㊃ 卽十八界 明如來藏 ㈎ 總徵
復此阿難아
云何十八界가
本如來藏妙眞如性고
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이 십팔계(十八界)가 본래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이겠느냐?
㈏ 別明 ㉮ 眼色界 ㈀ 擧相問界
阿難如汝所明으로
眼色爲緣하야
生於眼識하니
此識爲復因眼所生이라
以
眼爲界아
因色所生이라
以色爲界아
아난아! 밝힌 것처럼 눈[眼]과 대상[色]이 연(緣)이 되어 안식(眼識)이 생기는 것이라면 이 식(識)이 눈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눈으로써 계(界)를 삼아야 하느냐, 색(色)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색으로써 계를 삼아야 하느냐?
㈁ 辯界無實 ㉠ 依根辯
阿難若因眼生인댄
旣無色空하면
無可分別이어니
縱有汝識인들
欲將何用
고
汝見又非靑黃赤白이라
無所表示이니
從何立界리요
아난아! 만약 이 안식(眼識)이 눈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이미 색도 허공도 없을 것이니 너의 식(識)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너의 보는 눈[見]은 볼 수 있는 청황적백(靑黃赤白)이 아니어서 표시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계(界)를 세울 수 있겠느냐?
㉡ 依境辯
若因色生인댄
空無色時에
汝識應滅하리니
云何識知是虛空性이며
若色變
時에
汝亦識其色相遷變인댄
汝識不遷커늘
界從何立리요
만약 색(色)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허공에 색이 없어졌을 때에 너의 의식[識]도 응당 멸할 것이니 어떻게 허공의 성품을 알겠느냐? 만약 색이 변할 때에 네가 또한 그 색상(色相)의 변함을 안다면 너의 식(識)은 ‘홀로 변하지 않는 것’이 되는데, 너의 안색계(眼色界)가 무엇을 의지하여 성립되겠느냐?
縱變卽變이니
界上自無이요
不變卽恒이니
旣從色生應不識知虛空所在니
라
(만약 색(色)이 변할 때에) 너의 식(識)도 따라서 변한다면 변하여 없어진 것이니 안색계(眼色界)의 현상은 저절로 없을 것이요, 불변이라면 곧 항상한 것이니 이미 색에 의지하여 생겼기에 응당 색에만 항상하고 허공의 소재는 알지 못할 것이다.
㉢ 根境合辯
若兼二種하여
眼色其生인댄
合卽中離요
離卽兩合이라
體性雜亂어니
云何
成界리요
만약 두 가지를 겸해서 눈[眼]과 색(色)이 공동으로 안색계(眼色界)를 낸다면 합하였으니 가운데가 있어 나누어질 것이고, 서로 나뉘어진다면 둘이 합하여진 것이므로 어느 쪽을 근거로 해야 할지 그 체성(體性)이 혼잡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계가 성립되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眼色爲緣하여
生眼識界어니와
三處都無하여
則眼與色及色
界三이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안(眼)과 색(色)이 연(緣)이 되어 허망한 안식계(眼識界)를 내거니와 삼처(三處)가 모두 따로 없고, 안과 색 그리고 안색계의 이 세 가지가 그대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 耳聲界 ㈀ 擧相問界
阿難又汝所明으로
耳聲爲緣하야
生於耳識하니
此識爲復因耳所生이라
以
耳爲界아
因聲所生이라
以聲爲界아
아난아! 또 네가 밝힌 것처럼 귀와 소리가 연(緣)이 되어서 이식(耳識)이 생기는 것이라면 이러한 식이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귀로써 계(界)를 삼아야 하느냐, 소리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소리로써 계를 삼아야 하느냐?
㈁ 辯界無實 ㉠ 依根辯
阿難若因耳生인댄
動靜二相旣不現前하면
根不成知하고
必無所知인댄
知
尙無成어늘
識何形貌리요
若取耳聞이나
無動靜故聞無所成이니
云何耳形
가
雜色觸塵함을
名爲識界아
卽耳識界가
復從誰立이리요
아난아! 만약 귀로 인하여 이식(耳識)이 생긴다면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 상이 앞에 나타나지 아니했을 때에 귀[根]는 알지 못할 것이다. 반드시 알지 못한다면 안다는 것도 오히려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이식(耳識)에 무슨 모양을 말하겠느냐?
귀의 들음[耳聞]을 취하여 이식(耳識)을 말하려고 하나 ‘귀의 들음’이라 할 것도 없는 것인데, 어떻게 부진근(浮塵根)인 귀살[耳形]이 색(色)에 섞여서 대상에 부딪힌 것을 식계(識界)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만약 이것을 식계라고 한다면) 이식계(耳識界)가 무엇으로부터 성립된 것이냐?
㉡ 依境辯
若生於聲인댄
識因聲有일새
卽不關聞이요
無聞卽亡聲相所在하며
識從聲
生하고
許聲因聞하야
而有聲相인댄
聞應聞識이요
不聞非界니라
만약 이식(耳識)이 소리에서 생긴다면 이식(耳識)이 소리를 의지하여 있기 때문에 듣는 것[聞]과는 서로 관계가 없을 것이고, 듣는 것과 상관이 없다면 소리의 소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또 ‘이식이 소리에서 나오고, 그 소리는 듣는 것으로 인하여 그 소리의 현상이 있다’ 하면 들을 때에 응당 식(識)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듣지 못한다면 계(界)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聞卽同聲하야
識已被聞하니
誰知聞識이리요
若無知音인댄
終如草木이요
만약 식(識)을 듣는다면 식은 곧 소리와 같을 것이며, 식(識)이 이미 들렸으니 다시 누가 식(識)의 들음을 아느냐? 만약 앎이 없다면 소리에서 나왔다는 그 식(識)은 마침내 초목과 같을 것이다.
㉢ 根境合辯
不應聲聞雜成中界하니
界無中位하면
則內外相이
復從何成하리요
그렇다고 응당 소리[聲]와 듣는 것[聞根]이 섞이어서 그 가운데 이식계(耳識界)가 이루어졌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중위(中位)의 계(界)를 이미 세울 수 없는데, 안[根]과 밖[塵]의 모습을 어떻게 성립시킬 수 있겠느냐?
㈂ 了妄卽眞
是故當知하라
耳聲爲緣生耳識界어니와
三處都無하여
則耳與聲及聲界三
이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귀와 소리가 연(緣)이 되어 허망한 이식계(耳識界)를 내거니와 삼처(三處)가 모두 따로 없고, 귀와 소리 그리고 이성계(耳聲界) 이 셋이 그대로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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