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행복한 눈물

slowdream 2008. 2. 10. 03:12
 

행복한 눈물



군에서 갓 제대하고 복학하기까지 반 년 정도 한껏 게으름을 피우던 시절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간지럽게 내려앉는 가을 초입의 고운 볕을 만끽하며, 수유리 4.19 묘지로 걸음을 옮겼다. 공원 입구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맞은편 거리에 자그마한 헌책방이 눈에 띄었다. 사람 서넛이면 족할 정도로 비좁은 책방에서 잔뜩 쌓인 다양한 모양의 책들을 눈에 담는데, 한 문고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현대미술의 상실>. 톰 울프. 책장을 넘기자 한 글귀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제는 보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보는 것이다.”추상표현주의, 다다이즘, 팝 아트, 미니멀리즘 등으로 전개된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강한 비판이다. 이는 곧 미술의 ‘보편적 감성’이 상실되었다는 선언과 다름 아니다. 이제 대중들은 미술사와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철학, 미학 등의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감상이라는 문을 통과할 수가 없다. 눈앞에 작품이 아닌 하나의 이론서를 대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나 할까. 소박한 놀이에 비해 지나치게 까다롭고 짓궂은 규칙을 정해서, 정작 놀이에는 몰두할 수 없게 만드는 '포스트모던(postmodern)'한 유희라고나 할까.

 

리히텐슈타인 / 행복한 눈물


최근 삼성이라는 재벌의 비자금 사건으로 세간에 오르내리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좋은 예이다. 도대체 저걸 그림이라고 하는걸까 하는 의문에서, 나아가 천문학적인 가격에 기가 질릴 지경이다. ‘행복한 눈물’을 감상하기 위해서 관객은 현대미술의 흐름과, 당대 미국의 현실, 그 미학적 배경에 대해서 꼼꼼이 섭렵하지 않으면, 그 의미구조에 전혀 다가갈 수 없다.


이쯤에서 우리는 현대미술의 표현양식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겠다. 양식은 절대다수인 평균적 감성을 지닌 대중과의 관계를 무시하고서 성립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보통의 감성을 지닌 대중들에게는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들이 쉽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즉, ‘보는 것이 아는 것’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을 설득력 있게 대중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예술가적 위치를 자리매김할 수 있다.


물론 예술의 표현양식에 관해서는 고대 그리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mimesis)’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소리와 미학적 탐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의 브레히트와 루카치의 ‘표현주의 논쟁’, 80년대 한국의 '리얼리즘 논쟁'과 같은 생산적인 공간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곧 현대미술의 흐름이 관객과의 소통에 있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겠다.


그렇다, 현대미술 또한 자본과 시장의 힘에 철저히 종속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작품성은 대중과의 소통에서 평가되지 않고, 갤러리와 평론가, 미술계를 움직이는 자본에 의해 철저히 그 가치가 조작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예술적 평가는 젖혀놓고라도, 작품 한 점에 수십, 수백 억이나 한다는 것이 도대체 있을 법한 얘기이겠는가. 이름이 알려진 작가라는 둥, 얼마짜리 교환가치를 지닌 그림이라는 둥 다양한 배경과, 갖가지 현학적인 논리로 무장한 비평들은 오히려 작품 이해에 장애가 될 따름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행복한 눈물’을 보는 이의 눈에서는,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미술사적 지위와 영향을 가늠하다 지쳐 ‘고통스런 눈물’이 찔끔거려질 것이라 나는 믿는다. 아, 정말이지, 이런 현대미술이 정말 싫다. 백남준도 싫다. 과천국립미술관 로비에 용틀임을 하고 있는 그 우스꽝스런 모니터들이 보기 싫어서 나는 그쪽에 걸음을 끊은 지 꽤 되었다. 한때, 이중섭의 ‘부부’라는 작품을 보느라 한 달에 두세 번은 꼬박 들르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영악하다 못해 고약해진 세태가 못마땅하다.

 

이중섭 / 부부

 

 

 

蕭湛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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