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서론
1-1 아함경전의 성립과정
근본불교(根本佛敎)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함경전(阿含經典)에 의해 전개되는 불교이다. 그러면 아함경전이란 어떤 것인가. 아함경전은 아직 일반에게 그 이름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 이 경전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이제는 ‘아함(Ā-gama=Coming, 전승(傳承)’을 모르고는 불교를 말할 수 없다고 할 정도가 되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먼저 아함경전의 성립과정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알게 된다면 이 경전이 설하는 교설이 곧 불교의 근본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아함경전의 성립과정은 매우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아마도 수많은 경전 가운데서 이 아함경전 만큼 그 성립과정이 상세하게 알려져 있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아함경전의 성립과정은 이 경전과 거의 비슷한 가치를 지니는 자료의 하나인 율장(律藏) 즉 팔리 <율장> 소품, 한역 율장의 <사분율>ㆍ<오분율>ㆍ<십송율> 등의 기록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부처님이 쿠시나가라 교외인 사라(沙羅) 나무 밑에서 입멸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었다. 마하카사파(摩訶迦葉) 일행은 부처님보다 좀 늦게 같은 길을 따라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반대쪽에서 내려오던 한 외도로부터 부처님의 부음을 들었다. 그 때 많은 제자들은 그 소식을 듣고 애통해 했지만 그 가운데 한 늙은 비구만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벗들이여, 슬퍼하지 말라. 상심하지 말라. 우리는 이제야 대사문(대(大沙門; 부처님)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대사문은 그동안 ‘이것은 허용한다’ ‘이것은 적당치 않다’면서 우리를 무척 고통스럽게 속박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이같은 폭언을 들은 마하카사파는 부처님의 시신을 장례지낸 뒤 동료 비구들에게 이렇게 제언했다.
"벗들이여, 우리는 모름지기 교법과 계율을 결집해서 비법(非法)이 성하고 정법(正法)이 쇠퇴하며 비율(非律)이 성하고 정률(正律)이 퇴색하며, 정법을 말하는 자가 약하고 비법을 말하는 자가 강하며, 비율을 말하는 자가 힘을 얻고 정률을 말하는 자가 강하며, 비율을 말하는 자가 힘을 얻고 정률을 말하는 자가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벗들이여, 우리들 가운데 가르침을 결집하기 위한 비구를 선출해 주시오."
이 제안은 곧 채택되어 부처님이 입멸하신 뒤 얼마 안 되어 유교(遺敎)를 결집하는 사업이 제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여기서 결집이란 ‘상그라하(samgraha)' 번역한 말이다. 즉 ’모으다(集)‘의 뜻이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오늘의 편집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때는 가르침을 문자를 사용해 정리하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편집은 부처님이 생전에 설하신 말씀을 합송*(合誦:번역을 할 때 여러번 반복하여 합송을 하는 것)함으로써 그곳에 모인 사람 모두가 같은 말씀으로 기억한다는 형으로 이루어졌다. 그러한 이유로 ’결집(結集)‘은 ’합송(合誦, sangīti=chorus)‘이라 부르기도 했다. 합송이란 말은 당시의 편집이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짐작케 한다.
비구들은 마하카사파의 제안을 찬성하고 그 작업을 위해 대표를 선출하는 일을 그에게 위임해 주었다. 그는 5백 명의 비구들을 뽑았다. 그들은 라자가하 교외의 비파라(毘婆羅)산에 있는 칠엽굴(七葉窟)로 모였다.
결집은 마하카사파가 수좌(首座)가 되어 이루어졌다. 그는 먼저 아난다(阿難)와 우파리(優波離) 두 사람은 송출자(誦出者)로 선임했다. 아난다는 오랫동안 부처님을 시봉했고 스승이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가르침을 베풀었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다문제일(多聞第一)이었다. 그리고 우파리는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고 불릴 정도의 제자였으므로 계율에 관해서는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선출 되었다. 마하카사파는 두 사람을 선출한 뒤 교법과 계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답변을 얻어냈다.
“대중들이여, 내 말을 들어주시오. 나는 대중들을 대신해 장로 아난다에게 교법을 묻겠소. 벗 아난다여, 부처님의 최초 설법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셨는지요?”
“벗 마하카사파여, 나는 이렇게 들었소. 어느 때 부처님은 바라나시의 교외 이시파타나 미가다야(仙人佳處 鹿野苑)에 계셨습니다.”
《십송율》의 기록에 의하면 그것은 참으로 엄숙하고 감동적인 장면이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장로 비구들은 모두 감격의 눈물에 젖어 자리에 엎드리고 말았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자가하의…(Evam me satam ekam bhagavā… vīharatī… 如是我聞 一時佛佳 王舍城…)”
나중에 모든 경전은 이같은 형식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아난다가 송출(誦出)한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敎法, 戒律)은 두 사람의 송출자인 아난다와 우파리에 의해 재현되었다. 그 말씀은 자리를 함께 했던 장로 비구들에 의해 음미되었고 그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화인되자 이번에는 그것을 모두가 합송함으로써 부처님의 말씀으로 승인되었고 각자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새겨졌다. 이 시기의 편집작업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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