)와 感受性(直觀力)이라는 건 이미 하나의 定說이다.
禪도 老莊과 마찬가지로 별볼일 없는 사소한 것들을 實在와 眞實에 이르는 通路로 變化시킨다. 다시 말해 皮相的인 感覺 뒤에 存在하는 本質的인 것에 興味를 갖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그 終着驛은 存在의 根源을 깨달아 存在의 本質인 絶對自由를 마음껏 享有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禪은 마음에 平靜을 回復하고 維持시키는 訓練이다.
雲門의 ‘乾屎橛’은 우리 모두가 부처와 同等한 絶對價値인 ‘참된 자기(自性, 佛性)’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각자가, 開發하지 못해 ‘비천한 똥 막대기’신세에 있음을 比喩한 象徵物이다. 똥막대기에 卑賤하다는 差別性을 附與한 것이 禪에서 禁忌視하는 相對的 分別心이 아니냐고 反問을 提起할 수 있다. 그러나 雲門이 말한 ‘乾屎橛’은 絶對平等 속에서 方便的으로 일시 認定한 ‘差別’일 뿐이다.
雲門은 質問子가 槪念的으로 말하는 부처를 ‘乾屎橛’이라는 奇想天外의 具體的 物件으로 提示함으로써 범성(凡聖)을 區分하는 分別心과 깨침을 밖에서 구하는 學人의 妄想을 一擧에 撲殺내버렸다. 가장 賤한 것이 가장 貴하다는 論理다. 부처라는 성스러운 人格이 별개 아니라 가장 천한 똥막대기라는 얘기다. 이는 가장 韓國的인 것이 가장 世界的인 것일 수 있다는 逆說의 論理構造와 똑같은 脈絡이다.
‘乾屎橛’은 옛날 변소에 나무막대기를 세워놓고 大便을 본 후 거기에다 문질러 씻던, 오늘의 休紙 역할을 했던 막대기라는 解說도 있다. 이는 짚이나 풀잎, 나뭇잎 등을 休紙로 사용하기 이전의 原始時代 얘기다. 어쨌든 便所에서 休紙役活을 하고 있는 마른 나무막대기는 일면으로는 아무데도 쓸모 없는 더럽고 더러운 物件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면으론 ‘乾屎橛’이 없으면 뒤본 후의 處理를 할 수 없는 必需品이고 重要한 物件이다. 카톨릭 信者인 美國의 홈스 大法官은 “大腦作用(認識能力)이 大腸運動(대소변)보다 더 큰 宇宙的 價値를 갖는지에 대해 종종 懷疑를 느낀다”고 述懷한 적이 있다.
莊子와 禪師들에게서는 확실히 大腸運動이 單純한 大腦運動, 즉 人間의 思考力이 가지지 못하는 크나큰 宇宙的 價値(眞理)를 지닌다. 禪은 이처럼 우리의 깊은 內面에 存在하면서 사량분별(思量分別)에 빠져 있지 않은 大小便 보는 일 같은 普遍理性을 우리 意識으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한다. 이것이 바로 禪 思想의 低流를 이루는 ‘汚物의 哲學’이다. 결코 사람 웃기려는 ‘개똥철학’쯤으로 誤解해서는 안 된다.
‘너는 똥막대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質問者에게 面縛을 준 雲門의 말은 質問者 本人이 바로 부처임을 깨우쳐 준 親切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결코 感情的인 辱說이나 人格 冒瀆의 逆說이 아니다. 衆生은 다만 虛像인 暫定的 自我(肉身)를 本來의 自己로 錯覺, 진아(眞我)를 전혀 값어치 없는 똥막대기로 格下시킨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乾屎橛’은 雲門보다 한 세대 앞서 臨濟宗을 開倉한 臨濟義玄禪師가 먼저 사용했다.
묻는다 : 차별없는 사람(無位眞人)이란 무엇입니까?
답한다 : 無爲眞人이란 바로 마른 똥막대기다
臨濟가 學人의 물음에 答한 ‘乾屎橛’도 역시 雲門의 그것과 같은 脈絡이다. 凡聖, 貴賤, 정예(淨穢)가 한 뿌리고 結局은 同一하다는 禪家의 萬物一切思想이고, 佛性은 萬物에 두루 偏在한다는 佛性 絶對平等論이다. 부처와 衆生의 間隔은 白紙場 한 장 차이보다도 가깝고, 本質的으로 銅錢의 앞뒤와 같은 一元論的인 同一性을 갖고 있다. 눈깜박할 사이에 이루어지는 돈오(頓悟)의 깨침만 일어나면 凡夫가 부처가 되는 變革이 可能하다.
法系上 雲門의 할아버지 뻘인 德山宣鑑禪師도 “부처란 마른 오랑캐 똥 한조각이며 聖人이란 이름도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說破했다. 投子大同禪師(819-914)에게도 똥 얘기를 한 ‘투자불성(投子佛聲)’이라는 話頭가 있다.
묻는다 : 이 세상 모든 소리가 부처님 목소리라는데 맞습니까?
답한다 : 그렇다.
