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가 무에 머물지 않고, 무가 아닌 것이 유가 아니니, 유가 아닌 법이 무에 나아가 머물지 않고, 무가 아닌 상이 유에 나아가 머물지 아니하여, 유와 무로써 이(理)를 설명할 수 없다. 보살아, 명칭과 뜻이 없는 상은 사의할 수 없으니, 어째서인가? 이름 붙일 수 없는 명칭은 명칭이 없는 것이 아니고, 사의할 수 없는 뜻은 뜻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論
‘유가 아닌 법이 무에 나아가 머물지 않는다’고 한 것은 비록 속제를 융합하여 진제로 삼았지만 진무(眞無)의 법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고, ‘무가 아닌 상이 유에 나아가 머물지 않는다’고 한 것은 비록 진제를 융합하여 속제로 삼았지만 속유(俗有)의 상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제와 속제가 유와 무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진실하여 둘이 없는 이(理)가 없지 않고, 진제와 속제는 이제가 없지 않기 때문에 진실하여 둘이 없는 이(理)가 있지 않다. 그러므로 ‘유와 무로써 이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뜻이 없는 뜻이 명칭이 있는 명칭에 맞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명칭이 없는 명칭은 명칭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한 것은 부처님께서 설명하신 명칭은 뜻이 있는 뜻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명칭이 없는 명칭’이지만, 뜻이 없는 뜻에 해당하기 때문에 ‘명칭이 없는 것이 아니다’고 한 것이다. ‘뜻이 없는 뜻은 뜻이 없는 것이 아니다’고 한 것은, 부처님께서 체득하신 뜻은 명칭이 있는 명칭에 맞지 않기 때문에 ‘뜻이 없는 뜻’이지만, 명칭이 없는 명칭에 맞기 때문에 ‘뜻이 없는 것이 아니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명칭과 뜻을 두지 않지만, 명칭과 뜻이 없는 것이 아니니, 이러한 도리로 말미암아 사의할 수 없는 것이다.
원효 <금강삼매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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