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근본불교 강좌

1-3 '근본불교'라는 용어

slowdream 2009. 6. 15. 01:52

1-3 '근본불교'라는 용어

 

 


불교학계에서 ‘근본불교’라는 용어가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이 용어는 일본의 메이지시대(明治時代) 불교학자 아네자끼쇼지(姉崎正治) 박사가 1899년에 간행한《불교성전사론(佛敎聖典史論)》이란 저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이른바 문헌비판의 방법을 불교학 연구, 특히 경전 연구에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문헌비판이란 작업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의 연구는 거의 10년이 걸려 <한역 4아함 각 부와 팔리 니카야의 상등부(相等部) 대조표>하는 긴 제목의 영문논문으로 발표되었다. 오늘날에도 이 논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데 실로 대단한 작업이었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한역 4아함’이 중국에 전역(傳譯)된 시기는 399년에서 435년 사이였다. 《중아함경》60권은 계빈삼장(瀱賓三藏)인 승가제바(僧伽提婆)가 397~398년 사이에 번역했고, 《증일아함경》51권은 역시 승가제바가 397년에, 그리고 《장아함경》22권은 축불념(竺佛念)이 413년에, 《잡아함경》50권은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435년에 번역했다. 이 무렵 ‘팔리 5부’에 해당하는 것은 아직 성립하지 않았던가 또는 그 존재유무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그의 견해다.

 

어쨌든 이후 중국에서는 아함경전에서 대한 연구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중국인들의 대승편중(大乘偏重) 경향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하지만 좀 더 상세히 조사해 보면 중국불교는 처음부터 대승일변도는 아니었다. 대승편중의 경향이 결정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천태지의(天台智顗;538~597)의 교상판석*(敎相判釋:부처님이 일생동안 설한 敎法을 분류하고 비판하는 것. 敎判이라고도 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천태의 이른바 오시교판*(五時敎判:부처님이 일생동안 설한 설법을 설한 시기별로 화엄(華嚴)ㆍ아함(阿含)ㆍ방등(方等)ㆍ반야(般若)ㆍ법화열반(法華涅般)의 다섯 시기로 분류한 교판) 에 의하면 아함부의 경전들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은 정각(正覺)의 내용을 쉽게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게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지닌 상황 아래서 아함경전을 연구하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런 사정은 한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네자끼(姉崎正治) 박사는 이와는 달리 남들이 외면해 온 아함부의 경전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경전의 문헌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아함경전의 연구를 시작했다. 그 작업의 자세한 내용은 매우 전문적이어서 간단히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그 개요만 말한다면, 한역 아함부는 그 번역에 있어서 경의 순서를 바꾼 데가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는 우선 순서를 바로잡는 일부터 한 뒤 ‘한역4아함’과 거기에 대응하는 ‘팔리 니키야’를 통해 불타직설(佛陀直說)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매우 귀중하고도 기초적인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는 얼마후 이런 기초작업을 바탕으로 《근본불교(根本佛敎,1908》라는 대저(大著)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에 의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팔리 니카야’와 ‘한역4아함’에 나타나는 사성제(四聖諸; 苦. 集. 滅. 道)를 널리 설법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불교’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그 후 언제부터인지 ‘원시불교(原始佛敎)’라는 명칭이 일반에게 쓰여지기 시작했다. 원시불교라는 명칭은 영국의 불교학자 리스 데이비드(T.W. Rhys Davids,1843-1922)가 사용했던 ‘초기불교(初期佛敎, Early Buddhism)'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나 그것을 ’원시불교(原始佛敎)‘로 번역한 것은 약간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원시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미개(未開)의 번역어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결코 미개한 것이 아니라면 원시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 

 

이에 비해 아네자끼 박사가 사용한 ‘근본(根本)’이란 말은 ‘팔리 니카야’에서 볼 수 있는 ‘mucirc;la'의 번역어이다. 이를 영어로 바꾸면 ’root' 또는 ‘foundation'에 해당하는 말이다. 팔리 5부 안에서도 가장 원시적이고 기본적인 경전들의 집록을 호칭하는 ’근본50경(mula Pannsa)‘이란 용법이 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근본불교'라는 제목을 붙여 추구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불교의 바탕을 이루는 불타직설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원시불교 또는 초기불교라는 말보다 '근본불교'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다고 하겠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