묻는다 : 그렇다면 똥 오줌 누는 소리도 부처님 목소리인가요?
답한다 : (拄杖子로 한 대 내리쳤다)
묻는다 : 粗雜한 말도 有識한 말도 모두 제1의(義) 眞理에 맞는다는데 그렇습니까?
답한다 : 그렇지.
法身은 확실히 밥을 먹을 줄 안다. 그렇다고 分別世界의 尊卑貴賤을 無視한 채 一體가 無條件 平等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尊貴와 卑賤은 宇宙靈을 나타낸 分身들이다. 그러나 깨침의 世界에서는 장육 금존불도 한 포기 풀이 되고, 한포기 풀이 장육 금존불도 되는 막힘없는 圓融無涯가 있다. 여기서는 사물이 응체(凝滯)되는 일이 전혀 없어 서로 간에 막힘이나 障碍를 느끼지 않는다.
雲門의 ‘乾屎橛’은 모든 意識 속의 葛藤과 比較 相對的인 思考를 일순간에 깨부수는 破壞性의 言語다. 便을 만드는 大腸의 活動을 頭腦活動보다 優位로 認定하는 것도 바로 이렇게 旣存 思考의 틀을 깨부수는 意識轉換을 위해서다. 바로 自己自信이 眞人인데 眞人을 자기 밖의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소 등에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는 어리석음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禪은 마음의 眞正한 本性을 通察해 마음이 自己의 主人이 되도록 마음 自體를 修鍊하는 일이며 그 最終 目標는 ‘自由獲得’이다. 그래서 禪에는 聖스러운 經典도, 도그마적인 敎理도, 象徵的인 信仰形式도 없다. 그저 마음을 訓練하면 된다. 人間存在의 根源인 創造的 無意識을 知性의 抑壓으로부터 解放시키는 作業이 바로 禪이다. 眞我란 人間의 理性이 카테고리화한 有限의 世界를 뛰어넘은 形而上學的 超越의 自己다. 理性의 範圍를 超越하려면 知性에 衣해 構築된 主觀과 客觀의 構造를 버려야 한다. 마른 똥막대기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逆說은 지금까지의 知性的 分別을 破壞하는 衝擊을 준다
雲門寺 불원화상은 ‘乾屎橛’에 대해 한마디도 說明해주지 않았다.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글쎄, 그가 雲門의 ‘乾屎橛’을 모를 리 없는데도 말이다. “모른다”는 그의 對答은 禪家의 慣用語다. 말이나 글로는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不可言說의 絶對眞理를 말할 때 禪은 흔히 沈黙, 退行的 動作, ‘모른다(不識)’라고 對答했던 것이다. 印度의 선자(禪者) 오쇼 라즈니시(1931-1990)는 禪家의 ‘모른다’라는 對答을 人類 歷史上 가장 偉大한 對答이라고 激讚했다. 獨逸의 實存哲學者 하이데거(1889-1976)도 “禪佛敎의 眞如, 自性, 佛法과 같은 광역(廣域 : Gegend)에 속하는 眞理는 原則的으로 理解할 수 있는 性質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雲門禪師의 有名한 禪學 理論인 ‘운문3구법(雲門三句法)’
1. ‘하늘과 땅을 덮고도 남는다’는 함개건곤(涵蓋乾坤)은 청정법신(淸淨法身)을 뜻하고
2. ‘모든 흐름을 한 순간에 끊는다’는 절단중류(截斷衆流)는 원만 보신(報身)이고
3. ‘파도를 따라 흐름을 같이한다’는 수파축랑(隨波逐浪)은 千萬億 화신(化身)이라는 說明이다.
雲門3句는 6조 慧能의 ‘이도상인(二道相因)’과 함께 禪宗 思惟方式을 說明한 重要 禪學理論으로 일명 ‘3관설(三關說)’이라고도 한다. 깨침에 이르는 3단계를 말하는데 3관이란 初關, 중관(重關), 뇌관(牢關) 또는 공관(空關), 유관(有關), 중관(中關)을 말한다. 禪學은 이를 흔히 ‘禪門3關’ 이라 한다. 禪宗思想 능엄3관(楞嚴3關), 황룡3관(黃龍3關), 토솔3관 등이 있는데 雲門禪師의 3관이 가장 有名하다.
三句法으로는 백장3구(百丈三句), 덕산3구(德山三句), 雲門3句에 이어 후대의 수산(首山)3句, 혜천(惠泉)3句 등이 있다. 百丈懷海禪師가 提示한 3구는 初善, 中善, 후선(後善)이고, 德山3구는 그 具體的 內容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德山의 9세 문인이 上堂說法중 “德山에 3구가 있었다(德山有三句)”고 함으로써 德山에게도 3구가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雲門3句는 제자 덕산연이 정리한 것이다.
