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우리는 늘 잊고 산다

slowdream 2008. 11. 8. 03:14

 

 

                                                                                                                     

 

 

 

우리는 늘 잊고 산다

 

 

집사람이 암에 걸려 집안이 쑥대밭이 됐지만, 다행스럽게도 상태가 좋아져 얼굴이 밝아진 후배를 만났다. 병에 걸린 아내를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집안일이며 아이들 뒷바라지까지 종일토록 정신없이 지내는 터라 무척 힘들 것이 분명한데도 전혀 내색이 없다. 아니, 오히려 집사람의 병이 감사하다는 얘기다. 부부간의 정이 좀더 깊어지고 아이들과도 더욱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2년 전, 처음 아내의 발병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후배가 이렇게 탄식한 적이 있다.

“도대체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세상이 원망스럽네요.”

 

그렇다, 우리는 늘 잊고 산다. 이웃들의 불행이 곧 내 것임을. 결국 시간 문제일 뿐, 그들의 고통스런 하루가 곧 내 것이 되고야 만다는 진리를 애써 외면하고, 무시한다.

 

나만은 모든 불행과 고통에서 벗어나리라는 착각과 오만은, 곧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무지에서 비롯하는 것은 아닐지.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제각기 우주의 중심임을, 모든 사람이 각자 삶의 주인공임을 왜 모르는 것일까.

내가 지금 누리는 행복이 그 누군가의 고통을 담보로 주어진 것이라면 과연 행복한 것일까.

 

20대 중반, 세상을 향한 인식이 면도날처럼 날카롭던 시절, 한 후배가 한동안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점심엔 사과 한 알로 버틴 적이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나에게 후배 왈,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밥값이라도 아껴야죠.”

 

지금 그 후배와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지만, 모르면 몰라도 가장 낮은 어느 후미진 동네에서 가난한 이들과 하루를 같이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끼니를 거르지 않음에 감사하고,

팔다리 성한 것에 감사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 그 분의 말씀을 조금씩 헤아려나갈 수 있게끔 해준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고,

재물과 명예와 색욕에 눈이 아주 멀지 않게끔 해주는 내 가난한 욕망에 감사하고,

세상의 속살을 더듬을 수 있게 해주는 작지만 맑은 지혜에 감사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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