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을 자격이 없는 사람
부처님이 코살라의 나라마을로 여행중일 때의 일이다.
어느날 탁발을 나간 부처님은 밭가는 농부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사문이여, 우리는 손수 밭갈고 씨뿌리는 노동을 하고 식사를 한다. 그러니 당신도 밭갈고 씨를 뿌려 수확을 거두어 식사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의 질문은 거의 힐난에 가까웠다. 어째서 일하지 않고 먹으려 하는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농부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고 대답했다.
농부는 부처님의 대답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말했다.
"거짓말 하지 말라. 나는 사문들이 밭갈고 씨뿌리며 일하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만약 당신이 농사를 짓는다면 씨앗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의 보습은 어디에 있으며 소는 어디에 있는가."
"마음은 나의 밭이고 믿음은 나의 씨앗이다. 지혜는 나의 보습이며, 몸과 입과 생각으로 악업을 없애는 것은 내가 뽑는 잡초다. 이런 일을 하는데 게으르지 않는 것은 나의 소(牛)다. 나는 이와 같이 밭갈고 씨를 뿌려서 감로의 결실을 수확한다. 이것이 나의 농사다."
잡아함 4권 98경 <경전경(耕田經)>
종교인들, 특히 불교의 출가수행자는 생산노동에 종사하지 않는다. 생산노동이란 기본적으로 '소유'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수행자들은 무소유를 덕목으로 삼기 때문이다. 무소유인 수행자들은 재가자들의 보시에 의해 생활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아무리 무소유라 하더하도 생산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밥먹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의문에 대답하는 것이 바로 이 경이다.
이 경전을 찬찬히 살펴보면 부처님도 노동 그 자체에 대해서는 충분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나도 밭갈고 씨뿌린다'는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노동의 방법이다. 사람은 누구나 직업이 따로 있다. 교육자나 은행원이 그 나름의 노동을 안한다고 말할 수 없다. 직녀는 옷을 짜는 일을 하고, 농부는 농사짓는 일을 한다. 버스운전사는 삼을 수송하는 일을 하고, 시장의 상인은 생활필수품을 판다. 공장의 근로자는 자동차를 만들고, 청소부는 길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한다. 모두 자기 직업에 충실함으로서 남에게 이익을 주고, 그 대가로 밥을 먹는다.
그런 뜻에서는 수행자도 훌륭한 노동자다. 수행자는 깨달음을 얻어 남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무위도식하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더 많은 수행자는 열심히 수행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이웃에게 회향하려고 한다. 이는 교육자가 남을 가르치는 대가로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밥먹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다. 직장에 나가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들어오는 사람, 훌륭한 연기를 해내지 못하는 배우, 열심히 노래하지 않는 가수, 나라는 안지키고 정치만 하려는 군인.... 이런 사람들이 밥먹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한가지 더 주목할 점은 불교의 수행자는 설법의 대가로 공양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경전의 후반부를 보면 이 농부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공양을 올리려 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설법의 대가'로 공양을 받을 수 없다며 거절한다. 그 대신 깨끗한 마음으로 대가없이 올리는 공양을 받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수행자란 밥을 먹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의 공덕을 짓도록 하는 복전(福田)이다. 여러 가지를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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