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수능엄경(首楞嚴經)

譯註 首楞嚴經 제 5 회 (首楞嚴經 해제)

slowdream 2008. 3. 4. 16:12
 

2. 깨달음의 성품을 드러내어 수행자들에게 바로 나아가게 하다 [發明覺性直使造語]


 다음 견도분(見道分) 가운데 두 번째는 깨달음의 성품[覺性]을 확연히 드러내어 수행자에게 바로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했는데[發明覺性直使造語], 여기에 11가지가 있다.


 *몸의 달라짐에 의하여 보는 성품의 불생멸을 밝히다 [卽身變異明不生滅]


 제1편에서는 “왕의 얼굴은 비록 쭈그러졌으나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은 일찍이 쭈그러진 적이 없었습니다. 쭈그러진 것은 변화하는 것이요, 쭈그러지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기에 변하는 것은 없어지겠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원래로 생멸이 없어 항상한 것입니다”고 하여 여래장의 불생불멸(不生不滅)을 깨우치시었다.


 *손의 바로와 거꾸로의 비유를 통해 보는 성품은 유실이 없음을 밝히다 [依手正到明無遺失]


 제2편에서는 “한번 미혹하여 마음이라 하고, 거기에 집착하여 이제는 다시 이 마음이 색신(色身)의 속에 있다고 착각하여 이 몸과 밖에 있는 산과 강 그리고 허공과 대지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다 묘하게 밝은 참마음에서 비추어진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고 하여 보는 성품의 참다운 모습을 깨우치시었다.


*반연의 그림자를 물리쳐서 참 성품은 어둡고 의심스러운 것이 아님을 명확히 드러내다 [辨斥緣影甄別混疑]


 제3편에서는 “만약 내가 법을 설할 때에 그 음성을 분별하는 것으로 너의 참마음을 삼는다면 이 마음이 응당 그 음성을 여의고도 항상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마치 어떤 나그네가 여관에 기숙하여 잠시 머물렀다가는 바로 떠나고 항상 머물지 못하지만 여관의 주인은 도무지 갈 곳이 없어 주인이라 하는 것처럼, 마음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만약 참다운 너의 마음이라면 갈 곳이 없을 것인데 어찌 소리를 여의었다고 해서 분별하는 마음의 그 본성까지 없어지겠느냐?”고 하여 참성품은 어둡고 의심스러운 것이 아님을 명확히 분별하여 드러내시었다.


*여덟 가지 경계에 의지하여 보는 성품은 돌려보낼 수 없음을 보이다 [依八境示見成無還]


 제4편에서는 “아난아! 이러한 모든 변화 가운데 밝은 것은 해로 돌려보낸다. 왜냐하면 해가 없으면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밝은 것의 원인은 해에 속한 것이니 밝은 것은 해로 돌려보내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 데로 돌려보내고, 통하는 것은 문으로 보내고, 막힘은 담장으로 돌려보내고, 대상에 반연하는 것은 분별로 보내고, 빈 것은 허공으로 보내고, 흙비는 티끌로 보내고, 청명은 개인 곳으로 돌려보낸다. 이와 같이 세상 모든 것들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이 여덟 가지를 보는 견(見)의 정미롭고 밝은 성품은 어디로 돌려보내겠느냐?”고 하여 보는 성품의 상주성(常住性)을 깨우치셨다.


*가지가지 물상에 나아가 보는 성품의 참다운 모습을 드러내다 [卽諸物像決擇眞性]


 제5편에서는 “아난아! 멀고 가까운 모든 사물의 성품이 비록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두가 너의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으로 청정하게 보는 것이기에, 여러 가지 물류(物類)는 스스로 차별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보는 성품은 차별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정미롭고 묘명한 것이 정말 너의 보는 성품이니라”고 하여 참성품의 존재를 깨우치시었다.


 *보는 성품의 참다운 모습은 본래 한량이 없음을 밝히다 [明見眞體本絶限量]


 제6편에서는 “일체 세간의 대소내외(大小內外) 모든 일들이 다 앞의 대상에 속하는 것이기에 그 대상에는 멀고 가까운 차별이 있을지언정 보는 성품에 ‘퍼지거나 줄어듦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하여 보는 성품의 참다운 실체는 한량이 없음을 깨우치시었다.


