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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 스님의 선문답 산책]⑧바람과 깃발

slowdream 2009. 5. 23. 23:42

[인경 스님의 선문답 산책]⑧바람과 깃발
모든 현상은 마음작용에 따라 인식되기 마련
얽매이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때 활로열려
기사등록일 [2009년 05월 18일 17:49 월요일]
 

인종법사가 『열반경』 강의를 하고 있었다. 이때 바람에 깃발이 흔들림을 보고,  어떤 승려는 “깃발이 흔들린다”고 했고, 다른 승려는 “바람이 흔들린다”고 논쟁을 했다. 혜능은 일어나서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 흔들린다”고 했다. 인종법사는 이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이것은 혜능이 홍인대상의 법을 계승하고 곧바로 남쪽으로 내려가서 5년의 은둔생활을 끝내고 세상에 나오는 극적인 장면이다. 이것을 ‘바람과 깃발[風幡]의 문답’이라 한다. 이 문답은 돈황본『육조단경』에는 나오지 않고, 혜흔본『육조단경』에서 ‘인종법사와의 만남’의 장에서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보다 먼저 『역대법보기』에서 이 문답을 찾아볼 수 있다. 『역대법보기』는 신라의 승려였지만 중국 사천지역에서 독자적인 계보를 형성한 무상(無相, 694~762)과 그의 제자인 무주(無住, 714~774) 계열에서 제작한 선종사서이다. 혜흔본『육조단경』은 아마도 이 문답을 『역대법보기』에서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따르면, 인종법사는 법문을 하는 도중에 ‘바람이 깃발에 부는 것을 모두 보지요?’라고 묻자, 어떤 이는 ‘깃발이 흔들린다’고 하고, 어떤 이는 ‘바람이 흔들린다’고 논쟁을 하였다. 이때 혜능은 일어나서 말하였다. “여러분의 분별하는 마음이 흔들린다. 바람이나 깃발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이에 인종법사는 경악했다고 한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학적 사고에 의하면, 바람에 의해서 깃발이 흔들린다고 말한다. 바람이 없으면 깃발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흔들리는 깃발을 통해서 바람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물리학자라면 아마도 흔들림의 운동에너지를 측정하고, 이것을 전기에너지로 바꾸면서 반문할 것이다. 이렇게 운동에너지는 실재한다고.
우리는 이것을 ‘실재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체가 마음이다’는 유심론의 입장에서는 이런 과학적인 법칙도 사실은 마음에 의해서 발견된, (수학적) 언어에 의해서 구성된 내용이 아닌가? 라고 반문한다.

 

여기에 이와 유사한 좋은 사례가 있다. 혜능(638~713)보다 앞선 선배였던, 다름 아닌 원효대사(617~686)의 깨달음이다. 34세가 되던 해에 원효대사는 후배인 의상대사(625~702)와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국경에서 한밤중에 목이 말라서 바가지의 물을 마셨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에 마신 물이 해골바가지의 물이었다. 그러면서 심한 구토증을 느꼈다. 이 순간에 원효대사는 깨달음을 얻었다.

 

원효대사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어제 밤에 마셨던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이란 사실에, 갑자기 뱃속이 매스껍고 구토증을 느낀다. 어제 밤에는 분명하게 갈증을 달래주는 시원하고 달콤한 물이 아니었던가? 같은 물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그렇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현재에 느끼는 구토증은 어제 마셨던 물보다는 ‘이것은 해골바가지 물이다’고 판단하는 마음에 의해서 발생된 결과이다. 진리는 저쪽이 아니라 내가 두발을 내딛고 있는 이쪽에서 발견된다. 달콤함과 구토증은 외적인 물이 아니라, 내적인 마음에 달린 것이다.

 

원효는 발길을 돌렸다. 이것으로 그의 삶의 방향은 바뀌어버렸다. 드라마처럼 극적인 반전에 우리는 통쾌함을 느낀다. 깃발이 흔들린다. 바람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은 흔들린다고 인식하는 바로 그대의 마음이다. 꽃을 꽃이라 하고, 노랗고 파란 색깔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우리의 마음이 창조한 마음의 대상들이다. 들려오는 새소리를, 마음으로 판단하지 말고, 지금 그 자체로 온전히 들어보라. 여기에 우리의 활로가 있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출처 법보신문 998호 [2009년 05월 18일 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