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그리운 그대여...

slowdream 2008. 11. 17. 16:17

 그리운 그대여...

 

                                                                                                                           

 

그리운 그대여,

다만 그리운 까닭은,

그대를 이미 만났고,

지금도 만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만날 것이나,

그대를 전혀 모르고 있으니 속절없이 그리울 따름이다.

 

동네 뒷산 헐벗은 나무들처럼

노을진 삶의 비탈에 선 이즈음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삶이란 큰돈을 벌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삶이란 이름을 떨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삶이란 학문을 깊이하여 세상에 그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삶이란 모두가 부러워하는 이쁜 처자와 성품 좋은 자식들을 거두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운 그대여,

삶이란 깨닫기 위해,

그 깨달음을 다시금 고스란히 이 세상에 회향하기 위해

어렵사리 주어진 것임을

나는 이제야 알았다.

 

삼천 년 묵은 눈먼 거북이가 백 년에 한 번

숨 쉬러 바다 위로 떠오르다 나무판자를 만나듯,

저 높은 하늘 한가운데에서 백 년마다 한 번씩

떨어지는 바늘이 겨자씨를 관통하듯이,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긴 어둠의 터널에서 배회하다

나 이제 한자락 빛을 움켜쥐었으니

그 인연에 사무치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 몸과 마음에 쌓이고 배인 습기는

억만 겁의 세월 동안 주름을 내린 탓에

참으로 뿌리가 깊어 끊어지지가 않는다.

재물을 탐하고, 이름을 탐하고, 색정을 끊임없이 탐하는

이 습기를 끝내 떨구지 못하는

어둠의 자식이여.

 

세상을 온통 태워버리는 불길에도 아랑곳 않고,

세상을 온통 잠기게 하는 물길에도 끄덕없다.

그리하여 옛어른들이

“이치는 몰록 깨달으나 몸에 배인 습기는 단박에 제거할 수 없도다

(理卽頓悟 事非頓除).”

간절히 이른 까닭을 이제 알겠다.

 

다만 사무치게 그리운 그대여,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고

소중한 자식을 잃는다 하여도

어찌 그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비하겠는가.

 

한밤중에도 문득 그대가 그리워 절로 눈이 뜨이고,

환한 대낮 길을 걸을 때에도 그대가 그리워 가슴이 저린다.

한잔 술에 고단한 몸이 따스하게 적셔질 때도

세상의 고운 풍경에 헐거운 마음이 넉넉하게 물들어갈 때도

다만 사무치게 그리운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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