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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죽음] Ⅱ-9 이상한 나라, 한국의 지식사회

slowdream 2008. 1. 13. 20:44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Ⅱ-9 이상한 나라, 한국의 지식사회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특별취재팀은 ‘한국인’이면서도 결코 전통적 의미의 한국인이 될 수 없는 국외자 박노자 노르웨이 국립 오슬로대 교수를 통해 한국 지식사회의 지식인의 문제를 들어보았다. 박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21일 성균관대 동아시아연구소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박교수는 “대상화해서 보기 쉽지는 않지만 외부(노르웨이)에서 살고, 틈입한 자로서의 특수한 입장에서 말하겠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1시간30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교수는 지식사회에 대한 국가·자본의 통제 문제를 강조했다. 박교수의 문제 의식은 “지금도 수많은 전태일들이 있는데 지식인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런데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박교수는 인터뷰 직후 “오랜만에 자기 검열 없이 한 인터뷰”라고 말했다. 연구년을 맞아 올 3월 한국에 들어온 박교수는 지난 18일 노르웨이로 돌아갔다.


-지식인이란 무엇입니까.


자본주의 사회 범주에서 이야기하자면 지식인이라기보다는 지식 노동자죠. 자본과 국가에 필요한 전문 지식을 자본과 국가에 고용되어서 제공해주는 특수 노동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본과 국가 존재의 당연성을 대중한테 설명하고, 이 질서가 유익한 질서이고 합리적 질서라는 담론을 사회에 유포시킴으로써 기본 질서를 합리화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지요. 미국 민주주의의 경우 펜타곤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요. 정확한 의미에서는 민주주의라 부를 수 없습니다. 노엄 촘스키 말대로라면 민주당, 공화당도 ‘대자본 당’입니다. 야당이 없어요. 두 여당 사이에 전쟁이 있는 거지요. 민주사회라 부르기에 수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지식인이나 정치학 가르치는 교수들 중 열에 여덟아홉은 민주사회라고 부릅니다. 노엄 촘스키나 하워드 진 같은 사람은 극소수예요. 반대로 지식인을 진보적 의미에서 보면, 이 사회의 생산 구조, 소유 구조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이 사회의 구조가 이 사회의 생산력 발전 수준에 알맞게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또 인성을 황폐화시키는 지금과 같은 사회 정치적인 구조를 어떻게 좀더 환경, 인간 친화적으로 바꿀 수 있는가, 폐단을 극복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사람들을 지식인이라고 봐야죠. (이런 지식인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다수가 될 수가 없죠.”


-해방 이후 지식사회를 보면 지식인들은 권력에 저항하거나 아니면 추종하거나 하는 두가지 선택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교수라는 아주 특별한 사회 위치를 가진 사람은 1960, 70년대 와서 권력자들로부터 러브공세를 받았죠.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해서 고속 압축 성장을 지향할 때 브레인이 필요했습니다. 정통성 없는 권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지식인이 필요했어요. 평가 교수단을 만들어서 고속 성장 드라이브에 필요한 과제를 맡겼고, 교수들의 권위를 이용해서 고속 성장의 어두운 면을 정당화시켰습니다. (대표적 인물로) 철학자 박종홍이 있었고, 이선근이란 어용 사학자의 국난극복사가 있었고, 대단히 많았습니다.


실제로는 유신 시절을 보면 반정부 투쟁 지식인 중에서는 대학교수가 없었어요. 함석헌 선생, 송건호 선생이 계셨지만 교수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대학교수의 경우에는 강만길, 백낙청 선생 등 해직당하신 분들이 계십니다만, 이분들은 민중운동에 필요한 이론을 제공한 부분은 있지만 운동과 직접적 관계를 맺었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 권력자들이 대학교수 집단을 대단히 온건화시켰어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는 진보적 교수 부류가 소수지만 생겨났는데 역시 자본과 국가가 강력히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불온할 것 같은 사람은 교수로 뽑지 않는 게 지금 매우 쉽습니다.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순응적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대학 재단들이 알아서 조치 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게 아닌가 싶어요. 또 한 가지는 지금 같으면 시간 강사 몇 년 않고는 교수 할 수 없는 분위기인데, 시간 강사 하는 것이 생계 해결 못할 직업이에요. 박사 과정 들어가는 사람들 보면 가난뱅이 출신들 별로 없어요. 십중팔구 중산층 그 이상 출신인데, 그들은 대한민국에 대해 불만조차 없지요.


