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大 ㈀ 標本
阿難水性不定하야
流息無恒하니
如室羅城에
迦毗羅仙과
斫迦羅仙과
及
鉢頭摩와
訶薩多等 諸大幻師가
求太陰精하야
用和幻藥에
是諸師等이
於白月
晝에
手執方諸하야
承月中水하나니
此水爲復從珠中出가
空中自有아
爲從月來
아
아난아! 물의 성품이 일정하지 아니하여 흐르고 그침이 항상하지 않다. 저 실라벌성에 가비라선(迦毘羅仙)과 삭가라선(斫迦羅仙)과 발두마(鉢頭摩)와 가살다(訶薩多) 등 여러 대환사(大幻師)들이 달의 정기[太陰精]를 구하여 환술의 약을 만들려고 할 때에 이 환술사(幻術師)들이 보름날[白月]의 한밤중에 손에 방저(方諸,구슬)를 들고 달 속의 물을 받는다. 그런데 이 물이 방저에서 나온 것이냐, 허공에서 저절로 생긴 것이냐, 달에서 온 것이냐?
㈁ 辯明
阿難若從月來인댄
尙能遠方에도
令珠出水하거니
所經林木이
皆應吐流로
다
流則何待方諸所出이며
不流明水非從月降이로다
아난아! 만약 달에서 온 것이라면 오히려 먼 곳인데도 구슬에서 물이 나오게 할 수 있었으니 그렇다면 지나가는 곳의 숲과 나무에서 모두 물이 흘러야 할 것이다. 만약 흐른다면 어찌 굳이 구슬[方諸]에서 물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겠느냐? 흐르지 않는다면 분명 물이 달에서 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若從珠出인댄
則此珠中常應流水어니
何待中宵承白月晝리요
若從空生인댄
空
性無邊할새
水當無際라
從因洎天皆同滔溺이니
云何復有水陸空行하리요
만약 구슬[方諸]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구슬[方諸]속에서 항상 물이 흘러야 하는 데, 어찌하여 한밤중의 백월(白月)의 달빛 받기를 기다려야만 하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허공의 성품이 본래 끝[邊]이 없으므로, 물도 응당 한계가 없어서 인간으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다 모두 물에 잠길 것이니 어떻게 다시 물과 육지와 허공을 구별 할 수 있겠느냐?
汝更諦觀하라
月從天陟하고
珠因手執하며
承珠水盤本人敷設이니
水從何方하
야
流注於此오
月珠相違하야
非和非合이며
不應水精無從自有니라
너는 다시 자세히 보아라. 달은 하늘에 떠 있고, 구슬[方諸]은 손에 들려 있으며, 구슬의 물을 받는 쟁반은 본래 사람이 설치해 놓았는데, 물은 어디로부터 여기에 흘러온 것이냐? 달과 구슬은 거리가 서로 멀어서 화합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응당 물의 정기가 오는 곳이 없이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니다.
㈂ 結顯
汝尙不知로다
如來藏中에
性水眞空과
性空眞水가
淸淨本然하며
周遍法界하야
隨衆生心應所知量하나니
一處執珠하면
一處水出하고
遍法界執하면
滿法界生하
야
生滿世間커니
寧有方所리오
循業發現하거늘
世間無知하야
惑爲因緣及自然
性하나니
皆是識心分別計度이요
但有言說都無實義니라
너는 아직도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물[水]인 진공(眞空)과 성품이 공(空)인 진수(眞水)가 청정본연(淸淨本然)하고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심(衆生心)을 따르고 소지량(所知量)에 응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한 곳에서 구슬을 잡으면 한 곳에서 물이 흐르고, 두루 법계에서 잡으면 법계에 가득히 생겨서 그것이 세상에 가득할 것이니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물이라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 다 업에 따라 나타나는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무지하여 이것을 ‘인연의 성품이니 자연의 성품이니’하고 미혹하는 것이다. 이는 다 식심(識心)으로 분별하고 계탁한 것이니 다만 언설(言說)이 있을지언정 도무지 실다운 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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