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근본불교는 불교공부의 출발점
불교만큼 다양한 교리와 사상을 가진 종교도 그리 많지 않다. 불교에는 화엄철학처럼 고도한 관념론을 전개하는 사상이 있는가 하면, 기독교적인 구원을 설명하는 정토교(淨土敎)도 있다. 현대심리학의 정교한 이론을 방불하는 유식학(唯識學), 정신적 안심입명을 추구하는 선(禪)과 같은 수행체계도 있다.
불교가 이렇게 다른 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교리체계를 가진 것은 철학과 사상의 넓이와 깊이를 더해 주는 요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도리어 이로 인해 불교의 정확한 이해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불교를 10년 이상 믿어온 신심 깊은 불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교리 이해 수준은 높은 편이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불교를 믿는 것인지, 아니면 불교와 비슷한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고를 매우 어려운 종교라고 속단하거나, 반대로 저급한 미신적 종교라고 외면하기도 한다.
불교에 대한 이 같은 극단적인 오해는 역사적으로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 부처님은 깨달음으로 성취한 후 45년 간 전도활동을 하면서 재래의 종교사상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어떤 부분은 포용하고, 또 어떤 부분은 그 의미를 불교적으로 변화시키려고 했다. 인과응보설이나 이에 바탕한 윤회론, 인도재래의 우주관이나 세계관의 채용 등이 그것이다. 이런 관용적 태도는 역사적으로 불교사상의 독창성을 제거하고 혼합주의를 배태시켰다. 특히 대승불교의 구제주의는 불교 자체의 엄청난 교리사상적 변화를 불러왔다. 원래 자력적이고 수행중심적이던 교리는 타력적이고 신앙중심적인 교리를 바뀌었다. 힌두교의 수많은 신들이 불교신앙 안에 포용되었으며 그 절정을 보여준 것이 밀교였다. 불보살의 자비를 내세우며 타력구제를 표방하는 정토교의 등장은 불교가 다른 종교사상과 어떤 교섭과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교리의 심천, 심지어는 어떤 것이 불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에 이르게 됐다.
중국불교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는 교리해석의 틀을 생각해냈다. 이미 역사적인 변용을 거친 많은 불교문헌을 번역하면서 서로 상이한 교리사상을 어떻게 이해할까 고민한 끝에 찾아낸 방법론이었다. 즉 경전의 내용에 심천이 있고 때로는 상반되는 내용까지 나타나는 것은 부처님이 중생의 근기에 따라 방편설법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상판석이란 바로 이런 생각을 전제로 교리사상의 심천을 구분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근대불교학은 중국적 교상판석이 불교사상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탁월한 방법론으로는 인정하지만 모든 것을 부처님의 친설(親說)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역사적 태도라고 말한다. 즉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의 많은 교설은 후대로 오면서 첨삭가감된 것이며 일부는 심각하게 불교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서로 다른 견해를 말하는 것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우리가 부처님이 말씀한 본래의 가르침을 찾아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참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고자 한다면 이 일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불교의 원점과 교리해석의 기준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가장 유효한 대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즉 '부처님 그 분은 누구이며, 그분은 어떤 구체적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했으며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불교는 역사적 실존인물이며 종교적 성자인 고타마 싯달타의 깨달음과 그 가르침에 바탕한 종교다. 따라서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타마 싯달타의 깨달음과 그것에 근거한 가르침이다. 이 점을 소홀히 하면 아무리 그럴듯한 이름이나 사상체계도 불교라고 이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이 불교를 공부하든 그 원점은 당연히 부처님이 직접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그 불교여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불교학자 마쓰다니 후미오(增谷文雄)의 <근본본불교 이해>는 매우 주목되는 저술이다. 일찍부터 불교사상의 원초적 형질을 찾는데 전생애를 바쳐온 그는 이 책에서 어두운 밤하늘의 북극성과 같이 불교이해의 기준점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가 제시한 기준점은 이 책의 제목에서 보듯이 근본불교, 즉 부처님이 직접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그 불교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마쓰다니의 이런 태도는 지나치게 부처님 그분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오늘날 우리가 불교라고 부르는 제도종교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역사적 굴절과 변화를 거친 불교가 아니라 역사적 부처님이 직접 말하고 행동하며 가르친 그 불교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온갖 이상한 주장과 학설로 머리가 복잡해진 사람들이 불교를 쉽게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주장이나 학설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佛敎)' 그 자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옮긴이가 불교신문사의 기자로 일할 때, 번역 연재했던 것을 묶은 것이다. 1990년 4월 시작된 이 연재는 91년 12월 77회로 끝날 때까지 독자들의 관심 속에 애독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저자는 이 책을 제5장에서 끝맺고 있으나 신문연재가 1991년 말까지 계속되어야 했음으로 제6장은 옮긴이가 원저자의 다른 저술에서 일부를 발췌해 덧붙였다. 출판을 하면서 이 부분은 삭제할까 했으나 대의(大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그냥 두었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를 고백한다면 옮긴이는 불교를 공부하면서 다스다니 선생의 불교관이랄까 해석방법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미 작고한 분이지만 선생에게 머리숙여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 아울러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끝으로 신문스크랩 원고를 모아 예쁜 책으로 꾸며준 불교시대사 여러분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불기 2536년 5월
옮긴이 합장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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