-대선 정국이라서 그런지 권력과 지식인 관계, 권력을 좇는 지식인들의 행태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 문인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문열·황석영의 작품 많이 번역했어요. 저로서는 가까운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 ‘무기의 그늘’은 제국주의 전쟁의 실체를 예술적인 수단으로 보여줌으로써 비판적 사실주의의 백미를 우리한테 보여준, 문학사에서는 기념비적 작품이죠. 문제는 뭐냐면 70, 80, 90년대를 지나 중도우파가 등장하면서 그분들이 싸웠던 독재는 없어지고, 지금 새로운 독재 권력이 생겼습니다. 그게 자본의 독재죠. 중도우파가 하수인으로 섬기고 있는 재벌의 독재입니다. 기업에 예속되어 있고 노예화되어 있는 사회로 지금 접어든 것인데, 70~80년대에 등단하시고, 여태까지 문단을 주도해오신 분들은 이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한 것 같아요. 여전히 이 사회는 민주화 단계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중도우파의 영향력을 벗어나야 황석영 선생님도 사회에 유의미한 발언을 하실 수 있는데, 지금 황석영 선생의 견해는 그렇지 못하시는 게 아닌가, 매우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지난번 황석영 선생이 저를 아주 놀라게 만든 것은 손학규를 지지하면 어떨까라는 뉘앙스를 풍기신 겁니다. 뭐랄까 노무현이라는 자본의 하수인 대신에 훨씬 더 자본에 친화적인, 또 하나의 하수인을 받들자는 이야기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전향한 경험 있는, 자본에 백기투항한 사람을 우리가 진보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이신데, 그만큼 지금 사회의 급선무가 무엇인지 황석영 선생이 파악 못하신다고 봐야 합니다. 이 분들의 영향력이 문단에서 대단히 강하기 때문에 문단의 급진화,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불리한 계층, 피해 계층의 투쟁을 막는, 지식의 힘으로 작동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시민운동과 지식인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시민사회 대표적 지식인들도 정치 권력과 이래저래 연관을 맺고 있는데요.


한국 시민사회의 큰 문제는 극단적으로 위계 서열화되어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참여연대나 경실련 특히 경실련을 주도하는 층은 명망가층이고요. 말 그대로 상당한 권위와 권력을 갖고 있지요. 그런데 밑으로 갈수록 환경이 열악해요. 참여연대 밑에 분들이 간사급 활동가들이 노조 만들고 싶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명망가들이나 지식권력 소유자들은 시민운동을 발판삼아 보수 정계에 영입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시민운동 단체들이 정부에 이용되고 한국의 지배자들에게 이용되고, 하류층의 급진화를 막아주는 완충지대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 거죠. 특정 시민 단체의 고급 활동가가 정부에 영입될 경우, 그 단체로서는 정부에 대해 해야 할말, 현정부를 범죄정부라고 할 수 있어야죠. 그런데 그렇게 말하기는 힘듭니다.”


-지식인에는 국책연구원에 소속된 ‘정책 지식인’들도 있습니다. 국가에 소속되어 있어서 학자·연구자로서의 소신을 지키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뉴스를 보면 교실 붕괴든 학교폭력이든 비정규직 노동 문제든 사회현상에 대한 학자의 의견을 묻고 싶다고 할 때 늘 찾아가는 사람이 교수 혹은 국책연구원이지요. 거기에는 학교에서 취직 못한 고급 전문가들이 다행히 취직해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책연구원은 아무래도 전제 조건상 독립적이기 대단히 어렵지 않습니까. 한국개발연구원이라든가 경제 관련 연구원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바른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데, 국책연구원의 한계성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중들한테 국책연구원의 말이 거의 진리로 비쳐진다는 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인은 별 권위가 없어요. 종교인도 자기 신도 말고는 권위가 없지요. 국책연구원에 대해서는, 이 분야 전문가라는 확고한 의식이 대중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어요. FTA 같은 망국적 실책을 지지한다든가, 농업 분야 손실 덜 본다고 말하면서 FTA 찬성 담론을 주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어요. 권위도 별로 없는 사회에서 나름의 권위를 갖고 있고, 그 권위가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용되는 것이죠.”


