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랑에게 답하는 편지, 여섯 번째
온 편지를 자세히 읽기를 몇 번이나 보고서 흡족히 무쇠와 바위처럼 변함없는 마음을 갖추었으며, 결정한 뜻을 세워서 허둥지둥하지 아니함을 보았노라.
다만 이와 같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끝까지 이른다면, 또한 능히 염라대왕과 더불어 서로 겨루리니, 다시 이마에 있는 눈[頂門眼]을 활짝 열고 금강왕보검을 쥐고서 비로 정상에 앉는다고 말하지 말라.
내가 일찍이 세간에 살면서 도를 배우는 벗에게 말하기를 “요즘 도를 배우는 선비들이 속효(速效)만을 구하고 그것이 그릇 앎인 줄 알지 못한다”고 하니, 도리어 그들이 말하기를 “일 없이 반연들을 덜어버리고 고요히 앉아서 그 바탕을 궁구하며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몇 권의 경전을 보고 몇 번의 소리로 부처님을 염하며, 부처님 앞에 허다히 몇 번의 절로써 예를 하여 평생에 지은 바의 죄와 허물을 참회해서 염라대왕의 손 가운데 철봉을 면하기를 바라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고 하나니, 이것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하지만, 요즘 도가(道家)의 사람들이 온전히 참됨이 없는 생각이나 마음으로써 해의 정기와 달빛을 상상하며 노을을 머금고 기운을 삼키더라도 오히려 능히 그 모습을 변하지 않게 하여 세간에 머물러서 추위와 더위의 핍박을 당하지 않음이니, 하물며 이 마음과 이 생각을 되돌려 온전히 반야 가운데에 �이겠는가?
앞의 성인들께서 아주 분명히 말씀하시되 “비유하자면 파리란 놈[太末蟲]이 곳곳에 능히 붙을 수는 있지만 오직 불꽃 위에는 붙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중생도 역시 그러하여 곳곳을 능히 반연하되 오직 반야의 위에는 능히 반연하지 못한다”라고 하시니, 진실로 항상 생각함에 처음의 그 마음에서 물러나지 말고 본인의 마음과 의식이 세간의 여러 가지 일들을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와서는 반야의 위에 이르게 하여 두면, 비록 금생에 한번 겨루어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목숨을 마침에 임할 때에 결정코 나쁜 업의 이끌리는 바가 되어 나쁜 길에 흘러 떨어지지 아니하고, 오는 생에 머리를 밀어냄에 나의 금생의 원하는 힘[願力]을 따라서 결정코 반야 가운데 두어 번듯이 받아씀을 이루리니,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을 것이다.
중생계 가운데의 일이란, 배우지 아니하여도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익혀왔기에 잘 익었으며, 길도 또한 익어져서 자연히 취하기만 하면 마음대로 그 근원을 만남이니, 모름지기 버려두라. 출세간의 반야를 배우는 마음은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오므로 등지고 어겼음이라, 잠깐 선지식의 말씀하심을 듣고서는 자연히 이해할 수 없음이니, 모름지기 결정한 뜻을 세워, 저와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서로 다투어서 결정코 (반야와 세간의) 두 가지를 세우지 말지어다. 이곳에 만약 듦을 깊게 할 수 있다면, 저곳은 애써서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와 외도가 자연히 숨어 항복할 것이다.
설은 곳은 놓아서 하여금 익게 하고, 익은 곳일랑 놓아서 하여금 설게 함이 바로 이를 위함이니, 평상시 공부를 짓는 곳에 칼자루를 잡아 (놓아버리지 않으면) 점점 힘이 덜림을 깨달을 때가 문득 힘을 얻는 곳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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