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염화실의 향기

[대혜·고봉의 회상에 들다] 2.천녕사

slowdream 2008. 6. 23. 03:11

[대혜·고봉의 회상에 들다] 2.천녕사


 

      천녕사는 대혜 선사가 스승인 원오 선사를 만나 일대사를 해결했던 오도처다.

                 문화혁명 당시 완전히 파괴된 것을 중국 정부가

               1979년부터 200억 원을 들여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아침부터 잔뜩 찌푸렸던 하늘은 결국 비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빗속을 헤치고 도착한 곳은 장쑤성(江蘇省) 천녕사. 대혜 종고가 스승인 원오 극근을 만나 일대사를 해결했던 오도처다.


천녕선사(天寧禪寺). 도량에 들어서기도 전에 일주문 위에 걸린 거대한 편액이 순례단을 압도한다. 당조 영휘년(650년)에 건립된 천녕사는 복원 이후 중국 정부가 중점 관리하는 사찰 중 하나로 ‘동남제일총림(東南第一叢林)’으로 불린다. 창건 이후 다섯 번의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다 문화혁명 당시 완전히 파괴된 것을 중국 정부가 1979년부터 200억 원을 들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일주문에서 편액의 크기에 짓눌렸던 마음은 천왕전에 이르러 넉넉한 모습의 포대화상을 만나면서 풀어졌다. 천녕사 역시 여느 중국의 절처럼 일주문과 천왕전을 반드시 지나야만 대웅전으로 향할 수 있다. 마음의 여유를 찾자 환한 웃음으로 순례단을 맞이하는 이가 비단 포대화상만이 아님을 알게됐다. 증장천왕, 지국천왕, 다문천왕, 광목천왕이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려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천왕들은 우락부락한 모습인 반면, 중국의 사천왕들은 한결 부드러운 용태를 갖췄다. 마치 경극 배우들이 화장한 모습을 연상케 할 만큼 친숙하고 부드러운 모습이다. 손을 모아 예를 표하고 천녕사 깊숙한 곳, 대혜의 발자취를 찾아 걸음을 재촉했다.


대웅전과 옥불보전을 지나자 처마 끝이 하늘을 찌를 듯한 3층 누각이 앞을 가로막는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대혜 선사가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대자유인 되기 위해 화두를 들어 삼매에 들었던 바로 그곳, 대선당(大禪堂)이다. 자취로나마 대혜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복원 이후 中 정부가 중점 관리


대혜는 1089년 요의 침범이 빈번하던 북송 말 선주(宣州) 안국현(安國縣)의 해 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향교에 들어가 공부하던 그는 “세간의 공부가 출세간의 법만 하겠냐”며 16세 되던 해 동산(東山)의 혜운원(慧雲院)으로 출가, 이듬해에 구족계를 받았다. 출가 초기 대혜는 주로 조동종 계열의 스님 밑에서 조동종의 종지를 참구했다. 그러나 불교의 이론을 종이에 써 주고받는 일을 선(禪)으로 삼는 것을 보고, “염라대왕 앞에서 쇠몽둥이를 맞을 일”이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서 바랑을 짊어졌다.

 

           천녕사 천녕보탑. 높이 153.79m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불탑이다.

 


달랑 발우 하나를 들고 동가식서가숙하던 대혜는 23세에 임제종 황룡파 3세인 담당 문준 선사를 찾아가 스승이 입적할 때까지 곁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스승은 장래를 묻는 대혜에게 원오 극근 선사를 찾아가 대사를 성취하라고 일렀다. 장차 대혜가 인천의 스승으로 존경받게 되는 결정적 계기였으나, 대혜는 알지 못했다.


대혜는 원오 극근을 찾아가라는 스승의 유훈을 곧바로 받들지 않았다. 당시 대혜가 만난 이들은 그의 경지를 쉽게 인정했기 때문에 스승이 천거한 인물 역시 똑같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섰던 것. 그리고 마음 한편에선 스스로 증득해 경지에 이르겠다는 욕심이 있기도 했다.


“그의 선도 다른 제방의 선과 같아 망령되게 나를 옳다고만 인정한다면 나는 선을 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다음 생에 불법 가운데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기다리겠다.”


대혜는 결국 자신이 만든 두려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10여 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낸 끝에서야 이 같이 다짐하며 이곳 천녕사로 원오 선사를 찾았다.


