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몸은 깨달음의 나무이고, 마음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와 같으니
시시때때로 열심히 털고 닦아서, 때가 끼지 않게 하라.
#2 몸은 본래 나무가 아니요,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어느 곳에 티끌이 물들겠는가?
위의 유명한 두 게송은 『육조단경』에서 신수와 혜능의 게송이다. 필자가 혜능의 전설적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 것은 20세가 막 지난 해였다. 필자는 참 감명 깊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홍인은 후계자를 정하기 위해서 각자가 얻는 바를 게송으로 짓게 하였다. 그때 신수는 앞의 게송으로 답하였다. 당시에 공양간에서 일하던 혜능이 이 게송을 우연히 듣고, 자신의 게송을 적어 문답처럼, 신수의 게송 옆에 걸었다. 이것이 후자의 게송이다.
이들의 내용은 매우 분명하게 서로 대구를 이룬다. 신수의 게송은 마음에 번뇌가 있기에 열심히 갈고 닦아가는 수행론을 말하고 있다면, 혜능의 게송은 본래 한 물건도 없어서, 갈고 닦지 않는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한다. 우리는 전자의 게송을 점진적으로 닦음(漸修)으로, 후자는 일시에 깨닫는 일(頓悟)로 이해한다. 전자를 베이징과 같은 북쪽지방에서 유행하였기에 북종(北宗)이라 하고, 후자를 혜능이 태어나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광둥성의 지역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남종(南宗)으로 호칭한다.
이들 양 관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양자는 우월적이거나, 혹은 배타적인 관계인가? 아니면 상호 보완하는 통합적인 관계로 이해해야 하는가? 먼저 역사적으로 배타적인 입장을 취한 대표적인 인물은 하택 신회(670-762)이다. 신회는 732년에 하남성 활대에서 무차대회를 열고 북종의 숭원 선사와 논쟁을 하였다. 이때의 논쟁을 신회의 제자인 독고패(獨孤沛)가 기록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돈황굴에서 발견된 『보리달마남종정시비론』이다.
여기에 따르면, 신회는 보리달마의 가르침을 계승한 자는 신수가 아니라 혜능이며, 그 가르침의 내용은 점진적으로 깨닫는 점수의 수행이 아니고, 일시에 깨닫는 돈오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결국 깨달음의 전통성은 신수의 북종이 아니라, 혜능의 남종임을 강조한 것이다. 아무튼 『육조단경』 이후의 선종사에서 점진적인 점수의 가풍은 열등한 가르침으로 무시되었고, 일시에 깨닫는 일을 강조하는 돈오의 선법만이 인정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를 이렇게 배타적이고 우열 관계로만 파악해야만 하는가? 점수의 길은 논리적이고 점진적인 성장의 과정을 대표하며,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경험을 강조하는 장점이 있다. 이 길은 과학처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견고하고 분명한 토대를 구축한다. 반면에 돈오의 번득임은 논리보다는 직관의 길이고, 점진적이기보다는 급진적인 전환이고 이성적인 통찰이다. 이것은 일시에 사물의 중심에 다가가서 그 본질을 꿰뚫는 깨달음이다.
이들 양자는 『육조단경』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배타적 관계이기보다는, 오히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 정신은 양자가 매우 긴밀하게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만약에 직관의 돈오만을 강조하고 점진적인 경험을 무시하면다면, 이것은 현실로부터 멀어지고 유리되어서 공허한 주장에 머물기 십상이다. 반대로 점진적인 길만을 강조한다면 결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돈오와 점수는 별개가 아니라,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점은 간화선의 창시자인 대혜 선사(1089-1163)도 주장한 바이고, 보조 국사(1158-1210)의 경우도 강조한 부분이다. 단박의 깨달음은 점진적인 점수의 길에서 어느 날 순식간에 찾아오고, 점진적인 점수는 단박 깨닫는 빛에 의해서 더욱 굳건한 현실적인 토대를 마련한다. 돈오와 점수는 두 개의 볏단처럼 서로 의지하여 함께 서 있다. 이게 역사의 진실이 아닐까 한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출처 법보신문 996호 [2009년 04월 28일 1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