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불교/서장(書狀)

이참정에게 답하는 편지, 두 번째

slowdream 2007. 10. 10. 14:33
 

이참정에게 답하는 편지, 두 번째


편지를 받은 뒤에 더욱더 우러러보노라. 알지 못커라,  날마다 연을 따라 놓아 비워서 뜻대로 자유자재하는가? 사위의[행주좌와] 가운데 번뇌가 더 수승하지는 않는가? 자고 깸의 두 가지 경계에 한결 같은가? 옛을 인하는 곳에 일부러 짓지는 않는가? 생사심이 상속하지는 않는가? 다만 범부의 정을 다할지언정 달리 성인의 견해란 없음이니라.

 

그대가 한번 웃음에 활연히 바른 눈을 열고는 (세간진로의) 소식을 몰록 잊었으니, 힘을 얻고 힘을 얻지 못함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심에 차갑고 따뜻함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느니라. 그러나 일용 사이에 마땅히 황면노자의 말씀하신 바를 의지하여 “그 (번뇌의) 바른 성품을 끊고, 그 돕는 인을 제거하며, 그 나타난 업을 어길지니” 이것이 일을 마친 사람의 방편이 없는 가운데 참된 방편이며, 닦아서 증득함이 없는 가운데에 참으로 닦아 증득함이며, 취하고 버림이 없는 가운데에 참으로 취하고 버림이니라.

 

고덕이 이르되 “껍질은 벗겨 떨어져서 다함이라도 오직 참된 전단은 남는다”라고 하며, 또 “전단의 번성한 가지가 벗겨 떨어져서 다함이라도 오직 참된 전단은 남는다”라고 하니, 바로 이것이 나타난 업을 어기고, 돕는 인을 제거하며, 번뇌의 바른 성품을 끊은 극치이다. 그대는 시험삼아 생각해 봐라.

 

이와 같은 이야기도 일을 마친 사람의 분상에는 크게 한 자루의 섣달 부채와 흡사하거니와, 아마 남쪽 땅에는 추위와 더위가 한결 같지 않으니, 또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번 웃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