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수능엄경(首楞嚴經)

譯註 首楞嚴經 제 63 회(제3권<正宗分>見道分:2 發明覺性 直使造悟)

slowdream 2008. 4. 21. 15:44
 

 ㉳ 見大 ㈀ 標本

阿難見覺無知하야

 因色空有하나니

如汝今者

 在袛陀林하야

 朝明夕昏

하며

 設居中宵하야도

 白月則光하고

 黑月便暗이요

則明暗等

 因見分析

하나니

 此見爲復與明暗相幷太虛空으로

 爲動一體

 爲非一體

 惑同非

이며

 惑異非異


 아난아! 보고 느끼는 것에 앎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색(色)과 공(色空) 등의 경계 때문에 앎이 있는 것이다. 네가 지금 지타림에 있을 때에 아침에는 환하고 저녁에는 어두우며 설사 밤중이라도 보름달이 비출 때에는 환하고 그믐에는 어두울 것이다.


 이러한 명암(明暗) 등을 봄으로 인하여 분석(分析,앎)이 있게 되는데, 이 보는 성품[見]이 다시 명암의 현상과 태허공(太虛空)으로 더불어 동일체(同一體)이냐, 동일한 체가 아니냐? 아니면 혹은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며, 혹은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느냐?



 ㈁ 辯明

阿難此見若復與明與暗

 及與虛空으로

 元一體者인댄

 則明與暗

 二

體相亡하야

 暗時無明하고

 明時無暗이니라


 아난아! 만약 이 보는 성품이 다시 명암(明暗)이나 허공과 함께 원래 한 덩어리였다면 명암의 두 가지 체(體)가 서로 공격하여 어두울 때는 밝음이 없어지고, 밝을 때에는 어두움이 없어질 것이다.



若與暗一인댄

 明則見亡이요

 必一於明인댄

 暗時當滅이니

 滅則云何 見明見

이리요

 若明暗殊

 見無生滅어늘

 一云何成이리요


 만약 이 보는 성품이 어두움과 한덩어리라면 밝을 때에는 응당 보는 것이 없어질 것이고, 반드시 밝음과 한덩어리라면 어두울 때에는 응당 볼 수 없을 것이니 이와 같이 보는 성품이 소멸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밝음을 보고, 어두움을 보겠느냐? 이와 같이 명암은 비록 달라지나 보는 성품은 원래로 생멸이 없거늘 하나의 몸[一體]이라는 말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若此見精與暗與明으로

 非一體者인댄

 汝離明暗及與虛空하고

 分析見元하라


作何形相

 離明離暗하고

 及離虛空이면

是見元同龜毛兎角하리니

 明暗虛空

 三事俱異인댄

 從何立見이리요


 만약 이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이 밝음과 어둠과 함께 하나의 몸[一體]이 아니라면 너는 명암과 허공을 여의고 보는 성품의 근원을 분석해 보아라. 무슨 형상이더냐?


 밝음과 어두움과 허공을 떠나서는 보는 성품이 원래로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을 것인데, 밝음과 어두움과 허공의 세 가지 일과 다르다면 무엇으로 보는 성품[見]을 세우겠는가?



明暗相背어늘

云何或同하며

 離三元無커니

 云何或異하며

 分空分見컨댄

 本無

邊畔커늘

云何非同이며

 見暗見明으로

 性非遷改어니

 云何非異리오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어긋나는데, 어떻게 보는 성품이 이들과 같다고 할 수 있으며, 밝음과 어두움과 허공의 세 가지를 떠나서는 따로 보는 성품을 세울 수 없는데, 어떻게 또 보는 성품이 이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허공을 나누고 보는 성품을 나누려고 해도 본래 한계가 없는데, 어떻게 같지 않다고 할 수 있으며, 어두움을 보기도 하고 밝음을 보기도 하지만, 보는 성품은 옮기고 바뀌는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명암과 보는 성품이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느냐?



汝更細審하야

 微細審詳하야

 審諦審觀하라

 明從太陽하고

 暗隨黑月하고

 通屬

虛空하고

 壅歸大地어니와

 如是見精

 因何所出


 너는 다시 자세하고 미세하게 살펴서 깊이 분별하고 유심히 관찰해 보아라. 밝음은 태양에서 오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데서 오며, 통한 것은 허공에 속하고, 막힘은 대지로 돌아가는데, 이와 같이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見覺空頑이라

非和非合이며

 不應見精

 無從自出이니라


 보는 성품은 깨달아 아는 것이 있고, 허공은 완고한 것이니 화합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응당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이 인연이 없이 스스로 나온 것도 아니다.



 ㈂ 會通

若見聞知性原周遍하야

 本不動搖인댄

當知無邊

 不動虛空

 幷其動搖

하는

 地水火風하야

 均名六大

 性眞圓融하야

皆如來藏本無生滅

니라


 만약 이와 같이 보고 듣고 아는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하여 본래 동요하지 않는 것이라면 응당 저 끝없는 부동의 허공과 동요하는 지수화풍(地水火風)과 함께 나란히 육대(六大)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요 본래 생멸이 없기 때문이다.



阿難汝性沈淪하야

 不悟汝之見聞覺知

 本如來藏하니

 汝當觀此見聞覺知

하라

 爲生爲滅

 爲同爲異

 爲非生滅이요

 爲非同異


 아난아! 너는 성품이 잠겨 있어서 너의 견문각지하는 것을 다시 돌이켜 관찰하여 보아라. 이것이 생이더냐, 멸이더냐? 같더냐, 다르더냐? 생멸도 아니고, 같고 다름도 아니더냐?



 ㈃ 結顯

汝曾不知로다

 如來藏中性見覺明

 覺精明見

 淸淨本然周遍法界


隨衆生心應所知量하나니

如一見根

 見周法界인달하야

 聽齅嘗觸

 覺

觸覺知

 妙德瑩然하야

 周遍法界하고

 圓滿十虛커니

 寧有方所

 循

業發現하거늘

世間無知하야

 惑爲因緣及自然性하나니

 皆是識心分別計度


但有言說都無實義니라


 너는 일찍이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보는 것[見]인 진공(眞空)의 각명(覺明)과 성품이 공(空)인 깨달음[覺]의 묘정명견(妙精明見)이 청정본연(淸淨本然)하고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심(衆生心)을 따르고 소지량(所知量)에 응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이는 마치 하나의 견근(見根)의 보는 성품[見]이 법계에 두루하듯이 귀의 들음[聽]과 코의 맡음[嗅]과 혀의 맛봄[嘗觸]과 몸의 느낌[覺觸]과 뜻의 분별[覺知]도 그 묘덕(妙德)이 환하게 법계에 두루하여 시방의 허공에 가득한데, 거기에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보고 깨닫는 것이 다 업에 따라 나타난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무지하여 이것을 ‘인연의 성품이니 자연의 성품이니’하고 미혹하는 것이다. 이는 다 식심(識心)으로 분별하고 계탁한 것이니 다만 언설(言說)이 있을지언정 도무지 실다운 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