*보는 견(見)과 색공 등 견연(見緣)이 본래 하나의 묘체(妙體)이기에 나누어질 수 없음을 밝히다 [明見與緣同一妙體]


 제7편에서는 “시방의 여래와 대보살들이 스스로 머무는 삼마지(三摩地)에는 견(見)과 견연(見緣)과 생각되는 모든 현상[相]이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서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견(見)과 견연(見緣)이 그대로 깨달음의 묘정명체(妙淨明體)이거늘 어찌 그 가운데 ‘견[是]이다’ ‘견이 아니다[非是]’고 할 것이 있겠느냐”고 하여 견(見)과 견연(見緣)이 본래 나누어 질 수 없음을 깨우치셨다.


 *진실을 밝혀서 아난의 의심을 풀어주다 [辨明眞設甄別疑濫]


 제8편에서는 “이와 같은 깨달음의 묘명은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며, 또한 자연도 아니고 자연 아님도 아니며 비(非)와 불비(不非)도 없고, 시(是)와 비시(非是)도 없어서 일체의 형상을 여의고 일체의 존재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너는 지금 어찌하여 그 가운데 마음을 두어 속세의 부질없는 이름과 모양으로 분별을 일삼고 있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네가 지금 밝은 것을 볼 때에도 보는 성품은 밝음에서 온 것이 아니고, 어두운 것을 볼 때에도 보는 성품은 어두움에서 온 것이 아니며, 또한 허공을 볼 때에도 보는 성품은 허공에서 온 것이 아니고, 막힌 것을 볼 때에도 보는 성품은 막힌 것에서 온 것이 아니다. 또한 명암공색(明暗空塞)의 이 네 가지 이치를 통해서 너는 응당 보는 것[見]을 볼(見) 때에 그 보는 성품[見]은 시견(是見)도 비견(非見)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여 아난의 의심을 풀어주시었다.


 *모든 것이 눈병으로 인하여 생긴 허망한 것임을 거듭 밝혀 지혜의 안목(眼目)을 열어주다 [廣明眚妄重開慧目]


 제9편에서는 동분망견(同分妄見)과 별업망견(別業妄見)을 설하되 “아난아! 저 중생들이 별업망견(別業妄見)으로 등불 주위에 나타난 둥근 그림자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비록 흡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보이는 둥근 그림자는 눈이 병듦[赤眚]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이러한 적생(赤眚)은 눈이 피로함으로 생긴 허상이지 색(色)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적생임을 보면 마침내 보는 성품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고 하여 거듭 지혜의 안목을 열어주시었다.


 *모든 근진(根塵)에 나아가 참마음인 여래장을 들어내다 [卽諸根塵顯如來藏]


 제10편에서는 “아난아! 너는 아직도 가지가지 들뜨고 장애하는 모든 허망한 것들이 그 자리에서 출생하고 곳에 따라 소멸하는 인연이기에 이러한 환망(幻妄)을 생겼다 없어지는 허망한 현상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그 성품이 참으로 불생불멸(不生不滅)하면서도 묘하게 깨어있는 밝은 것[妙覺明體]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이와 같이 더 나아가 오음․ 육입․ 십이처․ 십팔계가 다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하게 생기고 인연이 흩어지면 허망하게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이 생멸거래가 그대로 본래 여래장(如來藏)의 항상 머물러 묘하게 밝고 어디에도 흔들림이 없이 두루 원만한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지 못하고 성품이 진실하고 항상한 그 자리에서 거래(去來)․미오(迷悟)․생사(生死)를 구하려 하니, 마침내 얻을 수 없는 것이다”고 하시어 집착을 버리고 깨어 있는 입장에서는 오음․육입․십이처․십팔계 등이 그대로 여래장의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밝히셨다.


 *널리 칠대(七大)를 들어서 원만히 여래장(如來藏)성을 보이다 [廣擧七大 圓示藏性]


 제11편에서는 일신(一身)의 오음 ․ 육입 등은 물론 지수화풍 등 칠대만법(七大萬法)에 이르기까지 그대로가 본래 여래장의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밝히신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