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불교/서장(書狀)

유퉁판에게 답하는 편지

slowdream 2007. 10. 17. 14:21
 

유퉁판에게 답하는 편지


...(중략)...옛적에 바수반두가 항상 한끼만 먹고 눕지도 않으며, 여섯때로 예불하며, 청정하여 욕심이 없어서 대중들의 귀의할 바가 되더니, 이십조인 사야다가 장차 그를 제도하고자 하여 그의 문도에게 물어 이르되 “이 두루 두타를 행하여 능히 깨끗한 행[梵行]을 닦음이 가히 불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하니, 그의 문도가 이르길 “내 스승의 정진이 이와 같거늘 무엇 때문에 할 수 없겠습니까?”하였다. 사야다가 이르길 “네 스승은 도와 더불어 멀다. 설사 고행하기를 티끌처럼 많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모두 다 허망의 근본이니라.”고 하니, 그의 문도가 그 분노를 이기지 못해 모두 불쾌한 안색을 드러내고 소리를 높여서 사야다에게 이르되 “존자는 무슨 덕행을 쌓았기에 우리 스승을 비난하는가?”하니, 사야다가 이르되 “나는 도를 구하지 않되 그렇다고 전도되지도 않으며, 나는 예불하지 않되 그렇다고 업신여기지도 않으며, 나는 늘 앉아 있지 않되 그렇다고 게으르지도 않으며, 나는 한끼만 먹지 않되 그렇다고 잡식하지도 않으며, 나는 만족함을 알지 못하되 그렇다고 탐욕하지도 않음이라. 마음으로 바라는 바가 없음이 이름하여 도라고 한다”고 하니, 바수반두가 듣고서는 무루지를 깨달았으니, 이른 바 “먼저 정(定)으로써 움직이게 하고 뒤에 지혜로써 뽑아낸다”고 하였다.


엉터리 장로들이 그대로 하여금 “고요히 앉아서 부처 되기를 기다려라”고 하니, 어찌 허망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또 말하기를 “고요한 곳에는 잃음이 없고, 시끄러운 곳에는 잃음이 있다”고 하니, 어찌 세간의 모습을 무너뜨리고 참된 모습[實相]을 구함이 아니겠는가? 만약 이와 같이 수행한다면, 어떻게 나융의 이르신 바 “지금 마음 없는 곳을 말한 것이 마음 있음과 더불어 다르지 않다”고 함에 계합하리오.


청컨대 그대는 이에 마땅히 자세하게 생각하여 살펴봐라! 바수반두도 처음에는 또한 장차 이르되 “오래도록 앉아서 눕지 않으면 성불할 수 있다”고 하더니, 잠깐 사야다의 점파함을 입고서 문득 말 아래에 돌아갈 줄 알아서 무루지를 깨달았으니, 진실로 훌륭한 말이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달리는 것과 같음이니라. 중생이 미쳐서 날뜀이 바로 이 병이거늘 부처님께서 적정바라밀의 약으로써 치료하시니, 병이 가고 약이 남으면 그 병이 더욱 심한지라. 하나를 잡으면 하나를 놓으니 어느 때에 끝마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