-대학이 비정규직 강사를 착취한다고 하셨는데, 이 문제는 학문 후속세대 양성 문제와도 관계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강남의 명문고나 특수목적고를 나와 명문대에 진학한 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지식인이 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피지배자가 지식 권력, 지식이라는 영역에 어느 정도 진입할 수 있고, 진입해서는 지배 관계를 청산하는 쪽으로 사회를 평등화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런 자본주의라면 덜 나쁜 자본주의예요. 노르웨이마저도 피지배층으로서 지식의 영역에 들어가는 데 나름의 부담이 있는 겁니다. 한국 사회는 (말할 것도 없이)가난뱅이에 대한 우민화와 지식 영역으로 가난뱅이를 들여보내지 않는 제한이 가면 갈수록 많아지고 있어요. 우리 지배자들이 선진화라는 단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지금 후진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선진화는 가난뱅이도 지식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데, 한국은 여태까지 있었던 가능성마저 봉쇄되어 가는 거죠. 출세의 좋은 발판이 되는 명문대에 들어간다는 그 자체는 일부 사회 계층에 한정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는 명문대 학생 중에 생산직 노동자 자녀 비율이 10%를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이 사회 교수들 중에는 60, 70%가 유학파들이고, 그 중에서도 압도적 다수는 도미 유학파입니다. 유학파에 속한다는 게 주류를 의미합니다. 유학파에 속하자면 유학이라는 고비용의 문화 자본축적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국가가 거의 지원하지 않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피지배 계층 출신자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한국 사회는 명문대 입학, 다음에 유학, 귀국 뒤에는 시간강사라는 시련기의 여러 필터 장치를 둬서 가난뱅이가 한국 사회 지식 담론을 주도하는 교수층에 합류하지 못하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선진화는 단순히 꿈이 아니고 악질적 기만이죠.”


-많은 지식인들이 학술진흥재단(학진)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학진은 우선 무엇이 학술적인가, 또 어떤 게 학술지이고 등재지인가 즉 학술성을 규정하는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진이 어떤 잡지만 학술지라고 규정하게 됨으로써 수많은 진보 계간지나 잡지가 경제 위기를 느끼는 거죠. 교수들은 학술지에 기고해야 점수가 올라가는데 학술지로 인정 않는 학술지에 기고하면 허사가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녹색평론 같은 매체는 학술지에 등재 안 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면 거기 기고하는 교수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지죠. 학교의 진보적 담론을 대중화할 수 있는 그런 매체의 힘을 약화시키는 효과가 발생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올해는 민주화 2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학계에서는 87년체제에 대해 많은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화 20주년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민주화라는 기만적 주술부터 풀어놨으면 좋겠습니다. 민주화된 적 없잖아요. 민주화라는 게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기만 중에 가장 나쁜 기만 아닌가 싶습니다. 제도적 정당 경쟁이 도입된 건 사실이고, 군사 집단 물러나서 숨겨져 있는 자본 독재 체제로 접어든 것은 사실입니다만, 민주화는 자기 기만에 불과한 것이죠. 우리는 경제 부문에서는 기초적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유럽 대다수 기업의 운영위원회를 보면, 노동자들이 대표 3분의 1을 차지하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경영 참여가 있습니까. 가장 절박하고 가장 필요한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아요. 한국 대학에 민주주의가 있습니까. 두발 규제 있는 학교에서는 민주주의 ‘민’자도 맞지 않아요.


