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참부처(眞佛)
法海又白 大師今去留付何法 今後代人如何見佛
법해가 다시금 여쭈었다.
“대사께서 이제 가시면 어떤 법을 부촉하여 뒷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부처님을 보게 하시려는지요?”
六祖言 汝聽 後代迷人 但識眾生 即能見佛 若不識眾生覓佛 萬劫不得見也 吾今教汝 識眾生見佛 更留見真佛解脫頌 迷即不見佛 悟者即見
대사께서 이르시길,
“너희는 들으라. 뒷날 미혹한 사람이 단지 중생만 알면 곧 부처님을 능히 볼 것이니라. 중생을 알지 못하고 부처를 찾을진대, 만겁이 지나도록 보지 못할 것이로다. 너희들이 중생을 알아 부처를 보게끔 이제 너희에게 가르침을 줄 터인즉, <참부처를 보는 해탈송>을 남길 것이로다. 미혹하면 곧 부처를 보지 못하고, 깨치면 곧 보느니라.”
法海願聞 代代流傳 世世不絕
법해가 듣기를 원하였다.
“대대로 유전하며, 세세로 끊기지 않을 것입니다.”
六祖言 汝聽 吾汝與說 後代世人 若欲覓佛 但識自心眾生 即能識佛 即緣有眾 離眾生無佛心
육조께서 말씀하시길,
“너희는 들으라, 너희를 위해 내 말해 주리다. 뒷날 세상 사람들이 부처를 찾고자 하면, 단지 자기 마음의 중생을 알면 부처를 알 게 되나니, 이는 중생이 있음을 인연한 까닭이니, 중생을 떠나면 부처의 마음도 없느니라.
迷即佛眾生 悟即眾生佛
愚癡佛眾生 智惠眾生佛
心險佛眾生 平等眾生佛
一生心若險 佛在眾生中
一念悟若平 即眾生自佛
我心自有佛 自佛是真佛
自若無佛心 向何處求佛
미혹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깨치면 부처가 중생이며
어리석으면 부처가 중생이요, 지혜로우면 중생이 부처로다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평등하면 중생이 부처이리니
한평생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 가운데 있고
한생각 깨쳐 평등하면 중생이 부처이니라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으니 나의 부처가 곧 참부처니
나에게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 어디에서 부처를 구하리오.”
大師言 汝等門人好住 吾留一頌 名自性真佛解脫頌 後代迷聞此頌意 即見自心自性真佛 與汝此頌 吾共汝別
대사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문인들은 즐거이 지내도록 하라. 또한 너희에게 <자성의 참부처 해탈송>이라는 게송을 남기리라. 뒷날 미혹한 사람이 이 게송의 뜻을 들으면 곧 자기 마음, 자기 성품의 참부처를 보게 될 것이로다. 이 게송을 너희에게 남기고 이별할 것이니라.”
頌曰
게송에 이르길,
真如淨性是真佛 邪見三毒是真魔
진여의 깨끗한 성품이 참 부처요
삿된 견해의 삼독이 참 마구니로다
邪見之人魔在舍 正見之人佛則過
삿된 견해의 사람은 마구니의 집에 살고
바른 견해의 사람은 부처가 곧 지나가느니라
性中邪見三毒生 即是魔王來住舍
성품 가운데 삿된 견해는 삼독이 펼쳐짐이요
이는 곧 마왕이 집에 살고
正見自除三毒心 魔變成佛真無假
바른 견해는 스스로 삼독의 마음을 없애나니
마구니가 변해서 부처가 되나니 참되어 거짓이 없느니라
化身報身及淨身 三身元本是一身
화신과 보신과 정신이여
삼신이 원래 한 몸이로다
若向身中覓自見 即是成佛菩提因
몸 가운데서 스스로 봄을 찾는다면
곧 부처를 이루는 보리의 인이니
本從化身生淨性 淨性常在化身中
본래 화신을 좇아 깨끗한 성품이 나고
깨끗한 성품은 항상 화신 가운데 있느니라
性使化身行正道 當來圓滿眞無窮
성품은 화신으로 하여금 바른 길를 걷게 하고
장차 원만하여 참됨이 무궁하여라
婬性本身清淨因 除婬卽無淨性身
음란한 성품이 본래 몸의 청정한 인이니
음란함을 없애고는 청정한 성품의 몸도 없나니
性中但自離五欲 見性剎那即是真
성품 가운데 다만 스스로 오욕을 여의면
찰라에 성품을 보느니 곧 참이로다
今生若悟頓教門 悟即眼前見世尊
금생에 돈교의 법문을 깨치면
깨치는 곧 눈앞에 부처를 보리니
若欲修行云覓佛 不知何處欲求真
수행해서 부처를 찾는다 하면서
어디에서 참됨을 구할지 모르는구나
若能身中自有真 有真即是成佛因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 있으면
참됨 있음이 곧 부처를 이루는 인이니
自不求真外覓佛 去覓惣是大癡人
스스로 참됨을 구하지 않고 밖으로 부처를 찾으면
가서 찾음이 모두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頓教法門今已留 救度世人須自修
돈교의 법문을 이제 남겼으니
세상 사람을 구하여 제도함은 모름지기 스스로 닦아야 하느니
今報世間學道者 不依此是大悠悠
이제 세간에서 공부하는 이들에게 알리나니
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크게 멀어지리라
◎ 게송 가운데 ‘覓自見’을 ‘찾아서 스스로 본다’고 하면 견성으로 해석될 염려가 있으므로, ‘스스로 봄을 찾는다’ 고 번역하였다. ‘若向身中覓自見 即是成佛菩提因’이라고 하였는 바, ‘성중자견(性中自見)’은 견성이며 ‘견성이 곧 성불’임은 <단경>의 근본사상으로서 성불하는 씨앗[成佛因)이 될 수 없다.
蕭湛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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