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불교/서장(書狀)

여사인에게 답하는 편지

slowdream 2007. 10. 25. 14:22
 

여사인에게 답하는 편지



받아보니 “평상시에 공부 지음을 잠시도 중지하지 않는다”하니, 공부가 익은즉 화두를 쳐서 깨뜨릴 것이다. 이른바, 공부란 세간의 잡다한 일을 헤아리는 마음을 ‘마른 똥막대기’ 위에 되돌려 두어서 정식(情識)으로 하여금 행하지 못하게 함이 마치 흙. 나무. 인형과 같음이라. 분명치 않아서 붙잡을 만한 그 근거도 없음을 깨달을 때가 바로 좋은 소식이니, 공에 떨어질까 염려하지 말며 또한 앞을 생각하고 뒤를 헤아려서 어느 때 깨달을 수 있을꼬? 하지 말지어다. 만약 이 마음을 둔다면 삿된 길에 떨어지리라.


부처님께서 이르시길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헤아릴 바가 아니다”라고 하시니, 헤아리면 곧 재화가 생기니라. 사량분별로 능히 헤아리지 못함을 아는 자는 누구인고? 다만 이 한낱 여거인이니, 다시는 머리를 돌리고 뇌를 굴리지 말지어다. 이 앞에 융례에게 대답한 편지에서 선병(禪病)을 다 말했느니라. 모든 부처와 모든 조사가 아울러 한 법도 사람에게 주신 것이 없고, 다만 본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믿고 스스로 수긍하며,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닫게 함을 요할 따름이니, 만약 다른 사람의 입으로 말함을 취할진대 사람을 그르칠까 염려하노라.


이 일은 결정코 언설상을 여의었으며, 심연상을 여의었으며, 문자상을 여의었나니, 능히모든 상을 여읨을 아는 자도 역시 다만 여거인이요, 저 죽은 뒤에 단멸하고 단멸하지 않음을 의심하는 것도 역시 다만 여거인이며, 바로 꺾어 가리켜 보임을 구하는 자도 역시 다만 여거인이니, 다만 이 여거인이 능히 갖가지 기특한 변화를 지으며, 능히 모든 부처와 모든 조사로 더불어 함께 적멸한 대혜탈광명해 가운데 놀아서 세간과 출세간의 일을 성취하건만 다만 여거인이 믿지 못할 따름이라. 만약 믿을진댄 청컨대 이 주각을 의지하여 이 삼매에 들지어다. 홀연히 삼매로부터 일어나서 어머니가 낳아준 콧구멍을 쳐서 깨뜨린다면, 문득 머리까지 사무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