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재에게 답하는 편지
편지에 보인 것을 낱낱이 다 갖추어 알았노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마음이 있는 것은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시니, 이 마음은 세간의 번뇌인 망상심이 아니라, 위없는 큰 깨달음을 발한 마음을 말함이니, 만약 이 마음이 있다면 성불하지 못할 사람이 없으리라. 사대부가 도를 배우되 허다히 스스로 장애와 어려움을 지음은 결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시길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가 되는지라, 온갖 모든 착한 법을 길러내며, 의심의 그물을 끊어 없애고 애욕의 물결에서 벗어나 열반의 위없는 길을 열어보인다”고 하시며, 또 이르시길 “믿음은 능히 지혜의 공덕을 더욱 자라나게 하며, 믿음은 능히 여래의 땅에 이르게 한다”고 하시니라......(중략)
요즘 도를 배우는 선비가 가끔가끔 느리게 해야 할 곳은 도리어 급하게 하고, 급하게 해야 할 곳은 도리어 느리게 하나니, 방거사가 이르되 “하루아침에 뱀이 삼베 잠방이 속으로 들어가면 시험삼아 종사에게 이 무슨 시절인고? 하며 묻는다”고 하시니, 어제의 일도 오늘에 오히려 기억할 수 없는데 하물며 딴 생애의 일을 어찌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하겠는가? 결정코 금생에 분발해 하여금 사무쳐서 부처를 의심하지 않고자 할진댄, 마땅히 결정된 믿음을 갖추어서 생각생각에 머리에 불붙은 것을 구원함과 같이 할지니, 이와 같이 지어 가져가서 분별해 사무치지 못한 때라야 바야흐로 비로소 근기가 둔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니와, 만약 그 자리에서 문득 스스로 말하되 “나는 근기가 둔하여 능히 금생에 분발해도 사무칠 수 없음이라, 장차 부처님의 종자를 심어 인연을 맺겠다”고 한다면, 곧 이는 한걸음도 행하지 않고 이르고자 함이니 옳은 곳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다만 깊은 곳은 놓아서 하여금 얕게 하고 얕은 곳은 놓아서 하여금 깊게 하며, 설은 곳은 놓아서 하여금 익게 하고 익은 곳은 놓아서 하여금 설게 할지어다. 번잡하고 수고로운 일들을 생각한다고 가까스로 깨달았을 때에 애써 물리쳐 보내려고 하지 말고,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곳에 나아가 부담없이 화두를 들어 굴린다면 무한히 힘을 덜고 또한 무한히 힘을 얻으리니, 청컨대 그대는 다만 이와 같이 다잡아가서 마음을 두어 깨닫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면 홀연히 스스로 깨달아가리라.
참정공이 아마 날이면 날마다 서로 모였으리니, 바둠 둠을 제외하고 도리어 일찍이 이 같은 일들을 더불어 이야기했는가, 말았는가? 만약 다만 바둑만 두고 일찍이 이 같은 일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다만 흑과 백을 나누지 않은 곳에 나아가서 바둑판을 흔들어 바둑돌을 흩어버리고 도리어 그에게 묻되 “어느 한 점을 찾아 취할고?” 하여서, 만약 찾아도 찾지 못한다면 참으로 둔한 사람이리라. 잠시 이 일일랑 그냥 두노라!
'***중국선불교 > 서장(書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퉁판에게 답하는 편지 (0) | 2007.10.17 |
---|---|
허사리에게 답하는 편지 (0) | 2007.10.17 |
진소경에게 답하는 두 번째 편지 (0) | 2007.10.16 |
부추밀에게 답하는 편지, 첫번째 (0) | 2007.10.12 |
이참정에게 답하는 편지, 두 번째 (0) | 2007.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