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잡아함경

중생이 중생일 수밖에 없는 까닭

slowdream 2009. 5. 31. 22:17

중생이 중생일 수밖에 없는 까닭

 

 

부처님이 마구라산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날 시자인 라다비구가 평소에 궁금해 하던 문제 한가지를 여쭈었다.
"부처님. 이른바 중생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 당돌한 질문은 요컨대 중생을 왜 중생이라 하는가, 중생이 중생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라다여. 나는 물질(色)에 집착하고 얽매이는 사람, 또한 어떤 대상을 느끼고(受) 생각하고(想) 행위하고(行) 의식(識)하는데 집착하고 얽매이는 사람을 중생이라 한다. 라다여. 나는 평소 너희들에게 오온에 의해 생기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없애버려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그래서 애욕을 끊고 애욕을 끊으면 괴로움이 다할 것이며, 괴로움이 다하면 '괴로움의 끝을 본 사람(해탈한 사람)'이라고 말해 왔다. 그것은 비유하면 이렇다.
어떤 어린아이들이 흙으로 성을 쌓거나 집을 지어놓고 거기에 집착하면 사랑이 끝이 없고 욕망이 끝이 없으며 생각이 끝이 없으며 안타까움이 끝이 없게 된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이 성과 집은 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이 한갓 흙무더기인 줄 알게되면 그것을 발로차고 허물어 버리면서도 안타까워 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라다여. 이와같이 중생도 물질에 대한 집착을 흩어버리고 무너뜨리고 없애버리면 사랑이 다할 것이고 사랑이 다하면 괴로움도 다하고 괴로움이 다하면 괴로움의 끝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는 중생이란 허물도 벗게 되는 것이다."
                                            잡아함 제6권 122경 <중생경(衆生經)>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현상은        (一切有爲法)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如夢幻泡影)
또한 아침이슬, 번개불과 같으니    (如露亦如電)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應作如是觀)

 

<금강경(金剛經)>이라는 대승경전에 나오는 유명한 게송이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바라보고 인식하는 모든 대상과 우주까지도 꿈과 같고, 환상, 물거품, 그림자, 아침이슬, 번개불과 같지 않은 것이 없다. 생명이 잇는 것은 모두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 이를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이라 한다. 생명이 없는 무정물도 가만히 살펴보면 생겨나서 잠시 있다가 변해서 소멸한다. 이를 생주이멸(生住移滅)의 과정이라 한다. 우주도 이루어지면 잠시 머물다가 곧 무너지기 시작해 끝내는 아무 것도 없이 소멸한다. 이를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과정이라 한다.


이렇게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두 잠시 있는 것이다. 아침이슬이 아무리 영롱해도 햇살이 나면 금방 떨어지는 것과 같다. 꿈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깨고나면 그만이듯이 모든 것은 허망하기 그지 없다. 이것이 가감없는 냉정한 인생현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꿈 같은 현실에서 모래성이나 다름없는 어떤 대상에 집착하여 살아가고 잇다. 집착하므로 사랑에 빠지고 그리하여 마침내 괴로움을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부처님의 설명은 명쾌하다. 중생이 중생인 이유는 바로 이 거짓투성이의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집착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앞의 게송 끝구절처럼 '현실을 바로 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쓸데없는 집착을 없애버리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하면 중생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벗어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어떤 괴로움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당장 부처님 말씀처럼 해보면 이 말이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