雲門이 上堂 法語에서 說破한 元來의 3句는 천중함개건곤(天中涵蓋乾坤), 목기수량(目機銖兩), 불섭세연(不涉世緣)이었다. 臨濟宗 수산성념선사의 3句는 雲門의 것과 같고 혜천선사는 雲門3句에 기래끽반(饑來喫飯), 한즉문화(寒卽問火), 곤래타수(困來打睡)를 代入시켰다. 모든 3句法이 指向하는 目標는 ‘相對’에 속하는 제상(諸相 : 衆流)을 일체 이탈[截斷], 絶對와 하나가 돼 見性, 解脫의 境地를 이루는 것이다.
묻는다 : 나무가 시들고 잎(煩惱妄想)이 떨어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답한다 : 벌거벗은 나무에 금빛 바람이다 [體露金風].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는 話頭를 낳은 雲門禪師와 한 學人의 善問答이다. 옛 雲門禪師의 ‘體露金風’은 千年을 지난 지금에도 雲門寺 食堂안에 몰아치고 있다.
이런 진나라 고물 보습 같으니라구![秦朝輘轢鉆 : 진조능력검]
묻는다 : 누구냐?
답한다 : 접니다.
묻는다 : 무엇 하려고?
답한다 : 本來의 自己를 밝히지 못해 和尙께 가르침을 청하옵니다.
(목주도명선사는 문을 열고 가르침을 청하는 雲門을 힐끔 쳐다보곤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 雲門이 이틀 동안 찾아가 계속 문을 두드렸으나 열어주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목주는 문을 열어 주었다. 목주선사는 雲門이 들어서자 대뜸 멱살을 움켜쥐고 말했다. “말해봐라, 말해봐.” 雲門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밀어젖히며 호통을 쳤다.)
“이런 진나라 고물 보습 같으니라구” [秦朝輘轢鉆]
(雲門은 여기서 크게 깨쳤다.)
俗姓이 장(張)씨로 절강성 가흥에서 出生한 15세 少年 雲門은 가흥 공왕사 지징율사에게 出家 머리를 깍았다. 지징율사를 6년동안 侍奉하면서 12부 經典을 通達하고 885년 21세 되던 해 比丘戒를 受戒했다. 資質이 聰明하고 機敏해 行者 時節부터 周圍의 視線을 모았다.
25세가 되던 해 어느날 雲門은 지징율사를 사별(辭別)하고 절강성 건덕현(당시 목주)용흥사로 목주도명선사를 찾아갔다. 목주도명선사는 南嶽-百丈-黃檗-臨濟로 이어지는 ‘임제정맥(臨濟正脈)’의 黃檗希運禪師(?-850) 제자다. 일명 목주 도종, 진존숙, 진초혜(陳草鞋)라고도 하며 숙성이 진씨인 목주선사는 짚신을 팔아 어머니를 奉養해 진초혜, 진포혜(陳蒲慧)라는 別號가 붙었다. ‘詩人이 아니거든 詩를 말하지 말라(不是詩人莫設詩)’는 등의 많은 話頭를 남긴 禪杖이기도 하다. 진존숙에게서 앞의 참문을 통해 선적 깨달음을 얻은 雲門은 목주선사를 5년동안 侍奉하면서 善의 境地를 다져나갔다.
雲門이 목주선사로부터 得法한 因緣에서 한 가지 注目해야 할 점이 있다. 즉 후일 雲門이 開倉한 雲門宗의 禪風이 馬祖-臨濟로 이어진 臨濟法脈과 닿아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목주는 黃檗希雲禪師의 首上座로 臨濟와는 師兄師弟간이다. 그러니까 雲門은 臨濟宗을 開倉한 黃檗-臨濟의 家風을 得法過程에서 이미 익힌 셈이다.
목주는 雲門의 물음에 “너 자신이 바로 부처인데 그 부처를 나한데 가르쳐달라는 너야말로 버려야 할 못 쓰는 물건, 즉 古物에 불과하다”고 힐난한다. 목주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너 자신을 알라’인 것이다. 후일 雲門이 “法身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마른 똥막대기(乾屎橛)다’라고 對答한 것도 역시 목주의 가르침과 같은 脈絡이다.
‘능력검(輘轢鉆)’은 어록에 따라서는 탁력찬(탁轢鑽), 탁락찬(鐸落鑽)이라고도 하는데 진나라 때 성을 쌓는데 사용한 道具로 一種의 軍需品이다. 마치 쟁기처럼 오래 사용해 다 닳으면 城 쌓는 道具로는 壽命을 다하고 엿장수나 가져가는 古鐵이 된다. 그러니까 진존숙은 부처가 되는 길을 가르쳐 달라는 운문을 古物이 된 輘轢鉆처럼 얼빠진, 쓸모없는 人間 取扱을 한 것이다.
禪은 自己 省察이다. 省察의 포인트는 內面的 자증(自証)이다.
목주는 雲門의 나이 30이 되던 해 당시‘남설봉북조주(南雪峰北趙州)’라는 말이 膾炙되면서 南方 禪林의 最高峰으로 名聲을 떨치던 복건성 雪峰山의 雪峰義存禪師(822-908)를 찾아가보라고 일렀다. 雲門은 바랑을 챙겨 영중(嶺中 : 雪峰山)으로 내려가 雪峰禪師를 참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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