우리가 ‘민주주의 없는 민주화’예요. 한국 지식인들이 이 사실에 눈을 떠가지고, 진실된 의미의 민주화 투쟁 다시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진실된 의미의 민주화 투쟁은 거대 기업의 사회 지배에 대한 투쟁이기도 하고, 일자리 민주주의,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투쟁이기도 하고, 양심수 석방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고, 비정규 노동의 정규화·조직화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투쟁에 지식인이 앞서야 하고, 그걸 못하면 부끄러워야 하는데 우리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게 유교에서는 아주 큰 덕목인데, 그게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지식인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1970년에 전태일의 분신 자살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 사건이 한국 사회 수많은 지식인들을 일깨워줬습니다. 한국 노동 운동을 일깨운 데 있어서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수많은 지식인들이 말 그대로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이 되는 어떤 결정적 전환점이 된 거죠. 지금도 해마다 수많은 전태일들이 분신 자살하기도 하고 투쟁하다가 죽기도 합니다. 한국 감옥들이 양심수로 아직 붐비고 있어요.


여호와의 증인이 많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제외하고도, 업무방해죄니 집시법 위반이니,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이니 같은, 노동자들의 약간의 자기 방어 행위도 가혹하게 폭력으로 간주되는 겁니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처럼 비판이 명예훼손이 된, 재벌이 만든 양심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감옥이 양심수로 붐비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 교수들 중에 양심수 석방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양심수를 계속 생산하는 사회가 도대체 어떤 사회인가라는 것에 대해 고심해야 하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교수를 할 생각은 없습니까.


“그랬으면 제일 편했을 겁니다. 한국에서 교수 못하는 게 자리가 안 나는 이유도 있지만, 설사 자리가 나도 한국 교수로 봉직한다는 것은 몇 가지 한계성이 있다고 봐야죠. 예컨대 사립대의 경우, 사회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도, 대학 재단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습니다. 국립대 교수라 하더라도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죠. 공무원이고 공복인데, 징병제 문제라든가, 병역거부 문제라든가 대한민국 공무원의 몸으로 그 말을 진실되게 할 수 있을까….”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 구도를 ‘중도 우파의 종말’ ‘신자유주의 심판’이라고 규정하셨는데요.


“중도 우파(노무현 정권)의 종말이라고 봐야지요. 노무현 정권의 가장 독한 정책은 이라크 파병이었어요. 미국의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군사 모험에 한국의 중도우파가 이용될 정도밖에 안 된다면 이걸 중도우파, 중도라고 부를 만한 근거가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할 수 있어요. 극우와 중도우파를 구별하는 여러 기준 중 하나는 대외 정책에 있어서 대미 태도인데, 바뀌어가는 세계 질서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이라도 잡을 수 있는가는 중도우파의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균형 잡기는커녕 숭미주의를 극대화시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파병해서 사람(오종수 중위)까지 죽었잖아요.


파병이 인간의 희생을 가져왔다면 이건 범죄죠. 김선일씨 때도 범죄라고 규정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범죄를 저지른 뒤에는 중도우파에서 중도 두 글자를 빼버려야 합니다. 그냥 우파인데, 문제는 이들이 한나라당과는 경쟁이 안 되는 우파라는 거예요. 유시민씨의 경우, 처음 전투병 파병 대신에 비전투 요원의 파병을 주장했다가 청와대 분위기가 파병 쪽으로 기우니까 ‘파병의 불가피성’을 역설했잖아요.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에서 국제연대활동을 했던 이 사람은, ‘보스’인 노대통령이 제국주의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하니 갑자기 꼬리를 내려 거기에다 무비판적으로 따랐고, 결국 그렇게 해서 장관도 되었잖아요. 이게 권력에 들어간 지식인의 대표적 모습이라면 한국 지식인이 망한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 박노자는?


박노자(朴露子) 교수(34)의 정체성은 세 나라에 걸쳐 있다. 태어난 곳은 러시아, 국적은 한국, 직장은 노르웨이. 사춘기 소년 시절이던 구소련 말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본 북한 영화 ‘춘향전’에 흥미를 느끼면서 맺은 한국과의 인연은 학문적 관심으로 이어졌다. 모스크바 국립대에서 고려인 3세 지도교수인 미하일 박 밑에서 ‘5세기 말부터 562년까지의 가야의 여러 초기 국가의 역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한국 여성과 결혼해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등 논쟁적인 저술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그의 가차없는 한국사회 모순 파헤치기는 한국에 대한 애정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글 김종목·손제민·장관순기자〉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