조심스레 다가가 가만히 대선당 안을 들여다봤다. 족히 100평은 됨직한 너른 공간, 그러나 좌복도 대혜의 법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정부의 지원으로 전각은 복구가 마무리됐으나 아직 승가의 복원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어쩌면 선사들의 성성한 선기가 가득한 도량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한 관광지로 개발하는 쪽을 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혜는 우선 스승이 천거한 원오라는 인물의 됨됨이를 재단할 요량으로 물었다. “제가 생각하니 이 몸이 아직 깨어 있을 때는 주재해도 자못 잠들었을 때는 캄캄해 주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수화풍이 분산해 중고(衆苦)가 일어날 때 어찌 회환전도(回換顚倒)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원오는 손을 내저으며 “그만하고 망상을 쉬어라. 지금 말하는 그대의 허다한 망상이 단절될 때 그대 스스로 오매항일처(寤寐恒一處)에 도달하리라.” 하는 것이 아닌가. 대혜는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인가를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분심이 아닌 참회의 마음이 앞섰다.


‘내가 아직 깰 때(寤)와 잠잘 때(寐)가 둘이거늘 어찌 감히 입을 열어 선을 말하겠는가. 다만 오매항일이라는 부처님 말씀에 내가 아직 도달하지 못했으니 진심으로 참회하고, 일념으로 정진하리라.’


천녕사에서 지낸 지 42일이 되던 날, 원오 선사가 법석에 올라 “어떤 스님이 운문에게 ‘어떤 것이 부처님의 출신처입니까?’라고 묻자 ‘동산이 물 위로 가느니라(東山水上行)’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라면 ‘훈풍이 스스로 남쪽에서 불어오니 전각이 서늘하다(薰風自南來 展閣微凉生)’고 하겠다”고 법문했다.


대혜는 이 말을 듣고 바로 앞과 뒤가 끊어지고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러나 원오 선사는 “네가 도달한 경지를 바꾸지 않았으니 가히 안타까운 일이다. 죽은 뒤에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구나. 어구를 의심하지 않는 이것이 큰 병이다”며 대혜를 경책했다.


며칠 뒤 원오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말 있는 것과 말 없는 것이 마치 칡이 나무를 의지한 것과 같다”고 질문했다는 말을 들었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대혜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말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뜻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원오 선사를 찾아갔으나, 스승은 빙그레 웃음 지을 뿐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제자가 거듭 묻자 원오 선사는 “내가 묻기를 ‘말 있는 것과 말 없는 것이 칡이 나무를 기대는 것과 같다고 한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오조 법연 선사가 ‘본뜨려 해도 본뜰 수 없고 그리려 해도 그릴 수 없다’고 했다. 또 묻기를 ‘나무가 넘어지고 칡이 말라버리면 어떠합니까?’ 하니, 오조가 ‘서로 따라 온다’고 하셨다”고 일러주었다.


대혜는 스승의 말끝에서 흐렸던 시야가 밝아짐을 느꼈다. 기쁜 마음에 “제가 알겠습니다”하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자, 원오 선사는 여러 가지 인연으로 힐문(詰問)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스승의 말끝에서 일대사를 해결한 대혜는 더 이상 막힘이 없었다.


“내가 너를 속일 수 없구나.” 원오 선사는 크게 기뻐하며 대혜의 경지를 인가했다. 이 소식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고, 전국의 운수납자들이 대혜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 모습을 당시 승상(承相) 여순도가 황제에게 보고함에, 황제가 ‘불일대사(佛日大師)’라는 호를 하사하기도 했다. 대혜 주변에는 내로라하는 사대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에 이들을 통해 국가존망이 백척간두에 선 당시 국가 상황을 극복하기로 결심한 대혜는 이들이 지혜의 눈을 뜰 수 있도록 법을 설하기 시작했다.


전각은 복구됐으나 승가는 아직


대혜 선사가 묵조선(默照禪)을 힐난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불법이란 세간을 떠나 따로 구하는 것이 아닌 일상 속에 있어야 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소극적이고 은둔적인 묵조선의 수행행태를 비판했던 것이다.


열심히 대선당 문고리를 찾았다. 불가(佛家)에서는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삼악도(三惡道, 악업의 결과로 죽으면 가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를 면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대선당(大禪堂) 여닫이문에 문고리가 없다. 노력 없이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가르침인가? 너털 웃음이 나온다.


도량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천녕보탑 앞에 섰다. 높이 153.79m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불탑이다. 보탑의 중앙 마당에는 조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포대화상이 자리를 잡았고, 양옆으로 문수, 보현, 관음보살이 예경하듯 도열해 있다.


빗방울의 굵기가 심상치 않다. 버스를 향해 서둘러 돌아서는데, 아직 가르칠 게 남았는지 대형 석판이 길을 가로막는다.


“… 해탈, 선정은 지혜가 없는 자에게 일어나지 않고 지혜는 선정에 들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선정과 지혜를 동시에 겸한 자만이 번뇌의 경계를 넘어 해탈에 다가갈 수 있다. 정근, 보살의 마음과 지혜를 얻기 위해 지금 당장 시작하고 응당 노력하라.…”


순간, 선방 문고리라도 잡아보겠다던 조금 전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meopit@beopbo.com

출처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