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수능엄경(首楞嚴經)

譯註 首楞嚴經 제 64 회(제3권<正宗分>見道分:2 發明覺性 直使造悟)

slowdream 2008. 4. 21. 16:01
 

㉴ 識大 ㈀ 標本

阿難識性無源하야

 因於六種根塵妄出하니라


 아난아! 인식하는 성품[識性]이 따로 근원이 없고 다만 여섯 가지 근(根)과 진(塵)에 의하여 허망하게 나오는 것이다.



汝今遍觀此會聖衆

 用目循歷하나니

其目周視호대

 但如鏡中

 無別分析

커든

 汝識於中次第標指호대

 此是文殊

 此富樓那

 此目犍蓮이며

 此須

菩提

 此舍利弗이니


 네가 지금 두루 이 모임의 성스러운 대중을 살필 때에 눈으로 차례차례로 보게 되는데, 그 눈이 두루 보는 것이 마치 맑은 거울 속을 보는 것과 같아서 달리 분별할 것이 없겠지만 너의 의식(意識)은 그 속에서 ‘이는 문수(文殊)이고 이는 부루나이고 이는 목건련이고 이는 수보리이고 이는 사리불이다’고 지목할 것이다.



此識了知爲生於見

 爲生於相

 爲生虛空

 爲無所因호대

 突然而出


 이 식(識)의 분별해 아는 성품이 견근(見根)에서 생기느냐, 바깥 대상[塵相]에서 생기느냐, 허공에서 생기느냐, 원인이 없이 돌연히 나온 것이냐?



 ㈁ 辯明

阿難若汝識性

 生於見中인댄

 如無明暗及與色空하야

 四種必無하면

 元無

汝見하리니

 見性尙無어니

 從何發識이리요


 아난아! 만약 너의 분별해 아는 성품[識性]이 보는 견근(見根)에서 생긴다면 명(明) 암(暗) 공(空) 색(色)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고, 이러한 네 가지가 반드시 없다면 원래로 너의 보는 성품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보는 성품도 오히려 없는데, 어디에서 식(識)의 작용이 발생하겠느냐?



若汝識性

 生於相中인댄

 不從見性이리니

 旣不見明하고

 亦不見暗하며

 明

暗不矚인댄

 旣無色空하리니

彼相尙無어니

 識從何發하리요


 만약 너의 분별해 아는 성품[識性]이 바깥 대상에서 생긴다면 보는 견근(見根)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밝음도 보지 못하고 또한 어두움도 보지 못하며, 밝고 어두움에 속하지 않는다면 곧 색(色)과 공(空)도 보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대상을 볼 수 없는데, 식(識)이 어떻게 발생하겠느냐?



若生於空인댄

 非相非見이니

 非見無辯하야

自不能知明暗色空하며

 非相滅

하야

 見聞覺知

 無處安立하리라

處此二非인댄

 空則同無하고

 有非同物

하리니

 縱發汝識한들

 欲何分別이리요


 만약 식(識)이 허공에서 생긴다면 대상과도 관계가 없고, 보는 견근(見根)과도 관계가 없다. 이와 같이 보는 견근(見根)과 관계가 없다면 분별함도 없어서 자연 명암과 색공을 알지 못할 것이고, 대상과 관계가 없다면 반연이 없어서 보고 듣고 깨달아 안다는 것이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대상과도 무관하고 보는 견근(見根)하고도 무관한데, 허공이 그대로 식(識)이라면 없는 것과 같고, 허공에 식(識)이 있다 하여도 뼈대[體]를 세울 수 없어 밖의 사물과는 같지 않을 것이니 설사 너의 식(識)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느냐?



若無所因호대

 突然而出인댄

 何不日中

 別識明月


 만약 이 식(識)이 까닭 없이 돌연히 나온 것이라면 어찌하여 한낮에는 밝은 달을 분별하지 못하느냐?



汝更細詳微細詳審하라

 見託汝晴하고

相推前境하니

 可狀成有하고

 不相成

어니와

 如是識緣

 因何所出

 識動見澄이라

 非和非合이며

 聞聽覺知亦

復如是하니

 不應識緣

 無從自出이니라


 너는 다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라. 보는 견근(見根)은 너의 눈[眼睛]에 의탁하고, 대상은 앞의 경계를 가리키는 것이니 가히 설명[形狀]할 수 있는 것은 다 온 곳이 있을 것이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다 온 곳이 없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다면 의식[識]의 반연[識緣]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


 식(識)은 움직이는 것이고 보는 성품은 청정한 것이니 화합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견문각지(見聞覺知)도 이와 같다. 그렇다고 이 의식의 반연[識緣]이 온 곳이 없이 스스로 있는 것도 아니다.



 ㈂ 會通

若此識心本無所從인댄

 當知了別見聞覺知

 圓滿湛然하야

 性非從所라

兼彼虛空

 地水火風으로

 均名七大

 性眞圓融하야

 皆如來藏이라

本無

生滅이니라


 만약 이 식심(識心)이 본래로 온 곳이 없는 것이라면 응당 요별하여 견문각지하는 것도 원만하고 담연하여 그 성품이 본래 온 곳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응당 저 허공이나 지수화풍과 함께 균등히 칠대(七大)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어서 본래 생멸이 없기 때문이다.



阿難汝心麤浮하야 不悟見聞發明了知가 本如來藏하나니 汝應觀此六

處識心하라 爲同爲異아 爲空爲有아 爲非同異아 爲非空有아


 아난아! 너의 마음이 거칠고 들떠서 보고 듣고 드러내 아는 것이 그대로 본래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너는 응당 보고 듣고 알고 하는 이 육처(六處)의 식심(識心)이 저 근진(根塵)과 같은가, 다른가? 그 자체가 공(空)인가, 유(有)인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가? 공도 아니고 유도 아닌가? 이를 잘 관찰해 보아라.



汝元不知로다

 如來藏中

 性識明知

 覺明眞識

 妙覺湛然

周遍法界

하야

 含吐十虛이니

 寧有方所리오

 循業發現하거늘

世間無知하야

 惑爲因緣

及自然性하나니

 皆是識心分別計度이요

 但有言說都無實義니라


 너는 원래 이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식(識)의 진공(眞空)의 명지(明知)와 성품이 각명(覺明)의 진식(眞識)이 묘하게 깨어 있어 담연(湛然)하고 법계에 두루함을 알지 못하는구나!


 앞에서와 같이 식의 성품이 본래 법계에 두루 하고, 사방의 허공을 머금고 토하는 것인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이러한 식(識)이 다 업에 따라 나타난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이 무지하여 이것을 ‘인연의 성품이니 자연의 성품이니’하고 미혹하는 것이다. 이는 다 식심(識心)으로 분별하고 계탁한 것이니 다만 언설(言說)이 있을지언정 도무지 실다운 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